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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Nov 23. 2023

항소를 준비하는 마음

남편이 떠나고 8개월 만에 1심판결이 내려졌다. 승소에 가깝지만 딱 떨어지는 느낌이 없는 판결에 나는 또 선택을 해야 하는 걸음을 옮겨야 다. 판결이 나면 납골당에 다녀오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가지 않았다. 판결문의  해석도 끝나지 않았지만 내 마음도 결정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1심판결 이후 2주 만에 변호사들과의 미팅을 위해 새벽길을 달렸다.  아침 10시에 맞추려면 출근 시간, 도로 정체를 감안해 7시 전에 집에서 나가야 했다. 달리다 보니 지난봄에 남편 학교에  데려다주러 갔던 기억이 났다. 학교일과 병원검진이 있어서 겸사겸사 함께 가야 했었다.

"출근 시간이라서 밀릴 것 같은데 새벽 5시쯤 떠나는 게 어떨까? 늦어서 조마조마한 것보다 일찍 가서 기다리는 게 좋은데."

"너무 일찍 아닌가?"

"그럼 6시?"

6시에 떠나겠다고 했지만 결국 7시가 다 되어서 떠나게 되었다. 서울도 못 가  도로는 막히기 시작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도착 시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속으로는 '징그럽게도 내 말을 안 들어서 이 사단이다.'라고 백번은 생각했지만 말을 꾹 삼켰다. 남편의 표정 반성과 후회가 읽혔고 다리 흔들림의 속도에서 조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결국 방향을 틀어서 남편을 지하철 역에 내려주고 나는 혼자서 차를 끌고 남편의 학교로 향했다. 남은 차 안에서 속에 담은 말을 마구 중얼거리고 있었다.

"자기야, 조심해서 천천히와. 회의가 오전이 아니라  오후라네. 병원으로 먼저와."

전화기 넘어 남편의 목소리는 안도를  떠나 해맑기까지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잘했군. 잘했어 잘했군. 잘했군. 잘했어.' 노래를 해주고 전화를 끊었다. 여러 가지 일로 정신없이 살고 있는 남편이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도 했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그날의 상황이 떠오르곤 한다. 징그럽던 그 마음도 몰래몰래 눈을 흘기던 순간도 추억이 된다. 요즘 '모든 일은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이해가 될 때가 많다.


변호사 사무실에 1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리한  판결문과 질문지를 한 번 더 살펴보았다. 판결  후 어렵고 낯선 판결문을 동생과 함께  형광팬을 그어 가면서 긴 시간에 걸쳐 해석했다.  , 아프고 슬픈 해석이다. 퍼도 어쩌랴. 판사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상담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석한 것 맞는지  1차로 변호사들에게 멜을 보냈다. 을 받고 추가 궁금증 정리해서 또 보냈다. 그것들을 마지막으로  읽고 더 궁금한 것만 체크를 하고 차에서 내렸다.


10시에 시작한 미팅은 12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다. 해지는 되었지만  앞으로 꽃길만은 아니었.  '참 나쁜 사람들과 손을 잡았었구나.' 어깨를 아무리 펴고 걸어도 나도 모르게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을 느끼며 사무실을 나와서  으로  걸음을 옮겼다. 7400만 원이 아니라 7400원도 줄 수가 없다. '이제부터는 오히려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먹먹한 마음으로  항소를 결심하고 돌아왔다. 간단하지 않고 미래를 확신할 수 없는 오늘이지만 뚜벅뚜벅 앞으로 간다.


오늘 나의 선택이 최선이었고  
남편도 이런 나를 미안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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