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행복을 다음으로 미루지 말고 살아.

by 앞니맘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남편이 떠난 이후로 친구들은 내가 먼저 연락을 하기 전에는 전화를 잘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동해서 연락을 할 때를 기다려 주는 친구 중에 한 명에게 전화를 했다. 20대에 내가 하던 짝사랑 때문에 속이 상했을 때도 남편의 일로 맘이 아팠을 때도 맘 놓고 얘기할 수 있었던 입이 무거운 친구다. 내 편을 들어주는 듯 상대방 입장도 얘기해 주면서 묘하게 나를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을 가진 친구는 오늘도 담담하게 안부를 물어 주었다.


"잘 지내지? 그동안 연락을 못했다."

"정리는 잘하고 있니? 소송 말고 별일은 없고?"

"소송은 판결 기다리면서 탄원서 쓰고 있고 별일은 없어. 정신 차리니까 여기저기 아프다."

"다른 건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만 건강관리는 미루지 말고 잘해라."

친구와의 일상 적인 대화가 끝나고 아이들의 안부도 끝이 났다.


"그런데 생활은 어찌하니? 시댁에서 도와주니?"

여자 동생 외에 아무도 내게 묻지 않았던 아니 묻지 못했던 경제사정에 대한 질문을 친구가 던졌다.

"어? 돈 없으면 빌려 줄거지?"

나의 엉뚱한 질문에 빌려준다는 대답과 함께 실제로 사정이 어떤지 진지하게 물었다. 혼자서 애들키우려면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그 친구가 먼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월급 타서 살고 유족연금 588,000원이 나오고 있지. 기타 정리하면서 남편 앞으로 나온 돈으로 대출을 일부 갚았고 집 수리해서 다 썼어. 애들 학자금은 사학연금에서 무이자 대출을 받았고 나에게는 마이너스통장이 살아있지."

대수롭지 않게 읊어대는 내 얘기를 듣다가

"너는 유치원 그만두면 연금은 나오지?"

사학연금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된다는 듯이 나에게 물었다.

"나오는데 우리 유치원이 늦게 가입이 돼서 얼마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엄마는 20만 원으로도 저금하면서 사는데 나도 가능할 거야."

친구에게 농담처럼 대꾸를 하고 있었지만 나도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댁에서는 아무 말 없어?"

"시댁에서는 우리가 돈이 많은 줄 알 수도 있어. 남편이 엄청 수입이 좋았던 걸로 알고 계셨으니까. 그래서인지 한 번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시네. 사실 조금 섭섭해. 생활비는 아니라도 내가 납입하는 보험금이라도 물어봐 줬으면 좋겠다."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는 대신 16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했고 그 보험으로 큰 수술이 있을 때마다 아무 걱정 없이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 돈이 작은 돈이 아닌 것이다. 딸아이 피아노 학비보다 많은 금액이다. 말을 할까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나는 먼저 얘기해 기를 바라고 있었다. 착한 며느리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버티다가 힘이 들면 그동안 혜택을 많이 봤으니 해약을 할 생각이다. 부모님 능력으로 하셔도 되고 형이 맡았던 부모님 병원비를 시동생에게 넘겨도 되겠다는 쪽으로 대략 마음을 정했다. 그런다고 나를 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편했다.


"친구야, 걱정하지 마. 직장 열심히 다니고 살다가 정 힘들면 고구마 농사를 짓던지 땅을 팔아서 쓰고 주택연금도 받고 하면서 살 거야. 힘들게 안 살 거야. 아무 도움 없이 시작해서 힘들게 모은 거니까 다 쓰고 빈손으로 갈 거야. 애들도 우리처럼 노력해서 살겠지 뭐."

얼핏 들으면 무소유를 실천하고 가겠다는 멋진 얘기 같지만 사실 별 대책은 따로 없다는 얘기였다.

"너 그 마인드 진짜 좋다."

내 얘기를 듣고 있던 친구는 원하는 답을 말한 것처럼 진심으로 공감해 주었다.


"애들 다 키우고 나서 네 인생 살아겠다는 생각 하지마. 그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지 말고 막둥이 키우며 너를 위 행복도 찾아가며 살아. 내가 그런 마음으로 애들 다 키우고 보니까 좋은 날은 다 가고 그 시간이 아깝고 후회스럽더라. 애들은 크고 너는 늙거든.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그런 거 애들 때문에 미루지 말고 같이 하라고."


경험에서 터득한 친구의 말이 내 혼란스러웠던 에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잃었던 내 삶의 방향을 잡아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삶의 지혜를 적어 놓은 어떤 책이나 지인의 조언 보다 가슴과 머리에 와닿는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아이들이 행복하고 강하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엄마 노릇을 하면서 내 행복한 삶도 미루지 않도록 아이들과 함께 궁리하며 살아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안고 길게 이어진 벌판을 걸어 나왔다.


"얘들아, 엄마가 오늘 손짜장 당기는데 갈까?"

"나는 안 당기는데."

딸의 시큰둥한 대답에 잠깐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럼 너는 가서 앉아 있어. 우리도 먹기 싫은데 너 때문에 간 적 많잖아. 오늘은 엄마 먹고 싶은 걸로 가."

아들의 말에 우리는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손짜장 집으로 갔다.


"엄마, 맛있어? 행복해?"
"이 맛이야. 엄청 해복해."
"근데 ~한 젓가락만 먹으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