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둘째 날 : 초등학교 가는 길

by 앞니맘
엄마랑 학교 가자.

다음 날 우리는 선산에 모셔 놓은 아빠께 갔다. 고속도로 진입로가 되면서 산소를 이장하고 한 곳에 모셔놓았다. 어릴 적 놀이터가 이제는 종중 산소로 변해 있었다. 반대쪽 깊은 산속에 있던 조상들의 산소를 집 가까운 곳으로 모셔왔다. 이 또한 자손들의 편의대로 관리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보인다. 내 할아버지에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에 할아버지까지 다 여기 모여 있다. 여기를 오면 나의 아주 먼 조상까지도 모두 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다.

비탈진 산길을 손에 손을 잡고 올라갔다. 다 같이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 아버지를 향해 절을 했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옆에 산소와 비교해 보면서 비가 오면 흙이 무너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남자 동생들은 봄에 보강 공사를 한다고 했다. 이 산에 명당을 찾은 둘째 동생이 산소 맨 위에 올라가서 외쳤다.

"언니, 여기가 젤 좋아."

"뭐가 좋은데?"

"다 보이고 거기 밑에 있는 산소를 모두 다스리고 있는 기분이야. 그래서 이 집에서 장관이 나왔나 봐."

"그럼 우린 차관 정도는 나와야 하는 위치인데 이상하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ㅋㅋ"

"우리 집 아들들은 뭐한 거야."

"우린 청문회 나가기 싫어서 안 해." 막내의 너스레에 또한 번 깔깔깔 웃었다. 메아리가 되어서 한참을 웃은 기분이었다. 명당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관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는 동생이 조카와 딸에게 우리 명당에 맞춰 꿈을 키워주길 바라는 마음을 강요하면서 산소를 내려왔다.


이제 도로가 생기면 없어질 초등학교 가는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4남매의 각자의 추억이 담긴 길을 걸었다.

"엄마랑 이모랑 삼촌이랑 다녔던 길이야."

"이렇게 먼 곳을 걸어서 갔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걸어 다녔지."

"나는 유치원 가다가 저기서 놀다가 늦어서 빠진 적도 많은데" 길모퉁이 밭둑 옆에를 가리키며 막내가 말했다.

"저 자식 매 번 힘들다고 빨리 안 따라오고 해서 내가 가방만 학교에 가져다 놓은 적도 있어."

"진짜? 가방끈만 길었지 공부를 못한 이유가 있었네."

"그렇지 내가 병설유치원 1회 졸업생이니까 가방끈이 젤 길고만."

"그때는 초등학교 여자 선생님이 유치원 담임선생님 이셨지?"

"맞아. 놀다가 유치원에 늦게 도착하면 다 끝났다고 초코파이랑 요구르트 간식 주면서 집에 가라고 했었는데 ㅋㅋㅋ"

"너, 초코파이랑 요구르트 먹으려고 간 거지?"

"빙고!! 가다가 지렁이나 개미나 뭐 그런 거에 꽂히면 그거 따라가면서 놀다가 늦으면 그냥 다시 집으로 오고 했는데 아무도 모르더라."

"그때 전화 있는 집도 우리 집 밖에 없었을걸?"

"지금처럼 학교 왜 안 오냐고 쉽게 연락도 안되니까 땡땡이쳐도 모르지"

"그때가 좋았는데. 지금은 비밀이 없어."


"엄마는 뭐하면서 학교 갔어?"

딸의 질문에 나는 피식 웃었다. 동네 유일한 친구는 숙자 하나였다. 윗동네나 아랫동네는 가구수가 많아서 아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우리 동네는 가구수가 적어서 아이들이 적었다. 여자는 나와 숙자 그리고 남자는 숙자 사촌인 은중이 이렇게 세명뿐이었다. 그래서 늘 숙자랑 함께 다녔지만 반이 달라지면 혼자서 돌아오는 길이 많았다. 그리고 숙자는 형제가 6남매라서 오빠들과 동생들과 아침 일찍 가 버리면 나는 혼자서 먼길을 걸어가기 일수였다. 숙자네 형제들을 따라가려면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체육선수 급이었던 오빠들은 달리기를 엄청 잘 뛰었고 숙자 역시 육상 선수였다. 가끔 시간이 늦으면 산을 넘어서 학교를 갔는데 체력이 약했던 나는 뒤를 따라가기가 너무 벅차서 이내 포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혼자서도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를 하면서 등하굣길을 걸어 다녔다.

"누가누가 잘하나 나가려고 혼자서 노래도 크게 부르고, 동화 속 주인공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막대기 나뭇가지 하나 꺾어서 들고 마주 보면서 역할 놀이도 하고 그랬지."

한 참을 걸어 숙자네 밭을 지나면서 반 대 쪽 산을 가리키며 동생이 말했다.

"학교 끝나고 애들하고 저기 저 산 넘어서 오다가 애들이 벌집에 돌을 던져서 나 죽을 뻔했잖아."

"맞아. 너 달리기 진짜 빨랐어."

"내가 달리기를 그렇게 잘 뛰는지 그때 알았잖아. 그래서 내가 초등학교 때 육상 선수된 거지."

"진짜? 이모 달리기 잘 뛰는구나."

"그럼, 다 같이 달리기 시합할까?"

50이 된 동생과 초등학생 조카와 딸이 함께 달리기를 한다. 벌을 뒤에 달고 달리기를 뛰던 동생에게 엎드리라고 소리쳤던 기억이 여러 번의 벌집 사건과 겹치면서 기억이 난다.


학교 가는 길 중간쯤


학교길 중간쯤에 있던 작은 개울은 잘 정리된 수로가 되었다. 지 난 봄에 엄마가 우렁을 잡아준 그 수로다. 비가 오고 난 다음 날은 어김없이 개울로 내려가서 신발을 양손에 들고 첨벙 거리면서 친구들과 고기도 잡고 물놀이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곳을 지나치면 사람도 다니고 마차도 다녔던 논길이 나온다. 아빠가 사준 빨간 멜빵 치마에 흰 스타킹을 신고 빨간 구두까지 멋을 잔뜩 내고 집에서 출발하지만 여기쯤에서 나는 예쁨을 포기했었다. 풀씨가 잔뜩 붙어있고 강아지풀보다는 크기가 훨씬 크고 억새풀보다는 키가 작은 딱 내 종아리와 허벅지만큼 자라는 풀이 길을 덮고 있었다. 아직도 그 풀의 이름을 모르겠다. 아침 이슬과 풀씨는 내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내 스타킹과 구두에 모두 불었고 그 길의 끝에선 나의 스타킹과 구두는 젖어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길이 지금은 깔끔하게 포장이 되어있다. 나는 지금 그때 그 속상했던 마음을 잠깐 회상했다. 동생들은 보리를 심은 논은 밟아 주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보리를 밟으면서 논길을 가로질러 갔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엄마, 나 다리 아파. 아직 멀었어?"

"이제 3분의 2 왔는데?"

"아, 진짜 멀다." 딸이 가던 길을 멈추더니 쭈그리고 길 가운데 앉았다.

"업어 줄까?"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업혔다. 너무 무거워져서 오늘이 업어주는 마지막 날이라는 각오로 업었다.

"아이고 엄마 허리 끊어지겠다." 멀리서 동생이 뒤를 돌아다보면서 소리쳤다.

"엄마가 가방 대신 뚱보 딸을 업고 초등학교를 가네."

"가방이 나처럼 무겁지는 않았겠지."

내 가방은 빨간색 가방이었다. 양쪽으로 버튼이 있어서 양옆을 누르면 열리고 닫히는 가방에 캔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내 가방은 이 상하게 조금만 달리면 뚜껑이 열려서 달리다가 보면 등 뒤에서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집에 와서 그 얘기를 하면 아빠가 펜치를 가지고 가방에 잠금장치를 만져 주셨던 기억이 난다.


학교 앞 동네는 예전 모습에서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 리모델링한 집과 좁던 논둑길이 커다랗게 정돈된 농로로 정리되어 있었다. 등굣길에는 옆동네 친구들과 만나고 하굣길에는 옆에 동네 친구들과 헤어지는 역할을 했던 다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헤어짐과 만남의 다리로 남아있었다. 비가 온 후에는 그 다리 위에서 아래를 보면서 엄청 커다란 다리라고 생각하면서 공포를 느꼈었는데 오늘 보니 작은 개천에 다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기 저 집에 아이들이 진짜 많았어. 9남매인가?"

"어, 내 친구네 집이었어."

"항상 등굣길에 저기 집 앞으로 지나갔는데 그때마다 마루 디딤돌에 신발이 엄청 많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맞아. 우리는 학교 도착했는데 저 집 애들은 아침 먹고 있었어."

"집이 가까워서 진짜 부러워했었지."


학교는 그대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다. 새로 지은 건물 인지 모를 만큼 같은 자리에 있었다. 동상으로 제작된 동물들이 있었던 자연 학습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급식실과 체육관이 생겼다. 점심시간에 공기놀이를 하다가 종이 치면 땅을 파고 공기를 묻어 두었던 운동장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던 커다란 플라타너스 나무는 사자 졌다. 대신 아이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정자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는 그 정자에 옷을 벗어 놓고 흙이 아닌 잔디가 깔려 있고 잘 정리된 운동장에서 잠깐 축구시합을 했다. 펄펄 나는 조카나 딸에 비해서 나와 동생은 다리가 꼬여서 넘어지고 숨이 차서 헐떡대면서 "거기서"라고 큰 소리를 질러가면서 운동장을 뛰어 보았다.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추억을 불러와서 재현하는 것도 재미는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조금 더 여유 있게 사진을 찍었다. 개천에서 고기를 잡는 아저씨도 찍고 잘 정리된 개천 길을 걸으면서 예전에 건너편 아이들과 싸웠던 얘기를 하면서 왜 싸웠는 자 모르겠다는 대화도 나눴다. 오는 길이 심심해서 다 먹은 양은 도시락에 숟가락을 넣거나 돌멩이를 넣고 흔들면서 합주를 했던 이야기를 듣고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딸의 말에 도시락이 없어서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어디서 마차나 경운기 안 오냐?"

"그러게 그런 거 만나서 타고 오면 진짜 운수 좋은 날이었어."


도로가 생기고 나면 오늘처럼 똑같은 길을 걸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계절마다 우리 남매들에게 간식이 되어 주었던 삘기, 산딸기, 찔레, 다래, 머루, 보리수, 오디가 내 손에 닿을 수 없는 길로 변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해버린 초등학교 길을 기억하고 추억 속으로 걸었던 것처럼


오늘 함께 걸었던 우리는 이 시간과 공간을 기억하고 그 속에 함께한 서로는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이모 내일은 한옥마을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