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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Oct 11. 2023

국정감사라니....

국회에서 날아온 등기가 있다고 원에게 연락이 왔다. 남편의 사고를 잘 아는 집배원 아저씨는 집에 사람이 없는 것을 알고 중요한 서류가 올 때마다 나에게 미리 연락을 해준다.

나를 10월 10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참석해 달라는 등기다.

우체국에서 등기를 찾아서 한참을 뜯지 않고 들고 있었다. '내가 국정감사에 나간다니...' 복잡한 감정이 오갔다. 출석 동의서에 주소와 이름 연락처를 적고 사인을 했다. 스캔을 받아서 동의서를 담당자에게 발송했다.  


내가 출석에 동의한 이유는 하나다. 아직 1심판결도 나지 않은 상황인데 문체부의 시정명령  발표로 모든 것이 끝난 줄 아는 상황 때문이었다.

"이제 저작권이랑 재판은 다 해결된 거니?"

"아니, 이제서 최종변론 끝나고 1심 판결 기다리고 있어."

"사람들은 문체부에서 뭐 했다는 소식 듣고 다 끝나서 보상받아서 카페도 하고 전시회도 한 줄 알아. 나도 그런 줄 알았다야."

오랜만에 우리 집을 방문한 친구의 말이었다.

"그랬구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전에 롯데마트 상품 나오고도 나보고 돈 다 벌어서 어디 쓸 거냐. 직장 관둬라. 재력이 되니까 애를 셋이나 낳지. 뭐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 빌딩은 100채 있다고 해줬지."

친구에게 말하기 싫은 상황도 말 못 하던 이야기도 오랜만에 털어놓고 나니 조금 후련해졌다.

"여기저기 우영이 그림 나오고 상품 나오니까 그랬을 거야. 이런 줄 누가 알았겠냐."


남편의 사건을 계기로 저작권과 불공정계약의 문제를 조사해서 문체부가  시정명령까지 내렸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기분 좋은 생일문자 정도의 감동이었다. 시정명령 내용을 보고 사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상대로 '시정명령 따위는 개나 주라'는 식으로 기간은 끝이 났고 벌금 500만 원의 과태료를 내고 마무리할 것이다. 사실상 변한 것은 하나도 없고  예술인보장법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이고 그 일을 해주는 기관인 문체부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런데 내 입장과 다르게 문체부의 실효성 없는 발표가 나를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모든 문제가 끝이 나서 사업도 마음대로 하고 추모 전시회도 손해배상금 받아서 한 줄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니 기가 막혔다. 한마디로 남편 보내고 팔자 핀 여자 된 줄 나만 모르고 있던 것이다. 소문대로 되기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지만 사실 아직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는 시작도 못하고 있다. 11월 9일에 1심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남에 일에 관심은 짧고 남편의 일은 많은 사건 중에 하나인 것이다. 유가족에게는 잊지 못할 고통의 시간이었는데 잠깐의 깜짝쇼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사망 전에도 만화가협회를 통해서  문체부에  똑같은 신고를 했지만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예술인들 보호를 위해 나서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국정감사 자리에 섰다.


휴가를 내고 시간에 맞춰서 여의도로 출발했다. 대책위 간사와 만나서 대략 이야기를 나누고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사모님 신경 안정제나 청심원 가져오셨으면 이제 드세요."

간사가 전날 나에게  다른 자리보다 엄청 떨린다고 약을 준비하라고 부탁을 했었다

"아침에 먹고 왔어요. 너무 걱정 마세요."

사실 나는 아무 약도 먹지 않았다. 간사는 아직 나를 잘 모른다. 그래도 참 고마웠다.


"보시는 자료는 불공정계약의 종합세트입니다."

국회의원의 말로 시작을 했다.

시정명령 후에 사업자 측에서 연락이 왔는지 질문했고 나는 없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내 상황을 잠깐 설명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알 수 없는 설움에 쏟아지는 눈물은 지난번 문체부에서의 면담 때와 같았다. '내가 지금 여기까지 와서 뭐 하는 짓인가.'


생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끝이 났다. 의원당 7분의 시간과  질의 3분 총 10분이 주어졌다. 내 사건을 맡은 의원은 두 개의 사건나와 배우 총 2명의 참고인을  불렀다. 사실 5분으로 국회의원 질의와 답변이 끝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앞에 배우분이 많은 시간 설명을 하면서 나는 2분도 발언을 못하고 나왔다. 밤늦게 잠도 설치면서 준비할 이유가 없었다.  잠깐 엑스트라처럼 서 있다가 나지만 방송이 꺼진 상태에서 오고 갔던 내용들을 기사에 잘 담아준 기자들 덕분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야 했다. 속는 샘 치고라도 문체부 장관이 약속한 것들이 잘 발동하기를 바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남편은 없지만, 마음을 잘 치유하고
삼 남매와 잘 사는 것이 남편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저는 지금 불행합니다.
행복한 개인이 모여서 행복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사건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남편, 그리고 제가 겪은 고통을 다 같이 고민하고 해결해 주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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