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궁이 아궁이 앞에 고양이 앞에 고양이
"엄마, 고양이가 불을 보고 있어."
동생이 예약을 해 놓은 한옥 마을에 도착했다. "이리 오너라." 큰 소리로 주인을 불러도 좋을 것 같은 집을 구해 놓았다. 나와 엄마 그리고 동생과 남편 조카와 딸은 대문 앞에 서서 사극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집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고모 너무 좋아요."
"이모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옛날 집 같아."
"엄마 빨리 들어가 봐요." 엄마의 손을 잡고 나무 대문을 바라보았다. 문턱을 넘어서자 담장과 붙은 정원에는 좌우로 여러 가지 꽃나무와 감나무가 보인다. 담장 키를 넘기기도 하고 그 보다 작게 심어져 있기도 하다. 담장 밖에서 봐도 안에서 봐도 참 예쁘다. 꽃이 피는 계절이었다면 더 예뻤을 것이다. 안으로 들어가서 대문을 보니 빗장이 예전에 우리 집 부엌문과 흡사하다. 딸이 먼저 빗장을 닫으면서 재미있어한다. 마당을 지나서 디딤돌에 올라섰다. 마루로 들어가기 위해서 격자무늬 창호지 문을 열어야 한다. 억지로 문을 열려고 하자 동생이 카드를 꺼내면서 말했다
"거기 옆에 이 카드를 넣어야 열리는 거야." 그제야 여기가 예약한 숙소라는 것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왔다.
작은 마루를 넘어 방으로 들어갔다. 평수가 큰 집이 아니라서 바로바로 붙어있는 것이 예전에 우리 집 구조랑 똑같다. 안방 옆에 여닫이 문으로 구분된 작은 방이 있고 마루를 사이에 두고 건넌방이 있다. 다른 점은 화장실이 집 안에 깨끗하게 있고 단열이 잘 되는 창호가 창문이라는 것이다.
"어우, 따뜻해."
"엄마, 저기 봐 바닥 색깔이 이상해."
"옛날 방바닥처럼 누렇게 탔네. 진짜 장작 때나 봐"
"안방은 장작 때고 작은 방은 전기장판이래."
"엄마 여기서 오랜만에 뜨끈하게 지져요."
그런데 남편은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땀에 젖어서 샤워를 했다. 그리고 잠은 남동생과 친정 집에서 자겠다고 바로 결정했다. 우리는 한옥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 족욕도 하고 옆에 유적지도 돌아보았다. 몇 년 전에 남편에게 지인이 한옥마을 좋다고 얘기하면서 오지 않겠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사진을 찾아보고 나도 궁금했었는데 와보니 말대로 참 좋다. 편안하다. 산책을 끝내고 동생이 예약한 모시 굴비 정식을 먹으러 갔다. 근사하게 차려 놓은 밥상을 받고 한 껏 기분이 좋아졌다. 동생이 딸과 조카를 데리고 밥을 먹었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녹차물에 밥을 말아서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굴비를 올려서 입 안에 넣었다. 동생에게 맛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을 계속했다.
코로나 이후에 엄마를 모시고 밖에서 식사를 하는 건 꽤 오래전 일이다. 어제와 다르게 막내가 빠졌지만 오랜만에 동생 덕분에 엄마도 나도 맛있는 식사를 했다.
"여자들끼리 수다나 실컷 떨어. 우리는 술 한 잔 하고 잘 거야."
"어제도 먹었는데 작작해."
"걱정 마, 나는 출근해야 혀." 남편과 남동생은 친정 집으로 돌아갔다.
딸과 조카의 댄싱 타임을 보면서 동생과 나는 맥주 한 잔을 했다. 우리 자매가 놀던 모습하고 똑같이 놀고 있는 딸과 조카가 신기했다. 엄마는 아랫목에서 허리를 지지는 시간을 가졌다. 옛날 집 얘기부터 새벽에 일어나서 군불 때던 얘기 한옥마을과 어울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아이들은 잠이 들고 출근을 했던 엄마와 동생도 잠이 들었다. 더워서 열어 놓은 문틈 사이로 빗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잠깐 문을 열고 작은 마루에 누워서 밖을 바라보았다. 예전에 비가 오면 처마 밑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손가락으로 마루 바닥을 톡톡 치면서 빗물과 박자를 맞추면 참 편안했다. 예전처럼 마루 바닥을 톡톡톡 쳐 보았다. 그리고 손을 뻗어서 빗물을 받으면서 놀았던 기억이 났다. 그럴 때면 엄마는 항상 손에 사마귀가 생긴다고 못하게 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사마귀가 생긴 적이 없다. 옷이 젖을까 봐 못하게 하려고 한 말일 것이다.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한옥마을에서의 하룻밤은 참 따뜻하고 편안했다.
빗소리와 고양이 울음소리가 번갈아 들리는 아침이 되었다. 갑자기 5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기분이다.
사각사각 풀을 먹인 두꺼운 솜이불을 코밑까지 덮어쓰고 귀를 기울인다. 새벽 4시에 떨걱 떨걱 소리가 나다가 뚝뚝 나뭇가지 꺾는소리도 난다.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밥을 하면서 가마솥에 물을 끓이기 위에 불운 지피는 소리다. 밤새 식은 온돌을 다시 데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바닥이 따뜻해져 있다.
그런 기분으로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보낸 엄마와 하룻밤이 태어나서 처음이다. 지난 50년에 대한 아쉬운 마음은 접어두고 앞으로 남은 엄마와 시간에 집중하고 싶다. 출근을 하기 위해 아침 일찍 먼저 작별인사를 나눈 엄마와 동생이 갑자기 보고 싶다.
조카와 딸이 이불을 개고 벽장에 넣는다. 놀이처럼 신이 났다. 숙소에 있는 맛집 안내문에서 분식집을 찾아놓고 분식집 문이 열리는 시간까지 비 오는 마을을 한 바퀴 더 돌아보기로 했다. 비가 오는 아침은 어제저녁에 본 마을 풍경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집집마다 장작불을 지피고 있다. 마을 전체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하늘로 하늘로 번져 나간다. 마치 하얀 불꽃놀이를 하는 아침 같다. 장승 앞에서 찰칵, 연못 앞에서 찰칵,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찰칵, 우리는 이렇게 여행 마지막 아침을 즐겼다.
"엄마, 저기 봐 고양이야." 대가댁 같은 큰 집을 지나다가 아궁이 앞에 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고양이도 편안하게 비 오는 아침을 즐기고 있다.
덕분에 행복한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