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과 비바람소리에 눈을 떴다.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 44분이다. '시간도 참~.' 다시 눈을 감고 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굵은 빗방울 소리와 바람이 무언가를 흔들며 내는 소리가 들린다. 어제 날씨로 봐서는 비가 올 것 같지 않았는데 일기예보가 참 정확하다.
오늘은 딸아이 운동회 날이다. 몇 달 전부터 운동회 안내를 하면서 엄마랑 오빠도 참석하는 것이라고 좋아했었다.
"오빠도 운동회 올 거지?"
"너 계주 뛰면 가고."
오빠의 대답에 딸은 시무룩해져서 2등까지 나가는데 3등을 해서 못 나간다고 대답했다.
"오빠는 학교 대표로도 나갔었는데 몰랐지? 너도 연습해서 5학년 때 나가면 되지."
오빠가 안 올까 봐 걱정하는 딸에게 나는 말했다.
"오빠, 개인 달리기에서는 내가 1등을 할 거니까 꼭 와. 제발~"
오빠는 튕기고 딸은 설득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도시락 걱정을 하고 있었다. 아들들 운동회 때는 친구 엄마들하고 나눠서 음식을 준비해 갔었다. 나는 직장을 다닌다고 가장 쉬운 것을 맡았었는데 '이 번에는 어쩌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오빠들이 운동회 할 때는 운동장에서 부침개도 만들어 먹고 삼겹살도 구워 먹었는데 요즘은 못 하겠지?"
"점심은 준비하지 말라고 하던데 알리미 봐봐."
딸의 말을 듣고 확인해 보니 오전으로 끝이 나고 아이들은 학교급식을 먹는 것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틀 전에 문자를 받았다.
♤♤초등학교입니다. 10월 19일(목)에 예정된 가을한마당(운동회)이 비예보로 인해 운동장에서 성실관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기존 예정된 프로그램 중 트랙경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기는 계획대로 진행됩니다. 아울러 성실관 내부 공간 협소 문제로 학부모님들의 관람은 불가함을 알려드립니다. 본교 교직원 모두 원활한 운동회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안타깝게도 기상상황에 의해 이렇게 결정하게 됨을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학부모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이 짜증 나. 운동회날 비가 와서 체육관에서 한 다고 가족들은 못 온데."
딸이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인상을 잔뜩 쓰고 말했다.
"그러게 처음으로 우리 딸 운동회 구경 가려고 했는데 아쉽다. 내년에는 갈 수 있겠지 뭐. 취소된 게 아니니까 너만 재미있게 하면 되지. "
"그건 그렇지"
사실 딸은 아무렇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남편 없이 가는 애들 행사가 처음이라서 걱정이 되었다. 공개 수업도 거의 함께 갔었고 애들 체육대회는 한 번도 혼자서 참석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취소라는 문자에 마음이 편해졌다.
딸도 오빠를 꼭 오라고 졸랐던 것이 내 맘 하고 비슷해서였을까? 내년에는 나랑 둘이만 가게 될 수도 있는데.... 괜한 걱정도 해본다. 마음이 약해서도 자립심이 없어서도 아니다. 남편을 빼고 처음 보내야 하는 모든 시간이 지금은 낯설기 때문 일 것이다.
시간 위에 시간이 흐르고 기억이 기억을 덮어 주고
아픈 마음이 조금씩 희석되면 익숙해질 것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익숙함을 믿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