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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앞니맘 Sep 25. 2024

똘망했던 내 눈 돌리도.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거 같다는 가을을 헤치고 공주로 향했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은 동화책 속에  나오는 그림 같았다. 엄마와 동생들이 있는 곳, 행복했던 추억만 골라서 저장해 놓은 곳이 고향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남편일로 모교에 내려왔다.

"언니,  오늘은 우리 집에 와서 자고 가."

동생 말대로 학교에서 가까운 동생네서 자기로 했다. 동생네 집에 가기 전, 우리 집에 들렀다. 포도밭에서 산 강화섬포도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시골 동네는 다르네."

문은 다 열려있고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 어디야. 또 일하러 갔어?"

"아녀. 빠마하러 왔어. 어디여."

집에 왔다는 말에 평일에 내려온 내가 무슨 일이 있나 물었다. 공주대에서 연수가 있어서 미리 왔다고 엄마를 안심시켰다.

"엄마 나는 오늘 저녁 약속이 있어. 이 번에는 그냥 갈게 예쁘게 하고 오셔."

아침 일찍 연수라서 동생네 집에서 자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다. 가까운 것은 핑계고 나를 보면 힘들어하는 엄마를 피해, 동생네를 선택했다. 포도박스 위에 휴게소에서 사 온 호두과자와 용돈을 올려놓고 집을 나왔다. 잘 정리된 텃밭과 화단, 데크에 널린 동부와 땅콩은 엄마가 건강하니 걱정 말라는  표식 같았다.


공주대  만화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저작권 기초교육과  간담회를 하기로 했다.

남편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와 대책위에 작가님이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결혼식 준비와 원고 마감까지 해야 하는 바쁜 시간을 내서 공주까지 내려온 작가님께 고마웠다. 고맙다는 인사는 내가 하고 밥은 동생이 샀다. 동생과 작가님도 구면이라 누나 같이 편안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동생과 나는 저녁식사 후에 산책을 했다. 아파트 주변을 한 바퀴 돌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좋았다. 이렇게 목적지 없이 편안하게 걸어 본 기억이 없었다. 앞만 보고 살다 보니 소녀는 간데없고 중년에 아줌마가 되었다. 동생이 손목 수술을 해야 한다. 걱정이다.


 "탄원서 수정할게 또 있는데?  큐알코드도 다시 만들어야 하나?

나도 동생도 실무 작업보다 결재에 익숙하게 산 세월이 오래다.  오랜만에 폼으로 탄원서를 만들려고 하니 알아볼게 많았다. 일반 설문지와 달라서 담당변호사에게 확인을 받아 만들었다. 아들이 도와줘서 강의에 쓸 큐알코드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수정할 것이 또 보였다.

"눈도 잘 안 보이고, 늙으니 모든 게 힘들다."

"일단 내가 검색할 테니까 언니는 그대로 해봐."

50이 넘은 두 자매는 완벽하게 공부를 마치고  수정도 성공했다.

"아주 그냥, 누구 덕에 탄원서도 폼으로 만들고 공부를 제대로 했다."


다음 날 시간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생각보다 적었다. 강의가 없는 학생 중에 선택적으로 듣는 형식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래도 2시간이 넘게 변호사의 저작권 강의와 얘기를 자리 이탈 없이 경청했다.

"여기 서니까 신입생 환영회가 생각납니다. 저는 무대에 서 있고 남편은 저기 어디쯤에 앉아 있었을 거예요.  -중략 - 만화 전공을 부모님이 등 떠밀어서 하신 분 손들어 보세요. 없지요? 그래서 힘들어도 포기하기 힘드실 거예요. 남편도 같은 마음으로 이 학교에 왔고 30년을 만화가로 살았습니다. -중략-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작가로 만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들과 식사를 했다. 남편의 후배들이 다수 있었다. 학창 시절 얘기가 나오자 내가 아는 사람들이 그들의 선배였다. 우리는 잠깐 추억 속으로 떠날 수 있었다. 재판에 대한 궁금증, 현실 문제등을 이야기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남편자리에 함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교수님들의 응원을 받으며 인사를 나눴다.

"사모님, 눈이 슬퍼 보여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공주대를 시작으로 탄원서 받기를 시작했다. 첫 술에 배부르지 않겠지만  11월까지 능력 되는대로 노력하려고 마음먹었다.


"엄마, 어디야?"

"학교 끝났어? 지금 가고 있어."

학교가 끝나고 학원에 가던 딸이 조심해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날씨 죽이네. 똘망하다는 말만 듣고 살다가 이우영 때문에 슬퍼 보인다는 말을 듣네."

헤어지면서 여자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tbs 라디오에서 오태호 '기억 속에 멜로디'흘러나왔다. 하루 종일 무거웠던 마음이 터졌다. 눈치 볼 것 없는 차 안에서 마음껏 슬퍼했다. 이런 상황을 얼마나 반복하면 좋은 날을 즐길 수 있을까?


기억 속의 멜로디 나를 깨우고 가 너의 미소도 못 잊을 이름도
너의 그늘을 떠난 후에 너의 의밀 알았지 눈이 슬픈 너를 울리고 이제 나도 울고
내겐 많은 시간이 흘러 널 잊은 듯했는데 너와 자주 들었던 노래가 그때 추억을 깨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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