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남편을 떠나보내고 나는 무력했고 어디에도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텔레비전을 켜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실수 없이, 사고 없이 지내면서 사는 것이 목표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으로 들어오는 중에 풀밭으로 변해가는 마당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썩어서 발이 빠지는 데크와 벌들이 집을 짓는 난간의 모습은 자연 속에 그림 같던 우리 집이 어느새 폐가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마당에는 잔디보다 풀이 많았고 겨울부터 3월 초까지 보온 덮개로 덮어 놓았다가 걷어 놓은 마늘 밭은 풀이 더 왕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옆에 함께 심은 양파밭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잠시 서서 마당 구석구석을 바라보았다. 3월에 감자 심을 준비를 끝낸 시점에서 남편이 떠나고 텃밭도 그 상태로 5월을 맞이했다. '사람도 집도 관심과 사랑이 없으면 이렇게 변하는구나.'
원래 계획대로라면 남편이 아들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데크를 교체하는 공사를 시작했을 것이다. 계획은 그냥 계획으로 끝이 나고 잠시 잊고 있었다. 사실 집을 돌보지 않은 이유는 또 있었다. 주변에서 집을 떠나 이사하라는 의견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택을 관리하는 일과 마당과 텃밭을 가꾸는 일이 혼자 하기에 벅차고 집의 위치가 막내가 고학년이 되어도 등교와 귀가를 스스로 할 수 없는 동선이라는 게 이사 권유의 가장 큰 이유였다. 모두 맞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쉽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는 주택 담보 대출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그 보다 가족 모두와의 추억과 남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집을 떠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상황이 이래도 아이들의 의견을 듣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
"애들아, 너희들은 이사 가는 것에 대해서 어떡해 생각해?"
"우리 꼭 이사 가야 해? 엄마는?"
"주변에서 생각해 보라고 해서 물어보는 거야. 엄마는 너희들 의견이 제일 중요해."
아이들은 만장일치로 지금 집에서 살고 싶다는 의견을 냈고 문제점은 살면서 해결해 보자는 각오로 이사 이야기는 접기로 결정을 했다.
계속 살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니 손을 봐야 하는 곳이 더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디부터 고쳐야 살고 싶은 집이 될 것인가? 언제 고쳐야 적당한 시기인가?'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1. 마당과 텃밭에 풀 뽑기
(친환경 잠깐 포기하고 잔디만 사는 약 알아보기)
2.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데크 수리와 방수공사 상담하기 (2층데크에 지붕고민)
3. 화장실 줄눈 공사 등등
우선 예산 없이도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매일 저녁 퇴근 후 저녁을 일찍 해서 먹고 밭에 풀을 뽑기 시작했다. 집도 마당도 그리고 텃밭도 다시 나의 일상의 공간으로 들어와 나를 움직이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마당은 글쓰기보다 먼저 나를 다스려주는 공간이었다. 이 번에도 나는 마당에서 힘을 얻고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심을 수 없었던 척박한 땅에 풀을 뽑고 거름을 주고 채소를 심고 다시 풀은 뽑고 수확을 하고 또 다른 채소를 심고 하는 사이에 땅은 비옥해졌다. 내 마음도 그렇게 비옥함을 찾으리라는 생각으로 흙과 마주하며 마당에서 살다 보니 한 여름이 찾아왔다.
풀을 뽑고 나면 산딸기를 땄다. 남편과 매년 땄던 산딸기나무 앞에 서서 조용하게 딸기를 땄다. 맛이 단지 신지, 먹고 남는 것은 무엇을 만들지 뭐 그런 계획 없이 무념무상으로 딸기를 따서 그릇에 담았다. 딸기나무 가시가 손 끝에 박히고 팔뚝이 긁혀서 피가 맺혀도 아프지 않았다. 내 팔과 다리에 붙은 모기들의 공격도 받아 줄만 했다. 가득 담긴 딸기가 그릇 밖으로 흘러넘쳐서 더 이상 담을 수가 없을 때 비로소 집안으로 들어왔다. 딸이 먹고 남은 딸기는 습관처럼 청으로 만들었다. 달지 않게 만든 청을 듬뿍 넣고 탄산수에 얼음을 띄워서 먹는 음료는 작년과 다름없이 우리 집만의 특별한 음료가 되었다.
개의 공격으로 살점이 떨어져 나간 암탉이 흙 목욕을 통해 치유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나 역시 누더기가 된 내 마음을 자연에 맡기고 치유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내 인생 최고로 두렵고 아픔을 주었던 집은 나를 버틸 수 있게 잡아 주는 곳이 되고 있었다. 내가 마음을 둘 수 있는 공간을 여기저기 마련해 준 자연 덕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돈으로 환산하면 서울에 전셋값도 안 되는 집이지만 어떤 비싼 집의 정원과도 바꿀 수 없는 흙과 나무가 있고 풀, 새, 바람, 구름, 하늘 그리고 별과 달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늦가을에 남편과 심었던 마지막 마늘을 수확하고 마늘을 뽑은 그 자리에 참깨를 심었다. 토마토는 빨간색을 지나 농익어가고 상추는 대공이 올라와서 꽃이 피기 직전이다. 그래도 나는 남은 여러 씨앗을 시간차를 두고 여기저기 뿌렸다.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했다. 남편과 함께 했던 방식대로 씨앗을 뿌리고 여름 상추와 시금치 싹을 기다린다.
싹이 되어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있기에
나는 이 기다림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