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준비를 위한 시장을 보고 마트를 나오는 마음은 작년 추석과 완전히 달랐다. 명치와 가슴골 사이 어디쯤이 뻐근한 상태로 시장보기를 끝냈다. 주차장까지 걸어 나오면서 곧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눈가에 머물도록 내 이성의 힘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처음~
남편 없이 맞이하는 추석이 처음.
남편을 위해 준비하는 추석상차림도 처음.
매년 준비했던 차례상 음식이지만 남편의 제사상은 낯설고 아프기만 했다.
올 추석은 시댁에 가지 않고 아이들과 절에 가서 합동차례를 지내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따로 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내가 뭐라도 하고 싶어서 마트에 왔다. 어쩌면 이 과정도 한 번은 거치고 지나가야 하는 순서 같았다.
나물은 남편이 평소에 모두 좋아하던 것이라서 그대로 준비하기로 했다. 동태 전, 호박전 그리고 두부도 좋아했으니 부치기로 하고 장바구니에 넣었다. 또 뭐가 있나 마트를 살피다가 스팸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스팸을 좋아했지만 나는 우리 집에서 햄 종류는 금지된 음식이었다. 가끔 선물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먹게 했지만 돈을 주고 사서 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그것도 후회스럽다. 그래서 스팸도 동태전과 같이 부쳐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주류 코너에 갔다. 코끼리가 그려진 맥주를 한 캔 집어 들었다. 절에서는 술과 고기를 사용하지 않고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내가 작게 준비하는 아침 상에 평소 즐겨 먹던 맥주 한 잔을 따라 줄 생각이다.
저녁을 먹고 아이들과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소는 밤으로 통일했고 나는 반죽을 만들었다. 아이들에게 한 덩어리씩 나눠줬다.
"각자 많이 주물러야 쫀득쫀득한 떡이 된다. 아빠한테 드릴 거니까 잘 만들어."
아이들은 전과 다름없이 만화 캐릭터 모양도 만들고 우주선도 만들고 미래 자식들 얼굴이라고 만들면서 즐거워했다.
"송편 만들라고 했더니 이게 뭐야. 애나 어른이나 똑같아."
점토놀이시간으로 착각하고 만들어 놓은 송편을 보고 내가 타박을 하면
"집에서 먹을 건데 어때."
남편과 아이들은 한 소리로 대꾸를 했었다. 올해 아빠는 빠졌지만 장난스러운 송편을 만드는 모습은 그대로다.
나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나물을 무치고 전을 부쳤다. 음식을 담아서 식탁에 차리고 아끼던 향도 하나 폈다. 캔 맥주를 따서 잔에 따라 놓았다.
법당에 도착한 우리는 합동 차례를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아이들과 나는 몸을 낮춰서 절을 하고 기도를 했다. 새벽부터 만든 음식도 마음을 닦는 염불도 세상을 떠난 남편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살아남아야 하는 나와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기도를 마치고 납골당으로 향했다.
처음 납골당에 올 때는 꽃이 피려고 준비하는 봄이었는데 이제는 나뭇잎이 색을 바꾸고 바람에 잎을 하나 둘 떨구는 계절이 되었다.
'남편이 없어도 시간은 흐르고 나는 남아서 그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처음은 대부분 낯설고 힘들지.
내 삶의 수많은 처음 중에
오늘 또 하나의 처음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