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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보는 날

by 앞니맘


오늘은 대학 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날이다. 매년 이 날은 나에게 108배를 올리며 기도하는 날이 된다. 유치원을 졸업한 제자들이 매년 수능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아무도 모르지만 엄마의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108배로 대신한다.



1992년 내가 처음 담임을 했던 아이들이 수능을 보던 해 응원을 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스마트폰도 아니었고 졸업대장에 12년 전 주소 외에 기록사항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반 아이들과의 생활을 기억하며 하나하나 응원의 편지를 써서 집으로 발송하였다. 반 이상이 되돌아왔지만 그 편지를 받고 연락을 이어가는 인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것이 지금 하고 있는 수능 편지 행사의 시작이 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게 될지는 몰랐다. 20년 전부터는 유치원 7세 반 후배들이 그림편지를 쓰고 예전 사진과 초콜릿을 함께 전달을 한다. 지금은 진학한 고등학교로 배달을 한다. 작은 지역의 장점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정보를 얻기가 어렵지 않다. 올 해는 수능 전에 코로나로 3주 온라인 수업으로 갑자기 전환이 되어서 수능이 끝나고 전달하기로 했다. 그래서 편지 내용이 바뀌었다.

'형님들 시험 100점 맞아.'라는 내용에서

'형님들 시험 100점 맞았어?'로 바뀌고

'이제 실컷 놀아도 좋아'라는 내용이 추가되었다.

"얘들아, 100점 맞으면 안 되고 500점 맞아야 해. 그러니까 500점으로 써줘"라고 선생님들이 말해도 100점을 최고로 알고 써버 린다. 그러면 선생님들이 봉투에 넣기 전에 몰래 고쳐주는 해프닝도 생긴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정시보다 수시로 대학을 진학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긴장감은 떨어지지만 그동안 수고한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수고했다는 마음의 메시지를 보낸다.



"선생님 사실은 저 수시 합격했어요. 그래서 내일 시험 안 보러 가요."

"정말? 축하축하. 수고했어."

올해 수능을 보는 제자에게 톡이 왔다. 내가 보낸 편의점 쿠폰을 받고 보낸 톡이었다. 나는 그 톡을 받고 왈칵 논물이 났다.(갱년기라서 눈물이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전화로 통화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그 많은 제자의 합격소식, 그것도 유치원 졸업한 제자의 소식에 눈물까지 난다는 건 과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혁이는 아픈 손가락이다. 혁이 형은 우리 큰 아들과 유치원부터 친구다. 고등학교까지 같은 반을 했다. 혁이는 형보다 4살 어리다. 혁이 엄마도 학부모로 만났지만 참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다. 그분의 온화하고 차분한 성품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큰아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암이라는 병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7살 때는 고모집 가까운 곳으로 유치원을 옮겼다. 엄마는 긍정적인 성품 때문인지 자식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암을 잘 이겨냈다. 아픈 사람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생활했고 아이들이 엄마의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건강하게 이겨냈다. 그래서 막내 혁이가 5살 이 되자 유치원에서 다시 만났다. 건강해진 엄마를 보고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다. 가끔 우리는 학부모가 아닌 친구 엄마로 밥도 먹고 큰 아이들의 진로와 학습도 공유하면서 많이 친했다. 그렇게 혁이도 졸업을 했고 아이들도 엄마도 잘 생활한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2학년 초 학부모회의에 갔는데 혁이 엄마가 회의에 오지 않아서 전화를 걸었다.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픈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서 그렇게 힘들게 투병하고 있는 지를 몰랐다. 아이들에게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다른 곳에 가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큰 아이가 중2 혁이가 11살 되던 해 학부모이자 내 친구는 긴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때 초등학생 혁이가 올해 수능을 보는 것이다.



난 가끔 명절이 되면 제사 때 써달라고 집에서 주워 모은 알밤을 혁이네 집 앞에 가져다 놓았다. 아빠도 계시고 고모, 할머니도 정성껏 아이들을 키워 주시고 있었지만 나도 아이들을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나만의 의식이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없어도 아무렇지 않고 생일에 미역국이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데 나만 미안할 때가 있다. 내가 이 형제에게 그런 마음인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와의 좋은 추억과 엄마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잘 성장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 입장에서만 아이들을 바라보게 된다. 학교에 입학하거나 졸업을 하면 우리 애들이랑 같이 갈비도 먹고 생일에는 쿠폰도 쏴 주고 하면서 가끔 엄마가 되어 주고 싶어 한다. 자격으로는 친구 엄마도 좋고 엄마 친구로도 좋다. 앞으로 오래도록 그 자격으로 옆에서 응원하려고 한다.


혁이가 오늘 전해준 대학 합격 소식과 사랑 가득 담은 이모티콘은 그 어떤 이모티콘보다 소중하다.


" 얘들아, 수능 보느라 수고 많았어.
오랜만에 엄마표 도시락은 맛있었니?
내일부터 뭐 할 거야?
그래도 음주는 아직 안 된다. 조금만 참아"




수능은 왜 목요일에만 볼까?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 교육과정 평가원이 펴낸 ‘대학 수학능력시험 20년 사(1994~2013)’에 따르면 수능 실시 요일은 2007년부터 목요일로 바뀌었다. 문제지 배송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수요일이었다.
수능 본부는 시험 3일 전부터 각 시ㆍ도로 문제지를 배송한다. 수요일이 시험일이면 그전 주 일요일부터 문제지를 배송해야 한다. 그런데 수능 전 주 주말만 되면 문제지 수송 트럭이 고속도로를 점령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교통 혼잡이 초래됐다. 교육부는 이에 배송 시점이 주말과 겹치지 않도록 수능 요일을 목요일로 옮겼다. 2007년의 일이다.

수능이 11월 둘째, 셋째 주에 열리는 데도 나름 이유가 있다.
수능 원년인 1994년에는 수능이 1차, 2차로 나뉘어(8월 20일, 11월 16일) 열렸다. 하지만 교육현장에서 “교육과정이 마무리되는 11월 말로 수능을 옮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교육부는 1995ㆍ96년 수능을 11월 넷째 주 수요일에 실시했다.
그런데 이번엔 기온이 문제가 됐다. 쌀쌀한 날씨 탓에 수험생들이 수능을 치르는 데 애로사항이 생긴 것. 교육부는 이에 1997년부터 날씨가 상대적으로 덜 추운 11월 셋째 주로 수능 날을 앞당겼다. 2002년부터는 다양화한 대학 입학 전형에 따른 입시 전형 기간을 확보하기 위해 1주 더 앞당겨 11월 둘째 주에 수능을 치렀다. 지금처럼 11월 둘, 셋째 주 사이에 수능이 열리기 시작한 건 2005년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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