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몸에 익지 않은 교복을 입고 학교로 향하는 딸의 뒷모습이 씩씩하다. 짧은 교복 치마 대신 빨리 체육복 바지가 나오기만 기다리는 딸을 보면, 털털했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엄마, 막내 생일에 내가 미역국 끓여볼게.”
“정말? 큰오빠가 끓여주는 미역국. 좋은데.”
우리 집은 막내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편이 떠나기 전에도 그랬지만, 아빠 제사 바로 뒤에 생일을 맞는 막내를 생각하면 마음이 더 쓰인다.
“생일 아침에 끓이려면 새벽부터 해야 할걸.”
미역국은 오래 끓일수록 맛있다는 내 말에 아들은 전날 밤부터 주방에 섰다.
“최고급 양지를 사 왔지요. 제가 명품 미역국을 맛보게 해 드리겠습니다.”
고기를 보여주며 ‘최고급’을 강조한 아들은 채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내가 사 준 요리책이 펼쳐져 있고, 한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엄마가 도와줄까?”
“알아서 해볼게요. 들어가서 주무세요.”
국물 재료를 하나씩 확인하던 아들은 나를 방으로 밀어 넣었다.
몇 달 전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놓인 요리책을 발견했다. 혼자 사는 청년들이 쉽게 요리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었다.
“나도 요리 한번 해볼까?”
그날 아들이 무심히 했던 말을 떠올리며 나는 그 책을 선물했다. 아들은 크림 파스타를 시작으로 그 책 속에 요리를 하나씩 정복하고 있다. 안 쓰던 요리 저울과 계량컵을 꺼내 놓고, 환풍기에는 타이머까지 달았다.
“왜 같은 요리만 계속해?”
“잘할 때까지 하고 다음으로 넘어갈 거예요.”
아들의 성격이 그대로 담긴 대답이었다.
피아노를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곡은 쉬우니까 넘어가자."
바엘이나 체르니 중간중간 생략하고 넘어가자는 선생님의 제안을 싫어했다. 본인이 충분히 익혔다고 느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성격이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실수는 적다.
그런 애가 막내 생일 미역국을 끓이겠다고 나섰으니 그동안 마음속으로 여러 번 연습했을 것이다.
주방에서 덜컥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떴다. 양지가 한 줄 기차를 한 미역국 한 냄비가 끓여져 있었다. 웃음이 터졌다.
나는 쌀밥과 들기름에 구운 김, 겉절이를 식탁 위에 차렸다.
“어디, 오빠가 끓인 미역국을 먹어볼까.”
딸 앞에 미역국을 떠 주고 나도 한 그릇을 담아 식탁 앞에 앉았다.
“맛이 어때?”
나는 숟가락을 든 채 딸의 반응을 살폈다.
“오우, 맛있어. 기대 이상이야.”
환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 아들이 만들고 싶어 했던 명품 미역국이 완성됐다.
최고급 양지와 전날 밤부터 이어진 정성. 그 한 그릇 미역국은 딸에게도, 딸을 낳은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나는 문득 한 편의 시가 떠올랐다.
제목: 미역국 옆에서
'한 덩어리 최고급 양지를 사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커피를 끊었나 보다.
한 그릇 미역국을 끓이기 위해
전날 밤 부엌이 그렇게 시끄러웠나 보다.'
명품 미역국으로 시작한 딸의 생일은 내 생일에 동생이 보내준 외식 상품권으로 시내 음식점에서 마무리했다.
우리 딸의 3월이 슬픔보다 행복으로 기억되기를 나는 조용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