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은 고3 아들의 졸업식 날이었다. 코로나로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이 코로나로 마무리되는 날이다. 입학식도 없이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었고 학교를 격주로 다니면서 선배, 후배, 친구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이 3년을 다니다 보니 고등학교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입학식에는 못 갔어도 졸업식은 가족과 다 함께 할 줄 알았는데 이 번에도 학생들과 교직원만 강당에서 진행하고 학부모는 학교 대기실이나 영상을 통해서 참여해야 했다. 오전에 시작된 졸업식 유튜브를 직장에서 볼 수 있었다. 화면으로만 보는 졸업식은 매주 하는 아침 조회 같았다. 가끔 상을 받기 위해 단상에 나오고 교가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졸업식 공식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교복대신 자유복으로 멋을 내기도 하고 머리색깔을 바꾸기도 한 모습들이 내 눈에는 귀여워 보였다.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서 무대에 올라오는 아들 친구들의 모습을 보다가 화면을 캡처했다. 아들에게 추억을 남겨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그 친구들 속에 없었다. 상을 못 받아서도 대학을 떨어져서도 아니고 코로나에 걸린 것도 아니다. 오늘까지 정시 실기시험이 있기 때문이다. 하필 딱 오늘이 시험이다. 아들이 레슨 때문에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수능이 끝나고 실기시험 준비에 집중하느라 아쉬움이 많았다. 수시에 합격한 대부분의 아들 친구들은 술 한 잔 언제 하냐고 조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졸업식에는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었다.
실기 시험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서 일정을 보다가
"실기시험이 졸업식 날이면 어쩌냐?"
"설마 그렇게 까지 될까? 나 없으면 교가를 못 불러."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지만 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졸업식 대신 대학교 실기 시험장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엄마, 지하철역에서 대학교까지 걸어가고 있어요. 근데 생각해 보니까 기분이 나쁘네요."
"추운데 버스 타고 가지. 무슨 일 있었어? 뭐가 기분이 나빠?"
"아뇨 졸업식이요. 아직 시험도 다 안 끝났고 정시 애들은 발표도 안 났는데 졸업식이 말이되요? 정시 보는 학생들에 대한 배려가 없잖아요."
"학사일정에 맞게 수업일수 다 맞춰서 하는 거야." "그래도 수능날짜랑 정시 시험 날짜 다 미리 발표 나와 있는데 그거 좀 맞춰서 해주면 되는 거지 좀 배려가 없네요. 여고는 다음 주에 한다고 하던데요. "
아들의 투정 아닌 투정을 어떻게 받아 줘야 할까 생각을 하면서 통화를 이어갔다.
"엄마가 교육청에 민원을 넣을까? 교육감 만나서 따질까?"
일단 아들 편에서 대책 없는 말을 마구 던졌다. 아들이 아니라고 말할 줄 알았는데 대답이 없는 것이다. 그러라는 뜻 같다.
"엄마도 속상하다. 추후라도 의견을 올릴 거야. 오늘은 다 잊고 집중해서 시험 잘 보고 와 영상캡처라도 해 놓을게."
사실 나도 아들과 같은 생각을 잠깐 했었다. 아이들 하나하나에 맞춰서 학사일정을 운영할 수 없는 것을 나도 잘 알고 있다. 억지를 부리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다만 아쉬움은 남는다.
수능날과 발표일, 정시접수와 실기시험이 끝나는 기간은 대략 1년 전에 공지가 된다. 고등학교 학사 일정을 잡기 전에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약간의 변동이 있어도 대학 입학일정 때문에 1월 말에는 다 끝이 난다.
졸업식에 참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아들이 말한 배려라는 것이 마음에 남아있다. 절대 바꿀 수 없거나 다수의 희생을 요구하는 방법은 이미 배려가 아니다. 조금 노력해서 조금만 신경 써서 조절할 수 있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준다면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한다.
정시를 보고 실기 시험까지 쳐야 하는 아이들이 인문계 학교에서는 소수였을 것이다. 인문계에 왔으면서 예체능 하는 학생들을 못 마땅하게 생각하는 교사들도 있지만 지역특성이나 진로선택이 고등학교 입학 후에 정해지는 경우도 많다.
아들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교육으로 자신을 포함한 소수의 친구들이 배려받았다는 것을 배우고 졸업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들의 졸업식은 끝이 났지만 후배들의 졸업식은 소수의 아이들도 배려한 졸업계획을 세워 줬으면 좋겠다.
아들아, 졸업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