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마트하지 못하다.

by 앞니맘



아이들이 떠나고 밭에 남은 고구마를 본격적으로 캐기 위해 각자가 맡은 일에 집중했다. 큰아들은 접힌 박스를 펴서 테이핑을 시작했고 아저씨는 관리기를 이용해서 땅을 한 번 뒤집어서 고구마를 땅 속에서 땅 위로 꺼내 주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가며 호미질로 고구마를 꺼냈다. 줄기 붙은 고구마는 따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해서 밭이랑 위에 한 무더기씩 모아 놓았다.


"식사하세요."

도시락을 싸 온 슬기 어머님이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하던 일을 미련 없이 멈추고 도시락이 세팅되고 있는 고구마빵 공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유치원에 심은 가을 상추와 슬기네 집에서 따온 고추, 조리사님이 따로 준비해 주신 장조림, 깻잎나물, 채장아찌 볶음, 소고기뭇국

그리고 컵라면과 바나나가 차려졌다.

"오늘 소풍이라고 생각하고 드세요."

슬기 어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상추쌈을 한 입 넣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밥 맛이었다.

빵공장 사장님과 딸 유정이도 맛있게 먹었다.

유정이와 큰아들은 유치원 동창이다. 말수가 없는 애들은 밥만 먹고 어른들이 아이들처럼 얘기가 많다. 사촌동생의 유치원 생활을 궁금해하는 유정이의 질문에 '똘똘하다.'라고 말해주고 증거에 가까운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또 웃었다.

"너네 오빠 유치원 때 별명이 똘똘이였는데."

소풍 같은 식사시간이 끝나고 유정이가 만들어준 커피를 들고 다시 밭으로 향했다.


쉬엄쉬엄 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해서는 오늘 안에 일을 끝낼 수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오늘 안에 끝내야 한다. 주에는 비소식이 있고 다음 주는 행사가 있다. 이렇게 미루다 보면 서리가 내려서 못 먹게 된다. 당초 계획을 변경해서 아홉 고랑만 캐기로 했다. 머지는 스님이 캐시기로 했으니 알아서 하실 것이다.


관리기 작업을 끝 낸 아저씨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다음 일정에 맞춰서 기계를 싣고 귀가하셨다.

"엄마, 다시 올 때 고구마박스만 더 가져오면 돼?"

"어, 한 묶음만 더 들고 와."

슬기 어머니와 큰아들도 아르바이트 시간에 맞춰 돌아갔다.


넓은 고구마 밭에 혼자 남아서 일을 하다가 허리가 아프면 일어나서 허리 운동도 하고 하늘도 보면서 체조도 했다. 네발로 기어 다니기도 하고 다리를 펴고 앉아서 양팔을 뒤로 대고 뻑뻑한 몸을 풀어주는 일을 반복했다. 이들의 놀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자기는 일하는 게 스마트 하지를 못 해. 할 수 있는 양만큼만 해야지. 너무 힘들어."

"스마트 같은 소리 하시네. 그래서 매번 그림을 몰아서 그리시나?"

"그건..."

"창작하고는 다르다고? 농사 수확도 시기가 있고 일이 생겨서 밀리다 보니 이렇게 하게 되는 거야. 오늘 못 하면 다 얼어서 버려야 한다니까. 나는 스마트하고 거리가 먼 똥 멍청이야."


원고 마감을 하다가 걱정이 돼서 밭에 나오기는 했는데 끝까지 도울 수도 집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 닥치면 '일을 너무 몰아서 많이 한다.'라고 투덜 대던 남편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 아마 오늘도 있었다면 똑같은 말을 했을 상황이다.


'나는 똥멍청이다.' 고구마 10킬로 한 박스면 우리 집 겨울 간식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가물었던 봄, 비가 많았고 풀도 힘이 셌던 여름을 잘 견디고 실하고 맛난 고구마로 성장한 것처럼 나의 힘들었던 시기를 잘 버틸 수 있게 힘을 주신 분들께 내 마음을 담은 가을의 수확을 선물하고 싶은 욕심에 나는 마트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고구마를 캐고 나니 해가 산 끝에 달려 있다. 다행히 해가 지기 직전에 일이 끝났다. 빵공장 사장님과 아들이 택배를 보내기 위한 보관 창고로 옮기고 내 차에는 딱 10킬로 한 박스만 실었다. 나도 오늘 힘들지만 행복한 하루였다. 다만 '스마트하지 못하다.'라는 말에 발끈하고 싶은 날이기도 했다.


엄마가 들에서의 노동을 멈추지 않는 이유가 꼭 먹고살기 위한 수단의 의미만은 아니었음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