여태 자니? 일어나서 애들 밥해줘라.
추석 연휴 첫날이다. 습관처럼 6시에 눈을 떴지만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휴일이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다.
"아~ 휴일이지?"
눈을 감고 잠을 청하다가 다시 시계를 보니 3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잠을 포기하고 어젯밤에 듣다가 잠든 소설을 듣기 위해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소설을 30분쯤 들었을 때 전화가 왔다. 시어머니였다.
"예, 어머니."
"아직도 자니?"
"그냥 누워 있어요."
일상적인 말일 텐데 아직이라는 말에 꽂혔다.
"밥은?"
"........."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예전 같지 않게 이런 감정을 숨기고 내상황을 설명하는 것이 힘들어졌다.
"추석에 올 거니?"
잠깐 생각했다. '올 해까지는 추석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제사도 안 지내고 며칠 전에 벌초도 다녀와서 아범이 갈지 말 지 결정을 못한 거 같아요."
며 칠 전 추석 차례 때문에 동서와 통화를 했었다. 그동안은 동서가 추석 전날까지 근무를 해서 내가 음식을 거의 다 준비했었다. 동서가 직장을 그만둔 상황이라서 올해는 음식을 나눠서 준비하려고 전화를 했던 것이다. 동서가 리모델링 때문에 매일 시댁에 가는 것을 알게 되어서 어머님과 아버님을 직접 뵙고 여쭤 본 후에 다시 통화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벌초를 하러 시댁에 다녀온 남편이 산에 가서 간략하게 잔만 올리는 것으로 차례를 대신한다고 전달해주었다. 나는 남편을 끔찍한 손자로 자랑스러워하시고 손주며느리인 나와 증손자들을 이뻐해 주셨던 시할머니 제사는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절에서 지내는 합동차례를 신청을 해놨다. 남편이 시댁에 간다고 하면 먹을 음식만 만들어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동안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모일 수가 없는 상황이라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차례 음식을 할 사람이 없어서 제사를 지내지 않은 다고 하셨다. 똑같은 상황에서 동갑내기 친정엄마는 며느리의 참여와 상관없이 코로나 시대에도 제사와 차례를 꼬박꼬박 지내셨다. 제사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투영된 의식이라고 본다.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제사에 대한 의미가 달라 보였다. 내가 느끼기에 코로나 전에는 친정도 시댁도 제사의식을 매우 중요하고 꼭 지켜야 하는 약속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면서 상황에 따라 제사를 지낼 수도 있고 지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시어머니 입장에서 둘이나 되는 며느리들을 두고 혼자서 차례상을 준비하는 것이 힘드셨을 것이다. 아무리 유교적 형식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버님이라도 어머님이 협조하지 않으면 차례는 지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산소에 가서 간단하게 잔을 올리는 것으로 형식을 바꾼 것이다. 나는 종교를 떠나서 집에서 차례상을 차리든 산소에서 잔을 올리든 형식보다는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빠지고 형식만 남은 제사는 지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솔직한 내 마음이다.
"어머니, 아범이 산소에 가져갈 음식은 도련님이 알아서 준비한다고 해서 저는 드실 것만 해서 보내려고 했는데요."
"그래?"
"간다고 하면 음식 좀 해서 보낼게요."
나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알았다. 그만 일어나서 애들 밥 줘라 배고프겠다."
어머니는 늘 그랬듯이 원하는 대답이 아닐 경우 느껴지는 말투로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갑자기 밥타령으로 마무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동안 밥 한 끼 해준 적 없으시면서 밥 걱정을 왜 하시냐'라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냥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나 만큼만 밥 잘 해먹이라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별 일도 아닌데 화가 나서 조금 누워있고 싶은 마음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
사실은 차곡차곡 쌓인 시부모님을 향한 불쾌했던 감정이 내 마음의 흔들림에 따라 요동치면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한 달 전에 아버님 생신이라서 시댁에 갔었다. 주말에는 고3 아들도 있고 일요일 하루 정도는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나도 쉬어야 다음 날 출근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평일에 휴가를 내고 간 것이다. 막내를 보고 싶어 해서 딸도 학교에 현장체험 신청서를 내고 함께 갔다.
준비해 간 삼계탕을 꺼내면서 내가 말했다.
"반은 냉동실에 넣고 입맛 없을 때 해동해서 드세요.
'아니다. **도 왔다."
"동서도요? 진작 말했으면 더 사 올 걸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은 것이 나는 좀 이상했다. 코로나 전에는 부모님 생신을 동서와 의논해서 같이 준비했었다. 코로나 이후에 같이 모이는 것이 어렵게 되자 각자 알아서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와 있으면서 왜 전화를 안 했지?
"자기야, 도련님도 왔다는데?"
"어디?"
남편도 모르는 눈치였다.
요즘 시동생 부부가 시댁에 있는 창고를 카페로 바꾸는 공사를 하게 되어서 3개월 전부터 매일 시댁에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다 치고 시동생과 다른 일로 통화를 자주 한 남편도 몰랐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이 상황이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왔다. 시동생 부부는 밥을 늦게 먹어서 배가 부르다고 했다. 결국 시부모님과 우리만 밥을 먹었다.
"아침에 출근할 때 밥은 먹고 가니?"
어머님은 닭다리 하나를 건져서 남편에게 담아 주면서 말씀하셨다.
"아니요. 그냥 가요."
"왜? 아침밥을 먹고 나가야 하루 종일 든든하지."
내가 이 대화에 끼어들어야 하나 마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남편이 대답을 했다.
"너무 일찍이고 아침밥을 안 먹어 버릇해서 넘어가지도 않아요."
"억지로라도 먹어야지. 몸 상해."
눈치 빠른 나는 그 대화 속에는 밥을 차려주지 않아서 못 먹나 하는 의심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누룽지를 끓여줘도 안 먹고 가요. 일찍 일어나는 것도 습관이 안돼서 늦게 일어나기도 하고요. 저는 애들 아침 한 번 도 안차려 준 적 없어요. 빵으로 대신한 것도 손가락 안에 꼽혀요. 자기야 맞지?"
"어."
짧게 대답하고 닭다리를 소금에 찍었다. 남편도 내가 먹는 것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발끈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차려주는 데 왜 안 먹어. 먹고 나가."
닭다리를 더 찾아서 아들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남편은 어머니의 성의를 무시하지 않고 맛있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받아먹었다. 나는 남편이 효도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빠는 고기 안 먹는데?"
닭다리를 받아서 먹는 아빠를 보고 딸이 말했다. 평소에 남편은 닭고기로 반찬을 하면 고기는 빼고 채소 위주로 골라 먹으면 고기도 먹으라고 잔소리하던 내 말이 기억났던 모양이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똑같지만 오늘은 어머님이 주는 대로 먹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물었다.
"자기 동서네가 공사하는 거 진짜 몰랐어?"
"어."
짧고 굵게 대답을 하고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나와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추측하지 않았다.
"동서네도 그렇고 아버님, 어머님도 수술 보험료 언제 나오는지는 계속 전화하셔서 물었으면서 동서네 공사하는 얘기는 한 마디도 없으셨데?"
"그러게. 아니 개는 거기다가 몇 천만 원을 들여서 그걸 한다고 해?"
"남의 돈 몇 천만 원 들어가는 게 뭐가 중요해."
남편도 나도 더 이상의 대화를 이어 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도 꽂힌 포인트가 달랐다. 하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묻고 있었다.
'같이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에 들어가는 비용도 시동생은 돈이 없다고 남편이 다 내고 있는데 이것이 맞는 것인가? 아버님은 물려받은 재산 위에 남편이 일찍부터 벌어준 돈으로 이 사업 저 사업 벌여서(결국 남은 것이 없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남편에게 어느 누구도 이런 상활을 의논? 통보조차 하지 않는 것이 맞는가? 15년 전 살기가 괜찮았던 시부모님께 용돈 몇 푼보다 작지 않은 실비보험을 가입했었다. 힘들어도 깨지 않고 지금까지 납부하는 며느리 덕에 많은 사고와 수술비 걱정 없이 지냈다. 얼마 전 백내장 노안 수술까지 몇 백만 원짜리 수술을 하셨으면서 나에게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안 하는 게 맞는 것인지?' 갑자기 말없이 차창밖을 보는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내가 늙었나? 왜 불쌍해 보이지?'
"수술은 잘 되신 거 같아서 다행이네."
"그러게 그 보험 없었으면 큰 일어날뻔했어. 며느리가 똑똑해서 다행이지."
남편이 나를 똑똑하다는 말로 마무리를 하면서 나는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켰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은커녕 무시당한 기분은 뭐지? 그때 보험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울 엄마는 못 들었던 게 후회스러워.' 지금 생각해도 용돈을 주지 않는 나를 원망하던 어머님의 말씀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보험을 유지한 것은 신의 한 수였다. 우선순위에 밀려서 용돈도 보험도 들지 못했던 친정 엄마께는 두고두고 죄송스러운 선택으로 남아있다.
나 자신이 효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그동안 했던 며느리로서의 일들이 섭섭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가슴 어딘가에 인정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었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생각을 정리하고 혼잣말처럼 내 생각을 뱉었다.
"동서네가 자주 왔다 갔다 하면 시부모님 걱정도 덜고 좋지 뭐."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생각은 얼마든 지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다시 내 생각이 부정적으로 바뀐 것이다. '쉬는 날이라도 더자라.'는 말로 급하게 전화를 끊어 버린 친정 엄마와는 어쩔 수 없는 평행선이라고 정리한다. 나는 다시 노력하고 있다.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퇴근 전 책상에 엎어져 있는 나에게 동료가 말없이 건네준 바카스가 식탁에 있다.
먹고 힘내 볼까? 바카스를 마시고 기분을 업 시켜본다.
"엄마들 밥 타령한 것처럼 그냥 한 소리지 뭐. 그럴 수 있어."
어떤 상황이라도 이해하려고 하면 못할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