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행복을 줬다면?

3가지의 목표

by 앞니맘

먹고 산다는 게 간단한 것 같지만 잘 먹고산다는 건 각자 의미가 다른 듯 싶다. 방송은 50억 몇 천억 하면서 돈의 양을 가늠할 수 없는 얘기들로 시끄럽다. 청약주 1주 배당받아서 팔고 따상 쳤다고 좋아하며 치킨을 뜯고 있는 내 모습이 웃긴다. 저 사람들은 어떤 세상 사람 인까? 저 세상에 입문해 보지 못해서 나는 그 맛을 모르고 있는 걸까? 진심으로 부럽지는 않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어차피 세끼 먹는 것도 줄여서 두 끼로 먹고사는데 50 억 있는 사람도 간식 포함해서 여섯 끼 이상 먹을 수 있을까? 이런 말을 하면 나보고 절을 끊을 때가 되었다고 남편은 말한다. 사실 나는 무소유가 아니다. 이미 너무 많이 소유하고 있다. 집도 있고 땅도 있고 가정도 있고 직장도 있다. 이 정도면 엄청 소유한 것이다. 집과 땅이 아직은 은행과 같이 소유하고 있고 아이들도 앞으로 10년 이상 돈 먹는 하마 이겠지만 내 것은 맞다. 얼마짜리 인지는 각자 계산 방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 에게는 50 억 이상의 소유 가치가 있다.


어릴 적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동네에서 우리 집은 밥도 제대로 먹었고 예쁜 원피스에 운동화와 구두도 신고 학교도 제대로 보내주는 환경이 었기 때문이었다. 내 친구들 중에는 보리밥도 제대로 못 먹고 신발도 검정고무신을 신고 책가방도 보자기에 싸서 대각선으로 메고 다니는 오빠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이 가난하구나' 하고 느낀 것은 중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우리 동네 아이들만 보다가 비교되는 친구들이 많아져서였을 것이다. 그래도 불편하다 생각했지 불행하다고 느낄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경제적 목표나 벌고 싶은 돈의 크기도 없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친구 집을 방문하면서 나에게 경제적 목표가 생겼다.


나는 아직 대학교에 다닐 때 일찍 결혼한 친구 집에 놀러 갔었다. 대학교를 떨어지고 바로 결혼을 한 친구 집은 이천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신혼집을 찾아가면서 신혼집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을 했다. 좋은 향기가 나고 하늘하늘 하얀 커튼이 드리워진 예쁜 집을 상상했다. 그런데 물어 물어 도착한 집은 가게가 딸려있는 어두운 단칸방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자취방과 다르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결혼 한 친구에게 아무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못했다. 절친이고 똑똑했던 친구가 '이렇게 결혼해서 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 내 마음이 얼굴에도 나타났는지 친구가 말했다.

"남편이 잘해줘. 가게도 남편 거야. 조금 지나면 이사 갈 거야."

"진짜? 좋겠다."라는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과거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어서 남편은 시댁에 가서 잔다고 자리를 피해 줬다. 여름이라서 샤워를 해야 했다. 샤워실이 따로 없었다. 친구와 나는 방 옆에 붙은 부엌에서 큰 함지박에 물을 받았다. 둘이 간신히 쪼그리고 앉아서 샤워를 했다. 함지박에 물을 바가지로 떠서 부어가면서 샤워를 했다. 친구가 말했다.

"샤워실 있는 곳으로 이사 가면 꼭 와라."

"왜, 이것도 재미있다. 하하하하."


친구를 만나고 오면서 처음으로 집에 대한 첫 번째 목표가 생겼다. 결혼하면 욕실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겠다. 나는 지금 욕실이 3개라서 청소 때문에 가정불화를 겪을 지경이다. 꿈을 이룬 것이다.


두 번째 나의 결핍으로 목표를 세운 것이 먹거리다. 가난하면 줄이는 것이 꼭 안 해도 되는 것과 꼭 안 먹어도 되는 것이다. 꼭 먹어야 하는 주식은 굶지 않았지만 돈이 있어야 먹을 수 있었던 것들이 있다. 그래서 돈을 벌면 실컷 먹어보겠다고 생각한 것이 있다. 술(생맥주), 오징어, 귤, 딸기다. 먹기는 가끔 먹는데 실컷 먹지를 못해서 오는 욕구불만? 대학시절 생맥주를 진짜 맘 놓고 먹고 싶었다. 막걸리를 사서 학교 잔디밭 구석에서 먹는 거 말고 제대로 된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실컷 먹고 싶었다. 취직을 하고 첫 월급을 타자마자 아직 대학에 다니고 있던 친구들을 찾아가 생맥주를 필름이 끊길 때까지 먹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고 나서 그 결핍은 해소가 되었다. 딸기는 겨울에는 슈퍼에서 사 먹고 봄에는 밭에서 따먹는다. 나머지는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능력이 된다. 오징어가 요즘 비싸져서 망설이기는 하지만 먹고 싶을 땐 주저 없이 바구니에 넣는다. 이럴 때 참 행복하다. 두 번째 목표도 이루었다.


마지 막 세 번째 목표는 보충수업비를 제때 내는 것이다.

지금은 오후에 추가로 하는 수업을 방과후 수업이라고 하지만 나는 보충수업 세대다. 보충수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던 세대다. 보충수업비를 별도로 납부해야 하는데 농촌은 봄에 돈이 없다. 농사지은 곡식들이 다 떨어져 가는 시기다. 생소한 말이지만 보릿고개, 춘궁기라는 말이 이 시기에 나온 말이다. 봄에 내는 보충수업비를 부모님께 받아가기가 참 어려웠다. 하루는 학교를 다녀오니까 마당에 개장사 자전거가 서 있었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검둥이를 사기 위해 온 것이다. 셋째 남동생이 그게 싫어서 검둥이를 풀어주고 도망가게 해서 검둥이를 잡느라 어수선했다. 잡혀서 끌려가며 우리를 바라보던 검둥이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팔려간 검둥이의 몸 값은 내 보충 수업비가 되었다. 어린 동생은 그 개장수를 따라가며 많이 울었다.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 그 감정이 남아 있다고 한다. 나는 눈물 고인 눈으로 우리를 보던 검둥이와 울다가 지친 동생을 보면서 목표를 세웠다. 보충수업비나 학원비가 없어서 빌리거나 소중한 것을 팔아야 하는 일이 없어야겠다. 그 정도의 부자는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아이들이 원하면 방과 후 수업비 정도는 고민하지 않고 납부할 수 있을 만큼 부자다. 그리고 나는 감사하고 행복하다. 나는 내가 목표한 경제적 꿈을 모두 이룬 셈이다.


나의 결핍은 나게 목표를 만들어 주었다. 그 목표를 이룬 나는 지금 행복하다.


더 큰 목표를 세웠다면 건물주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더 행복해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