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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전 먹는 날

by 앞니맘

8월 20일경에 유치원 텃밭에 무와 배추를 심었다. 아이들은 매일매일 물을 주고 배추와 무의 상태를 살펴야 했다.

"선생님 큰일 났어요. 배추에 구멍이 났어요."

무를 심은 화분에 물을 주던 아이들이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렀다.

"여기에 구멍이 났어요."

아이들의 손가락은 무 잎사귀를 가리키고 있었다. 무와 배추살펴보면서'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잎사귀를 잘 살펴보면 애벌레가 있을 거야."

한쪽에서 배추에 물을 주던 내가 아이들에게 애벌레 찾기를 제안했다.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이 잎사귀 여기저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보호색으로 몸을 숨긴 애벌레는 아이들의 레이더 망에 걸리고 말았다.

"원장님, 여기 있어요. 빨리 와봐요."

찾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했고 자기가 더 급하다는 표정으로 '어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선생님처럼 잡아봐요."

나는 초록색 애벌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아이들에게 이야기했다.

"만져도 돼요?"

"만져보고 싶은 친구들만 잡아보고 만지는 것이 싫으면 안 잡아도 되는 거예요. 젓가락이나 장갑 끼고 만져도 됩니다."

귀엽다고 만져보고 싶어 하는 아이들부터 꿈틀거리는 것이 징그럽다, 무섭다고 하는 아이들까지 다양한 느낌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의 요구에 따라 애벌레 관찰 방법을 공유했다.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리는 애벌레를 보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시작했다.

"런데 애벌레가 왜 여기 있어요?"

"배추흰나비가 우리가 심은 무랑 배추 잎사귀에 알을 낳았어. 그 알이 커서 애벌레가 된 거야."

"왜 나비는 거기다가 알을 낳았어요?"

"애벌레가 무랑 배추 잎사귀를 먹고 쑥쑥 크라고 엄마 나비가 여기다가 알을 낳은 거지."

"우리는 아기 때 우유를 먹었고 애벌레는 배추를 먹는구나."

각자의 생각을 혼잣말처럼 또는 질문처럼 한참을 이야기했다.

"원장님, 초록색 잎사귀를 먹어서 애벌레도 초록색이죠?"

"맞아요. 애벌레 똥도 초록색이에요. 애벌레가 숨어있던 옆을 보면 똥이 한 줄 기차로 있을 거예요."

"애벌레도 똥을 싼데. 웃기지? 크하하하."

아이들은 애벌레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관찰에 집중을 했다.


"이제 애벌레를 어떻게 해요? 여기다 다시 놔요?"

나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애벌레를 무잎사귀에 다시 올려놓는 아이들을 향해 나는 할 말이 있다.

"얘들아, 애벌레를 그곳에 살려주면 잎사귀를 다 먹어서 배추랑 무가 크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어쩌라는 거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럼 애벌레를 어디다가 놔요?"

사실 난감하기는 나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생하면 안 된다'라고 가르쳐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배추와 무의 재배가 목적인 나는 당연히 애벌레를 잡아야 한다고 말을 하고 화단에 키우는 닭들의 먹이로 주라고까지 말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 마음은 '넣어둬. 넣어둬.' 시간이 걸리지만 아이들의 생각대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의견을 물었다.

"저는 그냥 나비가 되게 하고 싶어요".

"저랑 배추가 죽는 게 싫어요".

"나는 다 안 죽었으면 좋겠어요."

이 다양한 선택에 대해서 나와 교사들은 정리를 해야만 이 토론을 끝내고 교실로 들어가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얘들아, 그럼 무랑 배추가 쑥쑥 자라야 하니까 잡은 애벌레를 교실에서 키워 볼까?"

교사의 제안에 아이들은 환호를 했다. 이렇게 애벌레 수업은 일단 마무리가 되었다.


나는 달 정도 침 일찍 출근해서 애벌레를 잡았고 미안하지만 닭의 간식으로 던져 주었다. 아이들은 놀이시간에 나와서 내가 잡지 못한 애벌레를 잡았다.


"애벌레가 너무 많아요."

아이들도 매일 수십 마리씩 나오는 애벌레를 교실에서 다 키울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되었다.

"얘들아, 나비가 우리 무밭에 알을 낳지 않게 하는 방법은 어떨까?"

교사들의 제안으로 친환경 해충 퇴치제 만들기를 했다. 올해는 소주랑 계피를 이용한 퇴치제를 만들어서 뿌려주었다.


그렇게 키운 무는 뽑아서 집으로 가져갔고 남은 항암배추와 양배추는 요리활동으로 연결했다.

직접 배추를 뽑아서 씻고 맛을 보는 시간을 거쳐서 빵칼로 썰고 아이들 입맛에 맞는 치즈, 옥수수, 베이컨을 섞어서 부침가루에 물을 넣고 반죽을 했다.


나는 반죽을 받아서 오전 내내 배추 전을 부쳤다

"와~ 냄새 좋다. 맛있겠다. 그치~"

전을 부치는 내 앞에 앉아서 코를 킁킁거리면서 입맛을 다시는 모습이 제비새끼들 같았다.

"지호야, 너는 채소 안 좋아하잖아. 이거 먹을 거야?"

채소를 싫어하는 지호에게 물었다.

"채소가 아니라 배추전이잖아요."

모두가 더 많이 먹겠다고 경쟁하듯이 말했다.

"나도 뒤집어 보고 싶다."

교실로 돌아가던 가인이가 배추 전을 열심히 뒤집고 있는 나에게 살며시 다가와서 말했다.

"뜨거우니까 선생님 손 잡고 딱 한 번만 하는 거야."

가인이는 둘만의 비밀을 만들고 기분 좋게 교실로 돌아갔다.

비 오는 날 유치원을 가득 채운 배추 전 냄새는 아이들과 함께한 1년 농사를 마무리하는 잔칫날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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