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가을 사이를 함께 걷다.

by 앞니맘


횡단보도를 건너서 고깃집 앞을 지났다.

작은 정원이 있는 2층집 입구에

키다리 해바라기와 대공만 남은 옥수수 줄기가

함께 걷는 우리처럼 제법 잘 어울린다.


얼마 전에 심었을 여린 잎의 배추와 무싹을 보면서 11월에 김장을 이야기하고

주인의 수확을 기다리며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밭 앞에서 고추값이 금값이라고 부러워했다.


추석 수확을 앞두고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던 벼가

논 바닥에 쓰러진 모습에 농부의 마음을 걱정하며 농사가 잘 되어도 걱정, 안 되어도 걱정이라며

인생사와 같다고 동의하면서 속 걸었다.


길가까지 뻗어 나온 고구마 줄기는 동치미와 알타리 김치까지 불러내고

논길 두둑마다 빈틈없이 심어 놓은 서리태콩과

들깨는 부지런한 농부, 우리 엄마를 소환한다.


산과 나무는 아직 여름이라고 아우성이고

들판 여기저기에서는 이제 가을이라고 속삭인다. 여름과 가을의 사잇길을 걸어 나온 우리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계단을 내려가기 전에 숨을 고른다.


들꽃과 잡초가 정원을 만들고 개울에 물 흐르는

소리와 징검다리가 '좋다.'라는 탄성을 불러낸다.


풀숲에서는 뱀이 개구리를 입에 물고 배를 채우고

물가 새들이 한쪽 다리를 들고 물속에 움직임에

집중하는 길을 따라 걷는다. 남편과 이것저것 두리번거리며 걸었던 그 길을 걸어간다.


오늘은 앞만 보고 걷는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 내 옆을 스치는 모습이고 내 뒤에 남겨질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나를 위해 기꺼이 걸어주는 사람이 있고

걷는 길에서 느끼는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감사하고 다행스러운 행복이다.


그리고 하나 더

제자가 엄마에게 보낸 한 마디를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와도 나를 계속 걷게 만들어 주는

문장으로 마음속에 저장했다.

"엄마가 선생님이랑 함께 걸어 주듯이
나는 작가님 대신 삼 남매에게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