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큰 아들이 신체검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 다가오자 집에서 몇 시에 나가야 하는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이 아침 일찍으로 잡혀서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쩌냐 엄마는 평일이라 데려다줄 수도 없고."
"그러게 시간이 애매하네."
아들과 내가 차량 노선을 찾으면서 난감해하고 있는데 평소 같으면 '뭘 데려다줘'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터미널 새벽 버스 시간표를 알려 주었을 남편이
"내가 데려다줄게."
흔쾌히 아들을 태워서 신검받는 장소까지 함께 했고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돌아왔다. 저녁에 남편에게 물었다.
"학원은 한 번도 데려다주지 않으면서 웬일이야."
"군대 가려고 신검받으러 가는 마음이 학원가는 마음에 몇 배는 무거울걸. 자기는 몰라."
"여자는 모른다?"
군 입대를 준비하는 남자만 이해할 수 있는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을 알아채고 아빠가 함께 공감해 주기 위한 동행이었다. 그 뒤로 아들이 재수를 하는 기간에도 내가 아주 아파서 운전이 불가능했던 두 번 정도의 시간을 빼고는 터미널까지 데리러 나가는 몫은 여전히 나의 일이었다. 아들이 폭우 때문에 학원 앞 정류장 근처에 물이 갑자기 차서 맨홀에 빠진 날도 다 젖은 몸으로 버스를 타고 귀가하게 했던 얘기를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되새김질하듯이 아직도 한다. 남편은 술을 먹고 자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도 그날은 막내 때문에 학원까지는 나갈 수가 없었다.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아들은 많이 섭섭했던 모양이다.
2020년 아들 군입대를 앞두고 포항까지 데려다주려면 자동차가 달릴 수 있을지 걱정을 했다.
10년이 넘어서 여기저기 고장이 나기 시작한 차를 태우고 강화에서 포항까지 가기에는 무리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나도 그 생각했는데 이 번에 차를 바꿀까 봐."
"그러던지."
"정말?"
새것은 무조건 싫어하는 남편이 자동차를 바꾸자는 얘기에 저렇게 쉽게 승낙을 하다니 놀랄 일이었다.
결국 우리는 아들의 군입대를 위해서 차를 미리 바꿨고 그 차를 타고 포항까지 달려갈 수 있었다.
포항에 도착해서 짬뽕 한 그릇을 먹고 나오는데 2월 초에 부는 바람은 마음만큼이나 추웠다. 최대한 간편하게 입고 온 아들에게 남편이 입고 간 점퍼를 벗어서 입혔다.
"어차피 옷은 집으로 보내줄 거니까 이걸 입어. 바람이 장난 아니다."
아들을 챙기는 모습이 그날만큼은 달라 보였다.
돌 이후로 짧게 자른 아들의 머리를 보면서 '잘 어울린다. 제대하고도 그렇게 자르는 게 좋겠다.'라는 말을 하면서 부대 근처에 도착하니 해병대 입대할 많은 아들들이 보였다.
"내가 대신 들어갈까?"
"진짜? 아빠는 경험 있으니까 잘할 텐데."
두 남자가 말도 안 되는 농담을 너무 진지하게 해서 나는 끼어들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 남편이 아들에게 쓴 손편지에서 농담 같은 진담이었음을 알았고 아빠의 진심을 느꼈다는 아들의 답장을 볼 수 있었다. 평소 서로에게 별 공감 없다고 확정했던 내 생각은 오답으로 결론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입소식도 없이 입구에서 아들을 내려주고 가족들과는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차를 타고 주변을 몇 바퀴 돌다가 입소식 시간이 남은 상태로 아들을 내려줬다.
"너무 일찍 내려줬나 봐. 몇 바퀴 더 돌고 내려줄걸"
남편은 차 밖에 우두커니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아쉬워했다.
"어차피 가야 하는데 몇 분 늦게 들어간다고 달라지나. 서로 울기 전에 빨리 가."
나의 재촉에 백 밀러에 비치는 아들을 보면서 속도를 내지 못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그 몇 분이 얼마나 큰데..."
남편 말이 맞았다. 아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훈련소 입구에서 한 참을 서 있었다고 했다. 나와 남편이 눈물을 훔치며 돌아오는 동안 아들도 울고서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둘째 아들이 신검을 받기 위해 형이 갔던 장소에 가야 한다.
"나는 아빠가 데려다줬는데..."
"찾아보니까 교통이 나쁘기는 해."
"너 몇 시까지야?"
"1시까지니까 새벽에 안 나가도 충분해."
아들들이 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아무 말 없이 빨래 정리를 했다.
"너 군대 갈 때는 내가 데려다줄게."
"진짜? 그때까지는 형 운전 실력이 늘겠지?"
연애시절에도 한 번도 쓴 적 없는 편지를 군에 있는 큰 아들에게는 매주 써서 보냈었다. 손글씨에 그림을 그려서 보냈던 편지내용이 가슴 절절하거나 눈물을 쏟게 하지는 않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고 아빠가 남자로서 군대 선배로서 보내는 메시지를 충분하게 담고 있었다.
둘째에게 형이 있어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