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 한 켤레 남았다.

by 앞니맘

퇴근 후에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빨래나 청소를 하다 보면 시간이 늦어지고 잠깐 글을 쓰거나 읽다가 잠이 드는 날이 많았다. 주말에도 해결할 일들이 계속 생겨서 움직이다 보니 남편의 물건 정리는 뒤로 밀리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는 날이나 저녁에 할 일을 건너뛰게 되는 날에만 정리를 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다. 사실 누구 하나 후다닥 치우기를 바라지 않았고 물건 하나하나가 아빠와 남편의 흔적이다 보니 잘 구분해서 정리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옷가지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입었기 때문에 낡은 체육복과 물려 입을 수 없는 속옷 정도만 정리가 필요했다. 전시회를 계기로 일부 물건들을 정리하기도 했고 작업실은 그대로 아이들이 쓰고 있어서 청소 외에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엄마, 아빠 군복은 세탁해서 보관했으면 좋겠어요."

작업복으로 입다가 창고에 걸어 놓은 남편의 군복을 보고 큰 아들이 말했다. 나는 잘 빨아서 옷장에 아들 군복과 나란하게 걸어 두었다. 날씨가 추워졌다고 아빠의 깔깔이를 입고 다니는 딸을 보면서 아들의 마음도 충분하게 이해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미루던 신발장 정리를 시작했다. 신발보다 잡동사니가 많아서 정리가 필요했다. 신발장 왼쪽에 쇼핑 속에 쇼핑백을 다시 정리하고 각종 씨앗과 전구, 미니 드라이버, 전지가위 등을 박스에 담아서 정리했다. 작은 나사부터 못까지 모아 놓은 플라스틱통이 눈에 들어왔다. 버릴 줄 모르는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오른쪽 신발장을 열었다. 얼마 전에 구입한 작은 사다리를 놓고 올라갔다. 맨 위칸부터 신발을 골라냈다. 남편의 신발들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 때 신었던 구두부터 내가 방송국에 사연 보내서 당첨된 상품권으로 사줬던 단화는 밑창이 다 달았고 곰팡이로 덮여 있었다. 아들과 함께 공을 차느라 신었던 축구화도 두 켤레 있었다. 하나는 오래 신어서 낡았고 하나는 아들이 발이 커서 아빠에게 물려준 것이었다. 나는 과감하게 그 신발들을 아래로 던졌다. 아들이 보면 축구화를 그냥 두라고 할까 봐 알리지 않고 버리기로 했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맨 아래칸까지 내려왔다. 최근까지 신었던 남편의 운동화가 보였다.

"많이 걸어 다녀서 인지 뒤꿈치가 너무 아파."

"그러니까 신발을 좋은 걸로 바꿔야 한다니까. 애들 거 새것 같아도 밑창 다 주저앉아서 바꿔 준 건데 그걸 신고 다니니까 그렇지...."

발이 커지기도 하고 신발이 낡아서 버린 아들들의 신발을 모아 놨다가 신는 남편에게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잔소리를 했다.

"내가 걷는데 특화된 신발 사줄 테니까 제발 애들 신발 좀 버려줘."

새벽 4시 30분에 집을 출발해서 버스와 지하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는 남편의 발에 무리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발인데 군대를 왜 갔는지 모르겠다.'라고 할 만큼 걷기에 어려움이 많은 발이었다.

"알았어. 그럼 한 번 알아봐."

발이 많이 아팠던지 허락을 해줬다. 발이 편하다고 하는 신발을 고르고 골라서 운동화를 구입했다.

"편하긴 한데 비싸지?"

새로 구입한 신발을 신어 보면서 나에게 물었다.

"그동안 자기가 신은 신발 중에 제일 비쌀 거야. 그런데 발 아파서 병원 가는 것보다 싸니까 그냥 신으셔."


그렇게 구입했던 운동화를 나는 한참 동안 바라다보았다. 남편이 두고 간 것 중에 가장 새것이고 가장 비싼 물건이다. '이거 하나는 보관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화를 들고 욕실로 갔다. 물을 뿌리고 솔로 문지르다 보니 양쪽에 붙은 작은 상표가 눈에 들어왔다. 큰 상표만 떼고 그냥 신고 다녔던 것이다. 물에 젖은 상표가 흐물흐물해지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빨아도 빨아도 사라지지 않는 발냄새가 남편의 고단했던 시간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내 마음은 한 번 무너져 내렸다.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고
남에 것을 탐한 적 없이 살다가
운동화 한 켤레 남기고 떠났다.
이것이 인생인 것이다.
'비우는 길에 다 비웠으면 이 운동화는 주인을 잃지 않았을까?'
거기까지 비우지 못한 사람을 원망할지
남에 것을 탐하고도 뻔뻔한 인간들을 욕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