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집에도 유치원 마당에도 텃밭을 만들어서 채소와 참외 수박등을 심는다. 아이들의 관찰을 위해서 하는 교육활동이다. 올해도 종류별로 다양하게 심었다. 그런데 잘 자라고 있던 수박이 시들시들 말라죽기 시작했다. 누군가 잘 자라는 수박의 머리채를 잡아당겼다가 다시 올려놓은 것이다. 유치원 놀이터가 개방이 되어 있기도 하고 영아전담 어린이집 아기들이 유치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가끔 이런 행동을 한다. 그동안은 모종을 사다가 다시 심었는데 올해는 그냥 수박 심기를 포기했다.
"유치원에 심은 수박이 죽었는데 어쩌지?"
수박을 먹고 있는 딸에게 얘기했더니
"여기 씨앗을 심으면 되지. 내가 내일 가서 심을게."
씨앗만 심으면 모든 게 우리 집 텃밭처럼 되는 줄 아는 딸의 자신 만만한 말에 나는 웃으면서 알아서 하라고 대답했다. 다음 날 딸은 유치원 수돗가 옆에 있는 화분에 수박 씨앗을 꾹, 꾹 눌러서 몇 개 심었다. 그리고 모두가 잊고 있었다.
휴가를 끝내고 돌아오니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화분이 메말라 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다가 수박 줄기를 발견했고 줄기 끝에는 콩알만 한 수박이 달려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토마토와 풀들에 석여 있어서 수박싹이 자라고 있는 것도 몰랐다. 줄기를 따라서 눈을 옮겨보니 딸이 심은 수박 씨앗 중에 하나가 발아를 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나는 다소 냉소적으로 수박을 바라다보았다. '얼마나 버티려나.'가는 줄기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수박에 큰 희망이 느껴지지 않았다. 물만 대충 주고 일을 끝냈다.
"어머, 선생님 여기 수박 있어요."
아침 운행을 도와주는 서진이 엄마가 대단한 것을 발견이라도 한 듯이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알고 있어요."
나는 다소 건조하게 대답했다.
"너무 대단하지 않아요?"
서진이 엄마는 수박에 대한 감탄과 존경을 표시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옆에 있는 방울토마토를 따서 수박과 나란히 놓고 사진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서진이 엄마 모습이 더 예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박에 대해 무심했던 며칠 사이에 수박은 방울토마토 보다 더 크게 성장해 있었다. 그날 저녁 서진이 엄마 프사에 '나는 졸라 쎄다.'라는 멘트와 함께 아침에 찍은 수박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같은 수박이 서진이 엄마와 내가 다르게 보였던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내 곁을 말없이 지켜봐 주면서 '선생님은 대단해요. 고마워요.'라는 말로 응원해 주는 서진이 엄마의 눈에는 그 수박이 대견했을 것이고 반대로 나는 위태롭게 대롱대롱 매달려서 언제 어떤 자극에 떨어지거나 상처 입을지 모르는 수박이 현재 나의 모습처럼 느껴졌던 것 같다.
수박의 생육에 관한 이론적인 지식(대과 종은 착과 후에 40일~45일이 지나고 수확이 가능하다. 2주일 전쯤에 착과가 되었으니 9월 말까지 버텨줘야 하는데 사실 기온이나 절기상 노지에서 맛있는 수박으로 수확은 어려워 보임.)을 가져다 판단하기 전에 위태로운 그 모습 만으로도 나는 희망을 갖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남편을 잃고 어려운 상황에서 위태로운 줄에 매달려 애쓰고 있는 나를 위해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는 주변 분들과 나를 대신해서 대가 없이 뛰어주고 있는 대책위 작가님들은 나를 '졸라 쎈 수박'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도 있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희망의 줄기를 잡고 버틸 수 있는 것은 나의 의지를 믿고 함께하는 주변의 도움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수박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수박에게 힘이 되고 싶어졌다.
영양제를 들고 놀이터로 나갔다. 풀을 정리하고 태풍으로 흔들리다가 떨어질 수 있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 화분 위로 줄기를 옮겨주었다. 영양비료를 주고 물도 듬뿍 주었다. 그리고 수박에 영양이 집중할 수 있도록 필요 없는 꽃과 잎을 따주는 작업을 마쳤다. 나머지는 수박의 몫이다.
"수박아, 우리 졸라 쎄게 잘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