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추모 전시회 준비를 위해서 서울에서 담당자들이 아침 일찍 집을 방문했다. 하루 일정에 대한 안내를 받고 있는데 동생에게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다는 메시지를 띄우고 듣던 설명을 계속 들었다.
"여보세요. 집에 사람들이 와서 전화를 못 받았어. 비가 많이 왔는데 괜찮아?"
"언니네 집은 괜찮아?"
"공사를 미리 한 게 탁월한 선택이었어."
"언니, 우리가 맘 편한 날이 없다."
동생의 말에 나는 가슴이 덜컹해서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엄마는 안 다쳤는데 우리 집 뒷산이 무너져서 옆집이랑 우리 집 창고랑 보일러실이 텃밭까지 다 휩쓸려 내려갔어. 인터넷에 검색하면 우리 집 나와."
뉴스에서 기가 막힌 우리 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가 새벽 5시에 밥을 하기 위해서 부엌에 있는데 '쾅'하는 굉음과 함께 집안에 전기가 나갔다고 한다. 놀란 엄마가 밖으로 나가보니 뒷산이 무너지면서 토사가 집을 밀고 밭을 지나서 도로까지 밀려 내려온 상황이었다. 두근 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릴 시간도 없이 남동생과 마을 회관으로 대피한 것이다. 엄마와 남동생 모두 다치지 않았다는 말에 일단 안심을 했지만 몇 백 년 동안 아무 일이 없던 산이 무너지다니 믿기지 않았다. 남편 일로 엄마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졌는데 오늘날벼락같은 일이 또 일어난 것이다.
"엄마, 괜찮아요?"
"회관여. 니 집은 괜찮아?"
"우리 집은 미리 고쳐서 괜찮아. 엄마 안 다쳤으니까 됐어요."
"올 해는 왜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나나 모르겄다. 살면서 이런 일까지 당할 줄은 몰랐네."
메마른 목소리로 전하는 엄마의 말에 잠깐 말문이 막혀버렸다. 엄마가 지금 어떤 심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동안 좋은 일도 있었으니까 안 좋은 일도 있는 거지 뭐. 엄마가 안 다친 건 엄청 다행이잖아. 집은 고치면 되는 거고."
"그려. 암 걱정 말고 너나 잘 지내. 니 동생들이 다 와서 해결하고 있으니까 여기 걱정은 말어. 시에서 나온다고 하니까 기다려보고 있는겨. 비가 그쳐야 뭘 할 텐디 비가 계속 온다."
"승희네 집에 가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회관에서는 잠도 제대로 못 잘 거 같은데 아줌마들 수시로 와서 이것저것 또 묻고 하면..."
"아녀, 여기서 집을 지켜보고 있어야 상황이 어찌 되는지 알지. 거기가 있으면 답답해."
엄마는 어느새 내 걱정만 하면서 안심을 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이 번에도 여동생을 중심으로 막내 동생까지 모두 내려가서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엄마를 진정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올 해는 왜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자꾸 일어나나 모르겄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서 엄마께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남편이 떠난 이후로 한 동안 마을 회관도 잘 나가지 않으시고 멍하게 앉아 있는 일이 많았고 화단에 피는 꽃을 보면서 '꽃은 피고 또 지고하는데 우리 사위는 이제 영영 못 보는구나.' 하면서 울었다는 얘기를 동생에게 듣고 한 동안 전화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시련이 우리 가족을 또 찾아왔다.
"그런데 우리 놀던 뒷산이 그렇게 지반이 약했니?"
"지금은 우리가 놀던 산이 아니야. 올봄에 산 위에 나무 다 베고 흙을 다 파서 묘지를 정리한 집안들이 있어. 그것도 급한 일 끝나면 종친회에 알아볼 거야."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미친 거 아니야? 사람들이 다 산 밑에 모여 사는데 허가는 제대로 받고 그런 짓 하는 거야?"
"자연재해인지 인재 인지는 좀 지켜봐야 하는데 산사람보다 죽은 사람만이 먼저였나 봐."
무너진 산을 어떤 방법으로 복구를 하고 우리 집과 옆집 상황을 원래 대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켜봐야 한다. 집이 복구가 된다고 해도 앞으로 그곳에서 엄마를 계속 살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비가 올 때마다 울었던 청개구리 신세가 될 것 같아서 불안하다.
자연이 주는 경고가 이미 한계 상황에 다다른 거 아닐까? 인간이 자연을 향해 욕심내고 함부로 대한 벌을 욕심도 없고 풀한 포기 나무 한 그루 함부로 대한 적 없는
우리 엄마 같은 사람들이
대신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