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시작.

연재소설

by 앞니맘


회전의자에서 일어나 의자를 펴며 상냥하게 맞았다. 고진이 형이 ‘잘 골라서’ 보내준 세 사람이었다.

만예과는 나이대가 제각각이라 무턱대고 후배로 대할 수 없었다.
고기 굽듯 다루어야 했다. 태도는 상냥하게, 말투는 부드럽게.

“어서 와요. 만나서 반가워요.”

세 남학생은 다소 멍한 얼굴로 나란히 앉았다. 분위기상, 아무것도 모른 채 호출된 게 분명했다.


"저는 이지연이에요. 이름이 뭐예요?"

진심으로는 피하고 싶었지만, 불편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신상현입니다. 서울에서 왔어요."

말투는 딱 새내기지만 얼굴은 살짝 노안. 여드름 자국이 눈에 띄었다.

"저, 신입생 설명회 때 선배님이랑 게임했는데… 기억 안 나세요?"

통통하고 하얀 얼굴을 한 키가 제일 큰 학생이 물었다.

"무슨 게임이었죠?"

"짝짓기 게임이요."

기억났다. 나를 으스러뜨릴 듯 안았던 놈이다. 욕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태연한 척 넘겼다.

마지막 남학생은 말없이 앉아 있다가 목례를 했다. 웃을 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입을 가렸다. 그는 계속 주변을 살피며 아무 말 없이 웃고만 있었다.

“맞지? 지각생.”

“동기라고 생각했는데 선배였어요.”

시험 보는 날이 떠올랐는지 어색하게 눈을 맞혔다.

"고진 형이 유아교육과 누나들이 재밌는 거 한다고 해서요."

예상대로였다. 진실을 모르고 끌려온 거다.

“오늘은 당장 할 게 없어요. 총무 오면 밥 먹으러 가면 됩니다.”

나는 당황하지 않고 즉답을 피했다. 술과 밥으로 시작해, 천천히 그들을 물들일 생각이었다.


콧소리가 매력적인 총무 영현이가 도착하며 분위기는 달아올랐다. 그녀는 평소보다 한층 나긋나긋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제가 늦었나요? 얘기는 다 했어요?"

나는 일부러 가방을 챙기며 끼어들었다.

"배고프다. 일단 밥 먹으러 가자. 술 잘 마셔요?"


원래는 순두부와 막걸리를 먹을 예정이었지만, 서울에서 내려온 신입생들을 위해 돈가스와 생맥주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문선대 팀원들도 합류했고, 남자 신입 단원들의 등장은 누나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였다.

"회장 능력 짱이다! 아니, 만화과 짱이다!"

"내일부터 연습 꼭 나와야 해. 반말해도 되지? 혹시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 있으면 지금 말해."

셋 다 스무 살이라고 했다. 그 말에 누나들은 안심한 듯, 거침없이 술잔을 권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온 그들은 누나들의 거친 건배 제의에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잔을 들었다. 술은 존댓말을 반말로 바뀌게 했고 긴말은 짧거나 꼬이게 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고등학생이었던 그들은 맛도 모르는 술을 홀짝이며, 어른 코스프레에 어색하게 적응해 갔다.


술잔이 몇 번 돌아가고 여드름, 아니 상현이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선배님, 신입생 환영회 때 반했어요."

뜻밖의 고백에 당황했지만, 광대를 들어 올리며 받아쳤다.

"다들 나 무섭다는데. 너, 나한테 반해서 왔구나? 나도 너한테 반했어."

웃으며 맥주잔을 부딪쳤다. 창가 쪽에선 조용히 웃기만 하던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손에 든 잔은 500cc 그대로였다. 묘하게 신경 쓰이는 조용함이었다.

“상현, 혹시 네가 내 책상 위에 초콜릿 놓고 갔어?”

“저는 아닌데요.”

얼마 전부터 내 책상 위에 누군가 초콜릿을 가져다 놓고 있었다.

“너는 술이 그대로다.”

술로는 이길 수 없는 홍보부장 선희가 새로 배달된 생맥주에 거품을 들이마시고 새색시 같이 앉아만 있는 지각생의 잔과 부딪쳤다.

"저는 술을 아예 못 마셔요."

“못 마시면 내가 마실게.”

내가 잔을 들려 하자 영현이가 손으로 막았다.

"잠깐. 남자라고 봐주는 거야? 서울 사람이라고?"

모두가 그를 주시했고, 그는 결국 잔을 들었다.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구호가 밀려들고, 그는 맥주를 단숨에 비웠다. 환호와 박수 속에 그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술자리가 무르익고, 그는 영현의 무릎을 베고 잠들었다. 처음엔 그저 조용한 녀석이라 생각했지만, 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는 뭐냐... 여드름, 너랑 같이 하숙하지? 얘 좀 깨워봐."

"여드름 아니고, 상현이요."

상현이 다가와 그를 깨웠지만, 입꼬리를 양쪽으로 올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가끔 끙끙거릴 뿐이다. 누나 무릎이 편안한 지 맥주가 녀석을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야, 억지로 술 먹인 사람 누구야. 책임져.”

그는 엎어져 신음 소리를 내며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보기에는 삐쩍 곯았는데 더럽게 무겁다. 물먹은 솜이불 같아.”

하숙집 마루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모르고 입맛을 다시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이영우… 이제 정신 좀 차려봐."

맥주 때문인지, 누나 무릎에서 잠든 모습 때문인지, 아니면 그 조용한 눈웃음 때문인지.

나는 웃음이 나면서도 이상하게 마음 한편이 쓰였다.

이 모든 게 조용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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