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짜증이 나고 잠도 오지 않았다. 입맛도 사라지고 몸도 특정할 수 없이 아팠다. 이유를 못 찾고 방을 옮겨 자기도 하고 여기저기 파스도 붙여보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런데 달력이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9월 7일 최종변론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1심판결을 위한 마지막 변론일이 나도 모르게 나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던것이다.
지난 6월 처음으로 남편을 대신해서 아이들과 법원에 출석했다. 자리에 앉아서 낯설움과 두려움이 함께하는 공간을 살폈었다. 혼자쓸쓸하게 그곳에 앉아 있었을남편의 모습을 상상하니 기가 막혔다.
"재판에 앞서 먼저 고인이 되신 이우영 님의 유가족들께 안타까움과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법리에 근거한 합리적인 판결을 내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편의 사건은 사건이고 재판은 재판이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판사의 위로의 인사를 듣는 순간 법정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1시간 정도 진행된 변론 내용은 하나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닦아낸 휴지를 쥐고 있던 내 손을 바라보았다. 햇빛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손과 손톱 밑에 낀 까만 때가 보였다. 풀을 뽑고 토마토 곁순을 따주면서 손톱에 풀물이 들어 있었던것이었다.그 손의 모습이 바로 현실의 나처럼 초라했고 돌보지 못한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겨우 멈췄던 눈물은 다시 시작되었다. 울다 보니 재판이 끝이 났다.집으로 돌아온 나는 25년 만에 네일숍을 찾아가서 2만 원짜리 네일아트를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의 습관을 버리고 내 손을 위해 장갑을 끼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지난 오늘은 절대 울지 않고 제대로 지켜보겠다는 다짐을 하고 출발했다. 핸드크림도 바르고 손톱밑에 때도 확인했다.그런데 출발할 때 도착예상 시간은 1시간이나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대로 시작 전부터 도착예상 시간은 점점 늘어나서 '차를 버리고 지하철을 타야 하나?' 하는고민을 했지만 결국 재판 시작 시간 10분 전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주차장은 이중주차 할 자리도 없었다. 아들에게 주차를 맡기고 나는 4층으로 뛰어갔다.숨을 헐떡이며 변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후에 법정으로 들어갔다.
6월 재판 이후에 주고받은 문서에 대한 간단한 의견과 판사가 변호사에게 몇 가지 확인을 한 뒤에 재판은 마무리가 되고 있었다.
"판사님 오늘 피고 측에최종진술을 들어 볼 수 있을까요?"
우리 측 변호사의 말에 나는 5분 전에 부탁받고 준비한 최종진술을 시작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편으로 남편이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저는 유치원 교사입니다. 매년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악어와 악어새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입니다. 이 책은 동물단원에서 배우는 책이 아니라 신뢰와 공생에 관한 관계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한 책입니다. 남편은 악어를 믿었지만 악어는 입을 닫아버렸습니다. 이로서 남편과출판사와의 신뢰는 깨졌고 악어 입속에 갇힌 남편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남편이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마음으로 아침에 눈을 뜨고 현실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만남편 없이 아이 셋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중입니다.
남편은 돌아올 수 없지만 남편을 대신할 수 있는 남편의 작품이 하루빨리 가족과 팬들에게 돌아올 수 있도록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결을 부탁드립니다."
"사모님 최종진술 잘하셨어요. 동화 이야기가 마음에 남아요. 대단하세요."
5분 만에 만들어낸 최종진술이 식상하지 않아서 변호사들 마음에 들었던 거 같았다. 짧고 굵게 마음을 전하라는 말에 떠오른 동화였는데 좋았다니 다행이었다.마지막 최종진술이라면 좋을 텐데...
결심판결을 기다리는 2개월의 시간은 지금까지의 시간만큼이나 더디게 갈 것 같다. 마지막으로 탄원서를 준비해서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