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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Sep 17. 2023

엄마의 고백


즐겁게 밥을 차리는 날을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배고파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때'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은 내가 배고플 때다. 퇴근 전에 간식으로 포만감을 채우고 퇴근하면 밥을 하기가 싫어지는데 내 배고팠을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메뉴를 정하지 않고 냉장고 문을 열어도 유명 셰프 뺨치는 요리를 만들어낸다. (자화자찬)


그런데 3월 이후에는 나 스스로가 '배가 고프다. 뭐가 당긴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다 보니 계절마다 나오는 나물이나 채소도 아이들에게 제대로 먹이지  못하고  고기나 생선도 골고루 해 먹지 못하고 지냈다. 카드 명세서를 보니 그동안 살면서  외식과 배달을 가장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파서 입맛도 없었던 봄을 견디고 가슴을 태우는 원망과 분노가 함께한 무더운 여름을 보내기 위해서 후루룩 넘어가는 국수 종류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9월이 다가왔다.  


"요즘 왜 이리 기운이 없지?" 

 큰아들이 빨래 바구니를 들고 지나가면서  한 혼잣말을  듣는 순간 '?'하고 나도 모르게 대꾸 나다. 먹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훈처럼 말을 하고  살았는데 그동안 소홀했던 것을 인정하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누구보다 아빠를 가장 많이 차지했던 큰아들이 느꼈을 아픔 또한 컸을 것이다.  그 심정을 혼자 감당하면서 나와 동생들의 옆자리를 묵묵하게 지켜 준 큰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대신 좋아하는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훈련소에서  가장 먹고 싶었다는 '엄마표  삼겹살 제육볶음' 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고기를 확인하고 텃밭으로 나갔다. 대파를 뽑아서 다듬고 상추를 뜯었다. 8월 말에 배추와 함께 심은 상추가 제법 컸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입구에 심어 놓은 청양고추 두 개를 땄다. 창고에 들러서 봄에 뽑아서 보관한 양파 1개를  담아서 집으로 들어왔다. 상추는 물에 담가두고 양파 껍질을 까서 대파와 씻었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간장, 매실청, 남편이 먹다 남긴 소주를 적당하게 넣고 마늘을 넣어서 양념장을  만들었다. 


대파랑 양파를 썰어놓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대파를 넣살살 볶았다. 대파를 프라이팬 가쪽으로 벌리고 중앙에 삼겹살을 넣어서 익혔다. 노릇 노릇 하기 시작할 때 대충 잘라서 익힌 후에 양념을 넣고 뒤적거리다가 양파를 넣었다.


겉절이와 김장무를 솎아서 만든 열무김치를 꺼냈다.

"얘들아, 밥 먹어."

"이 익숙한 냄새는 뭐지?"

2층에서 내려오면서 큰 아들이 말했다.

"기운 없는 큰아들을 위해서 준비했어. 많이 먹어."

"짜 오랜만에 먹는 제육볶음이네."

배가 고픈 지 급하게 식탁에 앉은 아이들은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았다.

"미안해. 그동안 엄마가 입맛이 없어서...  일단 잡숴봐."

먹다 보니 깨소금 는 것을 잊었다.


내 상처의 깊이가 가장 깊은 줄 알았다. 그래서 내 입맛 가는 대로 먹고 아이들에게도 먹이고 살았다. 하지만 아이들의  아픔은 내가 헤아릴 수 없는 또 다른 고통의 깊이를 갖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아들의 입에 넣어 줄 음식이 떠오르는 은 내가 회복되고 다는 증거일 것이다.


자식, 내 자식들 때문에 산다고 떠들어 된 괴력의 엄마 같았지만
사실은 두려움으로 벌벌 떨면서
나 먼저  살아보려고 바둥대던
약하디 약한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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