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남매의 수다가 시작되었다.
친정에 도착하자마자 막내 동생과 조카딸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 딸은 신이 났다. 코로나 때문에 한 참을 못 봤지만 사촌언니와 어색함은 1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은 동네의 작은 마을길은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다. "누구야, 밥 먹어" 하고 부르면 뒷동산에서 놀다가 "지금 가요"하고 뛰어내려오기도 하고 개울 건너 마을에서 놀다가도 "네~" 하고 달려오기도 했던 기억이 스쳐간다. 저녁때가 되면 여기저기서 이름을 부르면서 집으로의 귀가를 요구했던 어른들의 소리가 메아리처럼 겹쳐서 들렸다. 내가 못 들으면 친구가 , 친구가 못 들으면 내가 "너, 밥 먹으래." 하고 전달해 주던 시절을 떠올리며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남편과 남동생들이 시장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갔다. 딸과 조카도 알아서 놀고 여동생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오랜만에 편안하게 누웠다.
엄마방 벽에 걸려있는 아빠가 빠진 엄마와 4남매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잠이 들었다.
"언니 왔어?"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양손 가득 먹을 것을 들고 동생이 나타났다. 올해 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둘째 조카도 함께 왔다. 이모와 오빠가 오는 모습을 어디선가 보고 집으로 달려들어 온 조카와 딸이 동생과 솔과 시 사이의 높은 톤으로 인사를 하고 포옹을 한다.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돌아온 남자들도 차 안에서 물건을 한 참 꺼낸다.
"형부 안녕하세요?"
"교감 선생님 잘 지내셨나요?"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고 이른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막내, 내가 사 오라는 석화는 사 왔어?"
"싱싱한 거 사느라 멀리 다녀왔지."
"잘했어. 역시 우리 막내야."
막내와 셋째는 삼겹살을 어찌 구울 것인지 오늘도 말이 많다.
"형, 삼겹살 구울 거니까 마른 장작 꺼내 줘."
"귀찮게 그냥 가스에 구워."
"안돼, 삼겹살은 숯불에 구워야 제 맛."
"뱃속에 들어가면 다 똑같어."
"매 번 그 소리 지치지도 않아?"
"어, 안 지쳐"
딸과 조카는 벌서 동생을 따라 장작을 가지러 가면서 둘의 대화에 끼어든다.
"아빠, 큰아버지가 벌써 꺼내 놨는데?"
"그래?" 조카와 딸은 뭐가 웃기는지 웃음보가 터졌다.
동생들을 보면서 아빠와 큰 아버지가 떠 올랐다. 서울에 사시던 큰아버지는 식사 후에 커피를 꼭 드셨다. 큰아버지가 시골 우리 집에 오신다고 하면 아빠는 커피를 파는 아랫동네까지 가서 커피를 사다 놓으셨다. 그때는 믹스커피가 없었다. 알 커피와 프리마 작은 병을 사 가지고 오셨다. 그리고 늘 같은 불평을 하셨다.
"서양 놈도 아니고 무슨 커피를 그렇게 마시는지."
'저렇게 불만인데 왜 커피를 사다 놓는 거지?' 참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지금 삼겹살 굽기를 놓고 떠드는 저 놈들에 대화를 들으면서 이제야 이해를 한다.
우리 4남매도 오랜만에 합체가 되었다. 남편과 올해 대학생이 되는 조카까지 여섯 명이 술상을 벌렸다.
찜통에 가득 찐 석화, 각종 회, 숯 불에 구운 삼겹살에 해장국까지 각자 사 온 음식들로 술상을 차리고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술상을 앞에 두면 꼭 등장하는 아빠 얘기부터 옆집 살던 막내 친구 기순이가 동생의 흰 고무신 닦아 준얘기까지 추억을 소환했다.
"아빠, 기순이가 아빠 여자 친구였어?"
"어, 여자 사람 친구"
"무슨 여자 사람 친구가 코도 닦아주고 고무신도 닦아주냐?" 동생이 짓궂게 대답해 준다.
"뭐? 코도 닦아줬어? 더럽다 그렇지?"
"맞아 더러워. 웃긴다. 하하하하.."
조카와 딸은 코가 흘러내린 아빠와 삼촌을 상상하면 서 한참을 웃는다. 그 웃음소리에 우리도 그냥 웃었다.
동네가 시끄러운 종중재산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족보도 들여다보고 어디 우리 모르게 숨겨놓은 땅은 없는지 가능성 1도 없는 희망을 담아 소설도 써 본다. 윗집 사는 내 친구 숙자 아들이 얼마 전에 결혼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그 아들 태어나서 나랑 동생이랑 집에 찾아갔었던 기억이 난다. 생일이 4월쯤 일 것이다. 그날 친구 집 부엌에는 닭이 병아리를 품고 있었다. 그 아들이 서른이 넘어서 결혼을 했다. 내일은 잠깐 친구 가게에 들러서 축하해 줘야겠다.
대학에 입학한 조카와 동생의 입장 차이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고3 얘기도 들으면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이제 두 아들을 모두 대학에 보내고 자유부인이 되겠노라 선언 한 동생에게 축하의 술잔도 건넸다.
어느새 성인이 된 조카와 이제 같이 늙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그렇게 슬프지 않았다. 기분 좋게 떠들고 웃으면서 힘들게 결정한 여행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