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터는 남자

by 앞니맘


텃밭에 심어 놓은 곡식들은 주말마다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볕이 좋아서 입이 벌어지기 시작한 참깨를 수확해야 했다.


참깨씨를 직접 심으면 경제적으로 이익이지만 새들이 귀신같이 알고 씨앗을 파먹으러 참깨 밭을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든다. 그래서 씨를 뿌린 보람도 없이 싹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모종을 사다가 심기 시작했다. 올해는 모종을 사다 놓고 주말마다 일이 생겨서 제 때 심지를 못하고 처마 아래서 몇 주를 보냈다. 그래서 참깨 심기를 포기하려고 하다가 모판에서 꿋꿋하게 살아있는 참깨 모종을 모른척할 수가 없었다. 비가 오는 날 마늘 캔 자리에 참깨를 심었다. 농사는 심고 추수하는 시기가 중요하다. 늦었지만 잘 자라주길 바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키가 다 크기도 전에 꽃이 피었다. 투리가 맺히고 참깨의 모습을 갖췄다.

꼬투리가 영글면 잎을 먼저 제거해줘야 한다. 이유는 말려서 터는 과정에 마른 잎이 같이 섞이면 참깨만 골라내는 과정이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참깨 잎을 퇴근하면서 몇 개씩 따주다 보니 어느새 참깨 꼬투리가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새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우리 밭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신경 쓰지 못한 밭에는 풀이 더 많아서 수확량도 적을 것 같았다. '허리도 아픈데 새들이나 다 먹게 그냥 둘까?' 심을 때와 마찬가지로 잠깐 고민을 했다.

"뿌렸으면 거둬야 예의지."

내 마음을 고쳐 먹고 자리에서 일어나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장비를 챙겨서 밭으로 나갔다.

미리 사다 놓은 자리를 펴놓고 라디오를 켰다. 마지막으로 모기 기피제를 몸에 뿌렸다.


참깨만 있고 잎을 다 땄으면 낫으로 자르면 되는데 어쩔 수 없이 전지가위로 한 줄기씩 잘라서 펼쳐놓은 자리 위에 놓았다. 묶어서 세우면 좋겠지만 올해는 묶는 것은 어려울 듯했다. 이렇게 며칠 동안 햇빛에 뒤집어 가면서 말리고 마지막에 털면 참깨 수확은 끝이 난다. 예전에는 참깨 대공까지 땔감으로 쓰고 나면 버리는 것 하나도 없이 참깨의 역할이 끝이 났다.

잘라 놓은 참깨는 잘 덮어 놓고 참외랑 수박을 심었던 자리에 비닐을 걷어내고 삽질을 해서 땅을 고르고 알타리 무씨를 뿌렸다. 남편대신 아들이 나와서 도와줬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엄마, 힘든데 다음부터는 그냥 사 먹어."

"참깨는 아빠가 털었는데 이제 누가 턴다냐. 총각김치도 아빠가 좋아했는데 나만 먹게 생겼네."

나의 동문서답에 아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한 동안은 모든 일에 남편을 소환하면서 살게 될 것 같다.


평생 참깨처럼 고소하게 살고 싶었다.
이제 참깨처럼 버릴 것 없는
인생을 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