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난했나?
명절 연휴는 드라마 몰아보기에 참 좋은 시간이다. 요즘은 다양한 채널이 있어서 명절이 아니라도 상관없이 볼 수 있고 드라마 자체도 완성작을 내놓는 상황이라서 꼭 명절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 직장에 나가는 날 빼고 밀린 집안일과 아이들 케어까지 포함하면 7일 모두 일터에 서 있는 샘이다. 그래서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려면 잠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몸에 무리가 오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 명절 연휴가 보너스 같은 휴일이다. 명절 제사를 끝내고 난 후의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이 번 연휴에도 이것저것 찾다가 끝난 지 한 참된 드라마를 보았다. 남지현, 김고은 출현에 '작은 아씨들' 나는 남지현과 김고은을 좋아한다.
드라마를 보다가 대사 한 줄에 잠깐 멈칫했고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에 나 스스로가 당황했다. 내가 왜 이리 답답하게 잘 참는지 정답을 찾았다는 환희의 눈물이었을까?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주인공에게 직장 동료가 조롱하듯 던진 말이다.
"너 혹시 가난하게 컸니?"
"예?"
"하도 잘 참아서."
나는 가난하다고 비관한 적은 없다.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하지만 나보다 부자인 아이들보다 가난한 아이들과 비교하면 나는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가끔 참지 말아야 하는 시점에서도 잘 참는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퇴사라는 길을 선택하고 새로운 인생을 찾는 작가님들의 글이나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고 새로운 자신과 사랑을 찾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30년을 넘게 다닌 직장도 25 년의 가정도 벌써 박차고 나와야 했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물론 이것은 참을성보다 용기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그분들이 참을성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선택이 부러워서라는 것이 더 솔직 할 수도 있다.
생각해 보니 가난해서 포기하고 참아야 하는 일이 많았다. 가고 싶은 학원도 참아야 했고 먹고 싶던 생맥주도 참아야 했다. 찜통 같은 자취방에서의 더위도 참았고 친구들이 놀러 다닐 때 나는 알바를 하면서 놀고 싶은 것을 참았다. 추위에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면 손가락이 얼었다가 풀리면서 밀려오는 고통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잘 참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난해서 참고 산 것이 많기는 많았다. 하지만 배가 고픈데 먹을 것이 없어서 참은 적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다. 간식이 고팠던 적은 있어도 주식이 고팠던 적은 없었던 건 부모님이 농부 셨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참고 살았던 내 인생을 바보 같다거나 어리석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대사 한 마디가 나를 자극했다, 가난하지만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다. 비굴해져야 무언가 얻을 수 있다면 포기를 선택하는 형식으로 나를 지켜왔다.
나를 위로하는 대사로 한 번 고쳐본다
"가난하게 컸어? 하도 잘 참아서."
"가난하게 컸지만 비굴하게 살지는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