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다 모이지 못해도 좋다.
선물 세트가 쌓이지 않아도 괜찮다.
전 부치는 기름 냄새가 없어도 추석이다.
딸을 위해 두바이 초콜릿 상자를 들고 슬기가 왔다.
나는 갈비찜에 넣을 감자와 알밤을 익힌다.
딸과 그녀는 초콜릿 언박싱 영상을 찍는다.
나는 싱크대에서 일을 하고
그녀는 식탁의자에 걸터앉아
남편 얘기, 책 얘기, 영화 얘기, 사는 얘기,
글 쓰는 얘기를 나누며 저녁상을 차린다.
갈비찜도 있고 채끝살도 있는데
작년 겨울에 담근 총각김치가 맛있겠다고 한다.
내가 준비한 저녁상을 보며 맛있겠다고 군침을 삼켜주는 사람이 있으니 좋은 날이다.
아삭아삭 무 씹는 소리가 경쾌하다.
"이것도 쌤이 담근 거예요?"
호호, 내가 심고 담갔다고 자랑하는 시간이 좋다.
글 쓰는 나를 응원하고
영화하는 그녀를 응원하는 시간이 좋다.
우리는 무엇이든 응원이 필요할 때 만나는
좋은 사이다.
나는 선생, 그녀는 유치원생으로 만났던 30년 전부터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