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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Aug 07. 2023

 남편을 위한 탄원서


" 4. 14.(금) 2시에 사모님과 출석하겠다고 문체부에 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변호사의 연락을 받고  돌고 돌아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아움은 여전했다. 만화가협회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으로 출판사 대표를 문화체육부에 신고를 했고 남편의 문제를 조사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문체부는 예술정책관을 팀장으로 문체부 내부 6명, 외부 변호사 1명이 포함한 특별조사팀을 꾸렸으며  신고인 측 조사를 시작으로 피신고인 및 참고인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나도 조사에 참여하라는 요청이 왔다.


나는 남편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조사에 앞서 조사팀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인적이고 나만 알 수 있는 이야기를 탄원서에 적었다.



                              원    

안녕하십니까. 저는 만화 검정고무신 그림 작가 故 이우영의 아내이자, 30여 년 동안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 교사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본 사건에 대해 이제는 고인이 되어 더 이상 말을 전할 수 없는 남편을 대신해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탄원서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만화 검정고무신은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따로 있는 작품으로 저의 남편은 그림 작가입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1972년생인 남편은 시대상을 잘 반영한 작품을 그리고 싶어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조사하고, 현장 답사도 마다하지 않는 등 애정을 가지고 검정고무신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셔서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그 한 주를 빼고는 단 한 번도 연재중단한 적 없이 성실하게 15년의 연재를 마무리했습니다. 정말 힘든 연재 기간이었습니다.     


연재 기간 중에 결혼을 했고 남편은 삼 남매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첫아이를 출산하던 당시에는 제가 육아 휴직을 쓰기 어려웠고 결혼하면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남편이 인기 있는 만화가였다고 해도 당시 만화가는 불안한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산 2주 만에 출근해야만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그게 말이 되느냐?’ 묻겠지만 사실입니다. 제 남편이 쓴 계약서나 저작권 양도 각서 등을 보는 현재 사람들의 시각과 같은 맥락입니다. 그때부터 남편은 직장에 나간 저를 대신해서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돌보면서 만화를 그렸습니다. 온종일 밥은커녕 생리적 현상도 아들을 등에 업고 해결하고 있을 남편을 생각하며 퇴근시간이 되면 언덕 위에 집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야 했습니다. 제가 야근을 해야 하는 날은 피가 마르는 시간이었습니다. 밥도 포기하고 잠도 포기하면서 밤을 새워 완성한 검정고무신 원고를 들고 우체국으로 달려가던 남편의 뒷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그렇게 아이 셋과 검정고무신은 함께 성장했습니다.


연재하던 시절 얘기를 할 때면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냈다.’라고 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래 수고했어. 자기 최고야.’ 하면서 꼭 안아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검정고무신 단행본 소개 글 사진 속에서 남편이 꼭 안고 있던 조그만 아이는 이제 군대를 제대하고 아빠를 지켜 줄 만큼 어엿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30년을 그렇게 힘들게 창작하고 지켜온 검정고무신은 남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자상한 성격으로 3남매 육아를 직접 하면서 누구보다도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고 행복하게 가꾸기 위해 노력한 사람, 늦둥이 딸에게는 한없이 약한 딸바보 아빠가 가족을 놓아 버리고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만약 제가 낳고 키운 삼 남매를 누군가가 빼앗아 가려고 한다면 저는 절대 뺏기지 않을 것입니다. 제 목숨을 내놓아야 뺏기지 않는다고 하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것이고 뺏으려는 자의 목숨을 끊어 버려야 뺏기지 않는다면 상대의 목숨줄을 끊어서라도 지킬 것입니다. 남편이 떠나고 내가 지켜야 하는 삼 남매를 바라보면서 남편이 검정고무신을 지키고 싶어 했던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죽을 만큼 고통 속으로 몰아넣은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남편에게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만화를 사랑했던 어린이가 온전한 어른이 되기도 전에 작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30년 동안 한 가지 만화만 그렸습니다. 그래서 계약서를 써본 경험도 적었고 작가에게 계약한다는 것은 만화를 계속 그릴 수 있다는 의미였을 뿐이었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변호사를 대동하거나 전문 매니저를 통해 계약한다는 것은 먼 나라 얘기였고 도장을 맡기고 계약서를 쓸 만큼 계약을 복잡하게 생각하거나 평생의 노력이 숲으로 돌아가고 미래까지 저당 잡히는 일이 되어서  본인의 인생을 스스로 끝내는 사건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하는 시절을 살아온 그런 만화가였습니다.      

     

만화밖에 모르던 남편은 세상 사람들이 여태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처럼 보편적이고 도덕적이며 인간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했는지 모릅니다.  ‘재판이 시작된 것이 1~2년도 아니고 이제 와서 이 문제로 죽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라는 출판사 측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10년 20년 끌고 가면서 손발을 묶고 숨통을 조여서 죽이려고 한 계획을 들켜서 한 말은 아닌가 의심이 갑니다. 여전히 뻔뻔스러운 면모를 보이며 전한 그들의 말에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었습니다.      


남편은 앞마당에서 아이들과 공차기를 좋아했고, 저와 함께 텃밭에 채소를 심고 이웃과 나누어 먹기를 즐겼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가족들과 산책하고 가끔 찾아오는 지인들과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이면 마냥 행복해했던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만화의 소재라면서 항상 메모했습니다. 저는 행복했습니다. 힘들었던 육아는 끝이 나서 늦둥이 막내는 초등학생이고 아들들의 입시도 끝이 났습니다. 그동안 못한 가족 여행도 생각하고 단둘이 여행도 가보자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 계획 앞에는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까 재판이 끝나면 가자.’라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결국 어떤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우리 가족의 행복도 끝이 났습니다. 아이들이 웃다가도 움찔하며 눈치를 보는 모습들이 어미의 가슴을 찢어 놓습니다. 남편은 떠났지만 검정고무신의 원저작자로서 누구보다 열심히 만화가의 삶을 살다가 떠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가족과의 인연을 뒤로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만화를 놓고 떠난 남편을 가족으로서 아직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고 사업자의 도덕성도 내팽개친 ***은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 같은 사업자는 텃밭의 진딧물과 같습니다. 그냥 방치하면 온 밭에 퍼져서 채소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목숨을 끊지 않았어도 그동안 창작을 포기하고 떠나거나 절망 속에서 창작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창작자에게 깨끗한 텃밭을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편과 같은 희생이 없기를 간절하게 희망합니다.     

(탄원서 中)



2023년 7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시정명령의 내용이나 위력보다는 불공정행위로 인정했다는 것이 내게는 큰 위안이 되었다. 아쉬움도 많지만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지인들은 모든 것이 마무리가 된 것으로 알고 축하인사를 해주고 다. 물론 재판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갈 길 멀기만 하다.  


그리고 9월 14일까지 시정명령을 받는 출판사 대표는 이행여부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 살아생전에 남편을 대하던 태도에 비추어 봤을 때 시행명령을 이행할 것이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잠깐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 본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에 그중 누군가
 마음에 없는 발걸음이라도
도의적인 책임의 전 화 한 통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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