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어때?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가 사랑했던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만났어?
여기는 날씨가 쌀쌀해졌어. 가을이 너무 빨리 떠나려고 하네. 가끔 자기와 걸었던 길을 걸어. 자전거를 타고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이 자기인 줄 착각하는 0.5초의 반가움에서 벗어나면 콧등이 시려. 하연이 엄마랑 서진이 엄마도 나랑 똑같은 말을 하면서 서로 울었어. 동네 아줌마들이 주책이지?
나는 길을 가다가 보도블록 틈 속에 핀 꽃을 보고 눈물이 쏟아지기도 하고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어떤 단어 하나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하는데 그냥 느껴지는 대로 내버려 두려고 해.
나는 매일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과 귀가해. 응원해 주는 자기는 없지만 글도 열심히 쓰고 있어. 주말에는 고구마도 캤고 아이들하고 집 주변에 아카시아 나무도 베어냈어. 아들 둘이 하는 짓이 자기랑 똑같아서 내가 잔소리를 한 바가지 했지. 상상이 되지?
오늘은 딸내미 옷을 사러 갔어. 1년 사이에 키가 많이 커서 옷장을 정리하고 보니 맞는 옷이 없더라고 이제는 내가 일방적으로 사주는 옷은 입지 않아. 핑크색 블링불링 원피스만 입던 딸이 무채색에 헐렁한 바지만 입어. 음악만 나오면 아무 곳 아무 때나 춤을 추는 딸의 미래가 참 궁금해.
엄마가 생일 때마다 미역국을 열심히 끓여줘서인지 나는 인복이 많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어.
서진이 엄마는 내 앞에서 주유 상품권을 가끔 흘리고가네. 주웠으면 쓰라고 하고... 어제는 갈비탕 맛집 가격 인상이 된다는 정보를 듣고 인상되기 전날 먹어야 한다고 포장을 해서 버리고 갔어. 그래서 주어 먹었어.
딸내미가 영어 잘하고 싶다고 얘기했던 거 기억나? 학원도 싫다고 하더니 문법책을 하나 사달라고 해서 둘째가 골라서 사줬는데 선희가 놀러 왔다가 영어공부를 봐주기 시작했어. 매주 한 번씩 와서 봐주기로 서로 약속하고 갔어.
"선희야 미안한데 내가 부자 될 때까지 주유비라도 받으면 안 되겠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문자를 보냈어.
"살다 보니 애들 옆엔 괜찮은 어른이 있으면 좋겠더라. 난 애들한테 그런 어른이고 싶고 같이 키운다 생각해 줘~."
선희다운 답장이지? 항상 내가 지는 기분이야.
자기는 잃었지만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가족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어.
"여보세요."
조금 일찍 자다가 전화를 받으면
"누나, 어디 아파?"
"언니, 무리하지 말고 빨리 쉬어. 내가 해 줄게"
자기가 좋아했고 자기를 사랑했던 내 동생들이 나를 매일 감시하고 걱정해주고 있어.
자기를 떠나게 한 것도 사람이고 나를 살게 하는 것 또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씁쓸해져.
자기가 나에게 멘털이 강하냐고 몇 번을 물었었지? 사실은 나 상처도 잘 받고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참는 편이야. 그리고 뒤끝도 장렬인데 몰랐었어?
하지만 이제부터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진짜 강한 멘털로 살 거야. 나는 엄마니까.
자기와 살았던 삶이 반, 앞으로 혼자 살아갈 날이 반이 남았어. 반반치킨처럼 맛은 다르겠지만 아이들과 행복한 맛이 되도록 노력할 거야.
잊으려고 억지로 노력하거나 아이들에게 아빠의 자리까지 채우려고 애쓰지 않을 거야. 힘들면 도움도 청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울기도 하며 살 거야.
봄이면 쑥을 뜯어 국을 끓이고 흙을 밟으며 씨앗을 뿌릴 거야. 여름이면 아카시아를 따서 빵을 만들고 버찌주스를 만들어 먹으면서 텃밭에 벌레를 잡을 거야. 그렇게 천천히 내 길을 가면서 자기 잃은 아픔을 잊을 거야.
자기는 나를 잊지 말고 사계절로 다가와 줘.
봄에는 싹으로 돋아나서 내 마음에 희망을 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비가 되어서 나의 갑갑함을 씻어 줘. 가을에는 푸른 하늘에 바람을 실어서 휴식시간을 선물해 주고 겨울에는 화려한 눈꽃으로 우리 집 나무 위에 피어나줘.
태어나면서부터 친구였던 자연을 벗 삼아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가면서 잘 살다가
큰소리치면서 자기에게 갈게.
남겨 놓은 숙제도
끝까지 싸워서 이기고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