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을 앞두고 마트주차장에 자리가 없고 택배차에서 내린 기사분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나도 미리 동료선생님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전하는 작은 선물을 준비해서 전달했고 가슴 따뜻한 선물도 받았다.
농사짓는 이웃 유치원 원장님은 남편 제사를
햅쌀로 지내라고 쌀 한 포대를 차에 던져주고 물 한잔도 거부하시고 가셨다.
"친구야 밤 필요해? 필요하면 가져다줄게."
선희는 통화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굵직한 알밤 한 보따리와 깍두기를 담가왔다.
"밤을 어디서 이렇게 많이 주웠냐."
나는 알밤을 한 입 깨물어 반쪽으로 가르면서 물었다.
"집 옆에 밤나무가 많아서 후딱 주웠는데 모기한테 엄청 뜯겼어. 먹고 더 필요하면 말해."
"송편 하고 쪄먹고 하기에 충분해. 고마워."
매년 이 맘 때면 남편하고 주변을 산책 삼아 다니면서 알밤을 주워 모았다가 추석이 되면 주변 분들께 나눠 줬는데 올 해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추석에 쓰라고 모기에게 헌혈까지 하면서 주워 온 것이다.
"선생님 이거~"
건우아빠가 놀이터 텃밭에서 배추벌레를 잡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귀가를 위해서 아이를 차에 태우다 말고 부끄럽게 쇼핑백을 건넸다.
"저희 선물 안 받는 거 아시잖아요."
"원장님 드시고 힘내시라고요. 요즘 너무 말랐어요."
3남매 중에 마지막 늦둥이 아들까지 보내는 건우아빠는 어렵게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 서른이 가까운 조카들을 보낼 때부터 알던 사이니까 참 오랜 인연이다.
"그동안 제가 살이 쪘던 거예요. 원래대로 돌아온 거라니까요."
농담처럼 대꾸를 했다. 어떤 마음으로 선물을 준비하셨는지 그 정성이 느껴졌다. 가끔은 선물이라기보다 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일 때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김영란법을 고민하지 않고 받아서 지혜롭게 사용한다.
"저만 살찌면 안 되니까 선생님들하고 나눠 먹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퇴근 전에 교사들은 홍삼을 한 봉지씩 마시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선생님 나 퇴근해요. 막내 주라고 수박 하나 사다 놨어요. 추석 선물이에요."
사무장님의 뜬금없는 수박선물에 나는 잠깐 '수박?' 하다가 왜 수박인지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막내가 수박이 먹고 싶다고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다.
"엄마, 수박 사주면 안 돼? 수박 먹고 싶어."
"요즘 수박 안 나와."
"아니야 플러스 마트에서 팔아. 친구네서 먹었는데 거기서 샀대."
"있어도 너무 비싸. 지금은 돈이 없어. 월급 타면 사줄게."
"그럼 초밥도 못 사줘?"
"그건 생선 사다가 만들어 줄게."
우리 대화를 들은 사무장님이 다음 날 점심을 먹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막내 수박은 사줬어?"
같이 밥을 먹던 동건이 어머님도 수박 얘기를 듣고 '사주지 뭘 그랬냐.'라고 하셨다.
"돈도 돈이지만 상황이 안 되면 참는 것도 알아야 하고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하려고 안 사줬어요. 그랬더니 자기 용돈으로 산다고 해서 마트에 수박이 안 나온다고 진정시키고 연어 사다가 초밥 만들어 먹이고 입 막았죠."
이런 사연을 거쳐서 수박 한 통이 추석 선물이 된 것이다.
"여기 수 박은 어디서 났어?"
퇴근하고 보니 식탁아래 수박 한 통이 놓여 있었다,
"막내 먹이라고 하시면서 동건이 형 엄마가 가져다주셨어."
이렇게 수 박 두 통이 우리 집에 굴러왔다.
수박은 수박이 아니라 사랑이다.
우리 딸은 사랑받는 행복한 딸이다.
받은 사랑을 나누는 딸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