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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모집 상담

by 앞니맘

"안녕하세요 **유치원입니다."

"문의할 것이 있는데요. 원아모집 언제 하나요?"

"11월 1일부터 시작합니다."

"언제 가면 되나요?"

"요즘은 직접 오시지 않고 처음 학교라는 홈페이지에서 합니다."

"유치원도 그래요?"

"네, 우선 모집과 일반 모집이 있어서 접수하는 날짜가 다르니까 홈페이지 열리면 들어가서 자세하게 보세요."

"그럼 유치원에서는 못하나요?"

"현장 접수도 있으니까 오셔도 됩니다. 10월 말쯤에 전화 주시면 더 자세하게 알려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또 전화드릴게요."


원아모집을 준비하는 시기가 왔다. 30년 전에는 모두가 손으로 만들어서 손으로 작성하는 시기였다면 현재는 모든 것이 컴퓨터 시스템을 이용해서 모집이 이루어진다. 몇 년 전 사립유치원 사태로 떠들썩했던 시기를 거치면서 많은 것이 학교와 같이 전산화가 되었다. 그중 원아모집도 처음 학교라는 시스템을 통해서 모집을 하게 된다. 도시가 아닌 우리 지역 유치원은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유치원을 옮기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도시의 경우 대형 유치원에 체육시설부터 수영장까지 갖추고 교육과정외에 다양한 특성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치원들은 상황이 달라진다. 몇 년 전까지 선착순 모집을 하면서 전날부터 줄을 서서 접수를 기다리는 유치원이 있었다. 그래서 12월이 되면 뉴스에 단골 메뉴로 올라오곤 했었다. 가족이 모두 흩어져서 원하는 유치원을 가기 위해서 줄을 섰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로서는 부럽게 시청을 했었다. 회의 때 만나는 시내 원장님들 중에서 원아모집 기간에 줄을 서서 예비 학부모들 때문에 뜨거운 차를 대접하느라 고생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나는 능력 부족인지 아직까지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다. 인구 대비 공. 사립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많은 지역이라서 라고 나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살았다. 유치원 안에서 운영의 과정과 현장의 모습을 아는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아이에게 최대한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교육하게 하고 싶은 마음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큰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던 2000년도 둘째를 보내던 2010년도 셋째를 보내던 2020년도를 돌아보면 엄마들이 유치원을 선택도 기준에도 많은 변화가 있다. 부모세대의 변화, 입시 제도의 변화에 따른 학부모들의 교육철학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어쩌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 일수도 있지만 30년의 변화를 기억해 본다.


#30년 전 유치원 입학상담

"친구들하고 잘만 놀다 가면 됩니다. 유치원은 교육비가 학원비보다 비싸죠?"

30년 전에 유치원을 보내시는 분들과 입학상담을 할 때는 마무리가 사회성과 교육비였다. 유치원 교육비가 학원비보다는 조금 높았다. 당시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 교육비는 45,000원 내 봉급이 249,500원으로 기억한다. 미술학원에서 유치원 교육과 비슷한 교육을 하고 있던 시대라서 그냥 학원을 다니는 유아들도 많았다. 그리고 학부모들은 친구들하고 안 싸우고 잘 놀 수 있도록 지도를 부탁했었다. 그 시절은 유치원이 12시면 끝나는 시절이었다. 잠깐 와서 아이들하고 자유 놀이를 하다가 이야기 나누기, 노래 한 곡, 간식 먹고 동화 하나 들려주면 귀가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귀가한 아이들은 집에서 실컷 놀거나 간혹 유아를 받아주는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었다.


#20년 전

"유치원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요? 급식은 잘 나오죠? 한글이랑 수는 하나요? 교육비는 얼마인가요? "

학원과 유치원이 구분이 되고 유치원 교육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생기는 시기였다. 맞벌이 가정이 늘어가고 유아들의 발달이 빨라지면서 유치원 연령보다 어린 영아들도 보 낼 수 있는 기관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즈음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에도 만 2세 반 1개를 개설해서 운영하기 시작했다. 도시락으로 시작했던 급식이 유치원에서 직접 하는 급식으로 10년 사이에 완전하게 바뀌었다. 유치원 급식은 엄마들이 제일 좋아하는 변화였다. 나는 유치원에 입학 상담을 하기 위해서 찾아오신 학부모님께 5개 영역을 설명하고 전인적 발달과 놀이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사진 등을 보여주면서 열심히 안내를 했다. 설명을 들으시면서 끄덕끄덕 리액션을 해주신 부모님의 마지막 질문은 한글이야기였다.

"그런데 초등학교 가기 전에 한글이랑 수는 떼어 주시나요?"

"예?"

"한글이랑 수는 다 배우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교재는 무엇으로 하나요?"

"한글이나 숫자도 교재를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동화책이나 이야기 꾸미 등을 가지고 언어 놀이로 연계해서 지도합니다."라고 대답하고 다시 설명하기가 일수였다.

"그럼 그냥 노는 거네요."

"아~, 놀면서 배우는 거죠 한글과 숫자의 기본을요. 자연스럽게 놀이처럼요."

"아, 그래서 여기는 한글 수 안 가르친다고 소문이 났구나. 그런데 교육비는 얼마인가요?"

"교육비는 ***입니다."

"병설유치원보다 엄청 비싸네요." 당시에 교육비는 지금처럼 정부지원이 되지 않고 인건비부터 공공요금, 차량 등 모든 운영비가 100% 학부모 부담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였다. 도시보다는 훨씬 낮은 교육비였다. 하지만 무상으로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지역마다 있던 이곳에서는 교육비를 부담스러워했다.

"그럼 그냥 학원 몇 개를 보내는 게 낫겠어요. 감사합니다."

허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그때까지는 내 고집대로 한글, 수교재를 사용한 수업은 하지 않았다. 노는 유치원으로 찍혀서 원아들이 오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0년 전

"유치원에서 현장체험은 얼마나 가나요? 급식 재료는 어디 것을 사용하나요? 특성화 중에 영어는 누가 어떤 식으로 하나요? 교육비 지원은 받을 수 있나요? 종일반은 다 할 수 있나요?"

정부 지원이 소득기준에 따라 차등지원을 시작했다. 소득과 연령별로도 지원이 달랐고 복잡한 기준과 지원방식으로 유치원에서의 업무가 매우 복잡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에게 정부지원은 사립유치원을 선택하는데 부담을 덜 수 있게 되면서 교육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졌다. 물로 그때도 교육비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비를 지급하더라도 학원 대신 유치원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요구하는 시기가 되었다. 한글, 수에 대한 나의 고집은 포기를 하고 한자도 8급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지도하기도 했다. 이 때는 영어에 대한 문의가 많았다. 영어학원이 영어유치원이라는 이름으로 고액의 돈을 받고 운영하는데도 운영이 잘 되는 시기였다. 현장에서도 영어를 하지 않으면 교육을 안 하는 것처럼 인식될 정도로 영어를 누가 와서 언제 어떤 방법으로 지도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가장 많았다. 이 시기에 난 한 번 더 고집을 부렸다. 기본교육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특성화 활동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는 지식을 다 동원해서 설명하곤 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의 요구를 무시한다는 것은 사립유치원 운영을 포기하는 것이다.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특성화에 영어를 넣었고 원어민도 왔었고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적용하면서 우리만의 방법을 만들어나갔다. 또 하나의 변화는 맞벌이가 아니더라도 종일반을 원하는 학부모가 100%에 가까워졌다. 유아들이 가정교육에서 기관 교육으로 옮겨지는 시기였다. 이제 급식 여부보다 급식의 질에 대한 문의를 하는 학부모들이 많아졌다. 무농약,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지 궁금해했다. 급식비는 학부모 부담이었기 때문에 질을 높이려면 학부모 부담금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학부모 설문지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축산과 수산물은 친환경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어 하고 다양하고 특별한 교육을 기대하는 것에 반해서 유아기 기본 교육에 대한 관심은 반비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했다.


#현재

"생태수업, 놀이수업 등등등 그리고 몇 시까지 봐주나요? 방학은 있나요? 없나요?"

요즘 유아모집 기간이 되어서 상담을 시작했다. 예전에 비해 처음 학교라는 유아모집 시스템을 이용해서 모집을 한다. 그래서 모집시기가 예전보다 빨라졌다. 시스템에 사전 입력을 위해서 유치원은 두 달 이상 빨리 모집 안내 준비를 한다. 급식은 무상급식이 되었고 몇몇 시도는 유치원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유치원 무상교육은 앞으로 더 확대될 전망이다. 도시의 유치원은 아직도 교육비에 민감하지만 내가 근무하는 유치원은 교육비에 대한 문의는 거의 없다. 유아 상담 질문에도 변화가 있다. 10년 전 질문에 추가되는 생태, 놀이수업 등 학부모들의 교육정보를 다 알아듣기가 어렵다. 그중 변화는 단연 운영시간과 방학기간이다. 늦게까지 잘 봐주기를 기대하고 방학도 없기를 바란다. 온종일 돌봄을 운영하는 유치원은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도 유치원에서 돌봐주고 있다. 맞벌이가 늘고 일찍부터 기관에서 영유아를 돌보는 사업과 지원이 되다 보니 기관의 책임감은 훨씬 더 커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로 인해서 가정보육을 해야 했던 학부모들의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이다. 몇 년 전까지는 여름, 겨울방학을 각 3주로 고집했었다. 교사들의 휴식을 보장해야 다음 학기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도 포기해야 했다. 학부모들에게는 1주일로 방학을 정하고 교사들과 협의 후에 돌아가면서 2주 정도의 방학만 보장해 주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와 교사들의 근무여건을 고려한 운영이 충돌하는 지점이다. 사실 국공립유치원은 제도적으로 지원이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사립을 찾는 학부모들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사립유치원도 대체할 교사가 많고 대체교사 인건비를 충당할 만큼 학부모 부담금을 많이 징수하는 곳은 가능한 얘기다. 하지만 지역 격차가 너무 커서 내가 근무하는 지역은 그 여유로움이 부러울 뿐이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교육과정도 돌도 돌고 돌아 이제 놀이중심 교육과정으로 돌아왔다. 교사의 역할은 아이들이 잘 놀 수 있게 지원해주고 지지해주며 함께 노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들도 학부모들도 힘들어한다. 어쩌면 유치원도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늦둥이가 최근에 유치원을 졸업했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교육경험이 많은 엄마이고 부정적으로는 늙은 엄마가 된다. 큰아이부터 막내까지 오랜 시간 유, 초, 중, 고의 교육과정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다. 가끔은 30년 전보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해졌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더 큰 책임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긴 시간 엄마로서 교사로서 변하지 않은 건 '내가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우리 아이들은 지금 행복한가?'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최근에 추가된 질문은 나는 지금도 유치원 교사로서 행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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