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앞니맘 Aug 28. 2023

라면 때문이야.

남편이 나에게 남기고 간 과제는 삼 남매뿐만이 아니었다. 소송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떠난 것이 나에게는 더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부담이 크다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무게가 무겁다는 의미다. 왜냐하면 내가 모르는 길이기 때문이다. 몇 년을 진행했어도 여전히 낯설기만 한 문서와 단어들은 밑줄을 그어 가면서 읽고  다시 읽어도

"결론은 이게 증거가 될 수 없다는 뜻이야?"

라고 다시 다른 말로 해석을 해야 하는 참 기 싫은 논문 초안 같았다.


남편떠나기 얼마 전부터는 변호사의 변론 문서가 오면 대충 살펴보고 확인 절차를 마치는 일도 빈번해졌었다. 재판부는 시기가 되면 교체되고 추가 자료들을 요구했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소송의 내용이나 쟁점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쪽은 올해 큰 로펌으로 변호인단을 바꿨다. 하지만 서면의 내용은 별로 달라지는 게 없었고 같은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는 것도 변화가 없어 보였다.


"사모님 소송을 계속 진행하실지 말 지를 결하셔야 합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도 소송을 포기할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남편이 떠났다고 달라질 이유 또한 없었다.

"당연하죠."


소송승계 과정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승계를 맡아 줄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했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다양한 법조인들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3개월 안에 승계과정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미루던 사망신고를 시작으로 안심상속조회서비스를 신청했다.  

"자녀들은 상속을 포기하고 사모님만 상속을 하는 승계절차에 필요한 서류들입니다. 살펴보시고 계속 연락드리겠습니다."

처음에는 상속대상자인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승계를 하기를 원했다. 아빠의 일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소송관련해서 여러 서류나 동의를 받아야 하고 채무에 관련한 일들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에게도 책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문제는 내가 다 해결을 하고 끝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단독승계를 하기로 몇 번을 번복한 상태였다. 막상 변호사가 내게 전달해 준 준비 서류를 보면서 기운이 빠지고 숨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 자녀분들은 모두 상속 포기 신고를 하고,
- 이호리님은 단독상속인으로 한정승인을 신고하여야 합니다.
- 이후 이호리님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을 수계 하고, 한정승인심판이 수리되면, 한정승인의 항변을 하실 수 있습니다.

분명 변호사에게 설명은 들었지만 남편이 떠난 날부터 내 머릿속은 담을 준비보다 덜어 내고 싶다는 신호만 보내고 있었다.  '한정승인이  뭐였지?' 인터넷을 뒤지고 브런치에 글도 찾아보았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동생아, 나 머리가 둥둥 떠 있는 것 같아. 읽어도 무슨 뜻인지 계속 같은 곳만 읽게 된다."

"당분간 언니는 서류 같은 거 읽지 말고 쉬어. 내가 읽고 쉽게 설명해 줄게."

모든 서류를 동생과 공유하면서 동생의 도움을 받았다. 새롭지는 않지만 처음처럼 소송을 이어갔다.

[특별대리인 선임 관련]
- 특별대리인을 사전에 지정해야 합니다.
- 혹여, 법원이 직권으로 정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우리가 선정해도 법원의 결정으로 변경될 수는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예측이 어렵습니다
- 특별대리인으로는 작가님쪽 부모님이나 형제 중에서 하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미성년자가 둘이나 있는 상황이라서 시아버지와 시동생을 특별대리인으로 선임하게 되었다.

[특별대리인 선임 신청에 필요한 서류입니다]
1. 이호리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표초본 각 1통
2. 사건본인(자녀분들)의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초본 각 1통 (자녀분들마다 각각 서류가 필요합니다.
3. 자녀분들 중에 만 13세 이상인 경우에는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동의서 양식은 추후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
4. 특별대리인으로 지정되신 분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표등(초) 본 각 1통
5. 망인(작가님)의 폐쇄가족관계등록부에 따른 기본증명서(상세), 가족관계증명서(상세)  1통
6. 상속재산 목록(적극재산, 소극재산) 1통

적극적 재산과 소극적 재산은 또 뭐지? 지식창을 검색했다.

'적극재산은 현재 남아 있는 부동산, 은행예금과 적금, 주식, 자동차 등 실제로 재산이라고 말하는 모든 유·무형의 자산을 말하고 소극재산은 적극재산의 반대로 "빚"을 말하는구나. 또 하나 배웠네.'

[자녀분들 상속포기에 필요한 서류입니다]
1. 자녀분들 가족관계증명서(상세), 주민등록 등본 각 1통
2. 자녀분들이 미성년자이므로, 이호리 님의 인감증명서 1통
3. 망인(작가님)의 폐쇄가족관계등록부에 따른 기본증명서(상세), 가족관계증명서(상세)
4. 망인(작가님)의 말소된 주민등록등본
5. 소송위임장에 인감도장 날인 필요(양식은 추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호리님 한정승인 필요 서류입니다.]
1. 망인(작가님)의 주민등록등본, 기본증명서, 제적등본
2. 이호리님의 주민등록등본, 가족관계증명서, 인감증명서, 상속재산 조회내역
3. 배우자이므로, 이호리님의 혼인관계증명서
4. 소송위임장에도 인감도장 날인해야 합니다(양식은 추후 보내드리겠습니다)

수정과 번복을 계속하면서 서류와의 싸움을 하다보 니 특별대리인 선임을 준비하고 있던 둘 째아들생일이 지나서 성년이 된 것이다. 다시 특별대리인 선임 취하고 직접 상속포기를 하는 것으로 서류를 제출해야 했다. 

막내 역시 특별 대리인을 선임하고 상속 포기를 해야 할 경우 남편의 캐릭터 재산에 관련한 금액을 산정해서 제출해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다.

결국 의 상속포기를 놓고 사건을 상속한정승인으로 변경하기로 했다. 특별대리인 사건을 취하하법정대리인의 소송위임장을 다시 제출다.


인터넷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마지막 서류를 떼기 위해 휴가를 내고 하루종일  남편의 사망 관련 서류를 들고 헤매다가 저녁이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짜 힘들고 지친다. 내가 계속 버틸 수 있을까?"

힘든 하루를 정리하듯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현관문을 열었다.

"엄마 왔다."

"엄마 왔어? 우리 라면 먹는데. 엄마도 먹을래?"

라면을 먹던 아이들이 에게 말했다.

"엄마는 씻고 알아서 먹을게. 맛있게 먹어."

밥이 아니라 라면 때문이었을까? 씻는다고  욕실로 들어가서 옷을 벗기도 전에 샤워기를 틀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아이들에게 들키고 싶지가 않았다.

'이 눈물은  분명 남편이 아니라 라면 때문이다.'라고 라면을 핑계 삼아 실컷 울고 씻고 나오니 동생에게 문자가 와 있다.



언니,  힘들면  승계도 하지 마.
진심이야. 지금 언니가 더 중요해.
매거진의 이전글 검정고무신  토크 콘서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