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제대로 걷기가 힘이 들었다. 덜컥 겁이 났다. 지체 없이 큰 병원에 예약을 했고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조형제를 써서 MRI 촬영을 했다. 검사 결과는 다행히 특별한 이상이 없었다. 체력이 떨어지면 생기는 증세일 수 있으니 잘 먹고 잠을 충분하게 잘 수 있도록 관리를 하라는 진단을 받고 돌아왔다. '내가 없으면 큰 일'이라는 무거운 책임감과 함께 건강염려증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잠을 못 잘 정도로 허리가 아팠다. 그러면서 단순 포진으로 병원에 다녀왔고 왼쪽 허리가 아파서 꼼짝 하기가 힘이 들었다. 일어서 있는 것보다 앉아 있기가 더 힘이 들었다. 주사도 맞고 침도 맞고 스트레칭도 하면서 며칠을 보내다 보니 어떤 치료의 효과를 본 것인지 모르게 나아졌다. 소화도 쉽지 않고 손가락도 아프고 몸이 여기저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기는 아픈 적이 없는 사람이잖아."
내가 아파서 들어 누워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남편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었다.
"안 아픈 사람이 어디 있어. 누워 있을 수가 없는 상황이니까 일어나서 움직인 거지. 나도 여기저기 아프고 힘들어. 참나~"
나는 발끈해서 내가 들어 누워 있으면 이 집이 어찌 돌아갈지를 일장연설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나도 내가 약골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 늙어가는 과정인지 마음에서 오는 병인지 매일 건강을 염려하면서 보내고 있다.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으면 걷기라도 하세요."
의사의 말을 기억만 하고 있다가 오늘은 몇 달 만에 산책길에 나섰다. 계절을 느끼면서 늘 걸었던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 폭의 가을 수채화 같은 10월의 들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기온도 바람도 산책하기 좋은 날이다.
주변에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고구마 빵공장에 도착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지인은 둘이 아닌 혼자가 된 나를 촉촉한 눈빛으로 맞이하며 커피 한 잔과 응원을 대접해 주었다.
빵집에서 나와 집으로 향했다. 해가 지기 시작한 길은 또 다른 풍경으로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오는 노부부의 모습이 보였다. 나를 지나친 그분들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밀려드는 서러움에 모자를 눌러쓰고 걸었다. 어쩌면 나와 남편의 미래 모습이 저런 모습이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제대로'동상이몽'이었던 것이다.
이 길이 행복했던 추억을 소환하는 치유의 길이 아니라 아픔으로만 남는 길이라면 나는 더 이상 이 길을 걸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남편과 함께했던 이곳에 미련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멈춰서 멀리 들판과 맞닿은 하늘을 바라다보았다.
내가 혼자 산책을 나오면 영락없이 자전거를 타고 나를 찾아 나와야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남편과 함께 걸었던 황금벌판에 서서 아무리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도 남편의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나는 그곳에 멈춰 서서 큰소리로 울었다. '엉엉'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이어폰에서는 '괜찮아 잘 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내일이 있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흘렀다.
그런데 슬픈 발라드보다 더 슬프게 들리고 있었다.
야~ 이 나쁜 새끼야. 너 거기 딱 기다려. 내가 너 만나는 날에 가만 두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