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에 동료 교수님과 계획한 전시회 준비를 위해 남편과 함께 인사동에 갔었다. 그림 크기도 정하고 전시장 분위기 등을 살펴보는 시간이었다.
"손은 느리고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걱정이네. 8월도 금방일 텐데."
남편은 전시장을 돌아보는 내내 전시회에 내놓을 그림을 제때, 마음에 들게 그릴 수 있을지 고민을 했었다. 만화만 그리던 남편에게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이번에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좀 편하게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떨려?"
"떨린다기보다 부담스럽지."
처음 하는 전시회가 만화 전시회가 아닌 것도 아쉬웠고 팬이 아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린 그림으로는 신인 작가나 마찬가지였지만 부담감은 30년 경력의 작가가 갖는 부담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신인인 듯 신인 아닌 신인 같은 뭐 그런 느낌으로 전시장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은 어떤 일이든 다 부담스럽지. 저질러야 결과도 있으니까 나쁜 짓 아니면 그냥 저질러 보는 심정은 너무 무책임한가?"
남편의 전시회 준비는 이것으로 끝이 나고 말았다.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8월이 오기 전에 떠나버린 남편의 전시회는 사포질과 아크릴 작업을 끝낸 캠퍼스만 주인을 잃고 남아 있었다. 방을 청소할 때마다 '진작 만화 전시회라도 할걸' 후회를 하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뜻밖의 제안으로 8월에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전시회라는 단어 앞에 추모라는 단어가 붙여진 것이 아프기는 하지만 나와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 일이다. 짧게 살다 간 이우영이라는 만화가를 기억하고 기록을 정리하는 시간을 동료 작가와 팬들이 함께 준비해 준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대책위를 통해 추모전시회 제안을 받았을 때는 망설였었다. 심신의 피로가 누적된 상황이었고 겨우 진정되어 가는 과정에서 남편을 떠올리며 준비해야 하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빨리 잊고 싶다는 마음도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검정 고무신 만화가 이우영의 기록을 돕기로 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낡고 냄새나는 앨범을 열고 30년 전 아니 그 보다 훨씬 전, 만화가의 꿈을 키웠던 시절부터의 추억을 더듬더듬 살피기 시작했다. 발가벗은 아기가 짓궂은 모습 가득한 꼬꼬마로 성장하고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한 만화과 동기들과의 학교생활이 담긴 사진첩 속에 20대 이우영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 만화가로서 치열했던 시간과 연인이라는 관계를 시작으로 부부가 되고 3남매의 부모가 되었던 시간 속으로의 여행도 떠날 수 있었다. 잠시나마 미소를 짓기도 하고 수다를 떨 수도 있었다.
그동안 우리 부부는 이렇게 예쁘고 기분 좋은 추억을 소환할 마음의 공간을 비우지 못하고 살았다. 행복하고 사랑했던 기억을 저장만 했을 뿐 열어보려고 하지 않았던 어리석음이 후회스러웠다. 만약 조금 일찍 이런 시간을 서로가 함께했다면 ‘남편에게 소중한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며칠을 남편의 흔적을 찾아 안과 밖을 찾아다녔다. 이면지에 그린 캐릭터 한 컷과 포스트잇에 적은 메모한 줄도 버릴 수가 없었다. 함께 심고 가꿨던 마당의 나무와 텃밭도 소중한 공간이었다. 삼 남매의 장난을 보면서 함께 걸었던 산책길도 남편과의 히스토리로 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들여다보며 모으고 정리를 하다 보니 전시회 준비의 끝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전시회가 시작도 되기 전에 내 마음에는 커다란 치유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남편과의 마지막이 아프고 아팠던 기억으로 저장되어 내 인생의 커다란 바탕화면에 열어보기 두려운 폴더로 남아 있었는데 지금 나는 남편의 인생이 불행하다고만 정리하지 않아야 맞고 우리의 만남이 소중한 인연이었으며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이 행복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수정을 끝내고 저장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빛나고 아름다웠던 날을 함께 했던 연인이었고
소중한 인연들을 함께 공유했던 부부였으며
아프고 좌절했던 시간을 치열하게 함께 싸우고
서로를 일으켜 세웠던 동지로 기억하며 보낼 것이다.
남편이 어떤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냐는 질문에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한
불행한 만화가가 아니라
짧았지만 만화가 전부였고
많은 사람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고 떠난
행복한 만화가로 기억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