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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Nov 09. 2023

'검정고무신'을 신고 뛰어보자.

2003년 11월 9일이 시작되고 한 참이 지나고 있었지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하고 소와 같은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출근 준비를 했다.

"엄마가 오늘 아빠 재판 때문에 오빠랑 서울에 가니까 끝나고 유치원에서 기다려."

딸에게 아침을 차려주면서 말했다.


"언니, 어디야? 나 지금 유치원에 도착했어."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는 차 안에서 동생의  전화를 받았다. 나와 함께 법원에 가기 위해서 휴가를 내고 새벽 4시에 출발해서 내가 출근도 하기 전에 도착한 것이다.


1심 판결을 듣기 위해 작가님들과 변호사, 기자들과 지인들이  법정 안에 착석했고  서로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판사의 입장을 기다렸다.

"니 너무 떨린다."

동생과 손을 꼭 잡고 판사의 판결에 집중했다. 판결문을 읽어가는 판사의 음성과 기자들의 타이핑 소리, 내 심장 뛰는 소리가 3중주처럼 느껴졌다.


'각하'라는 단어에 가슴이 무너졌고 '해지'라는 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소송비용출판사 쪽이 80%를 내야 한다는 판결은 승소 같았고 7,400만 원을 출판사에 줘야 한다는 말은 패소 같았다. 나는 어렵고 낯선 법률 용어가 무지 정리가 되지 않아서 기뻐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상태로 자리를 지켰다.


얼떨떨한 상태로 1심선고가 끝이 났다. 기자들의 질문에 변호사께서 먼저 답변을 시작했다.

"'검정고무신'이 결국 이 작가의 유족 품에 돌아왔음이 확인됐지만 계약이 무효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아쉽고 고인이 마음고생 한 부분에 대해 충분히 위로받을 판결은 아닌 것 같습니다. 판결문을 받아보고 2심에서 충분히 다툴 것입니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나에게도 입장을 물었다.

"너무 떨리고 너무 힘든 밤을 보냈고 오늘 판결이 아쉬운 마음이 많이 기는 하지만 남편이 만족하는 결과 낼 수 있도록 항소해서 (재판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겨우  말을 했다.


재판부는 출판사와 2008년에 맺었던 계약은 인정을 해주고 우리가 반소로 제기한 계약무효 대신 해지를 선고한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결과를 기다리는 가족과 지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7,400 만원을 줘야 한다고요?"

모든 분들의 공통된 질문이었다.

"이번 반소에서는 다툴 내용이 너무 많아서 우리 쪽 손해배상 청구는 하지 않았어요. 이제 할 거예요."

라는 대답을 반복해야만 했다.


오늘밤은 어디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까지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담아 글을 남겨본다. 와 같은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작가님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지금 시동생이 대책위 단톡 방에 프사 하나를 올렸다. 검정고무신 할머니 캐릭터와 함께'flex'라고 쓰여 있는 출판사 대표의 프사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약을 올릴 때 하는 행동처럼 느껴져서 코웃음이 나온다. 

오늘 함께 있어야 마땅했을 남편을 떠올리며 '검정고무신'을 신고 더 뛰어 보겠다는 약속을 해 본다.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일부 승소로 시작한 창작자들의 창작환경이 조금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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