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 그 너머에도 희망은 있을 겁니다.

유선혜 시인의 '괄호가 사랑하는 구멍'을 읽고.

by 윤숲




괄호, 구멍, 딱지.

어린아이도 단번에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만한 단어들 이건만.

이 간단한 단어들의 의미를 읽으려 한참을 곱씹어 생각해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집을 펼치고 나서 맨 처음 만난 작품.

원래라면 곧 다음장으로 넘겼어야 할 페이지를 붙들고, 나는 30분 동안이나 같은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시 읽기는 참 어렵다.

한 인간의 사유와 상상이 만든 세계의 한가운데 무작정 뛰어들어, 미지의 길을 따라 산책하는 것만 같다.

그 안에서 단어의 의미는 바깥세상에서 쓰이는 그것과는 다르다.

시인의 의도와 나의 해석이 뒤섞여 새로운 길을 만든다.

거기에 정답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시 읽기의 그릇이 되는 내 생각의 크기가 중요한 것 같다.

나의 그릇은 아직 간장종지만 하다.


그럼에도 내가 이 시에 대해 끝까지 내 나름의 해석을 완성하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첫 문장에 있다.


삶에 대해 자꾸 논하고 싶은 게 제가 걸린 병이에요.


시인과 내가 같은 병에 걸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구절은 시인이 바라보는 삶에 대한 시각이 녹아 있다.


잘못된 선택이 모이면 그 인생은 대체로 슬퍼집니다.

제일 슬픈 일은, 자신이 슬픈 줄도 모르는 거예요. 가끔씩 빌라 입구에 나와 사료를 주는 인간이 자기 부모인 줄 알고 살아가는 고아가 된 짐승처럼요.


가슴 뭉클해질 만큼 딱 들어맞는 비유다.

우리들은 한 세계에 떨어져 이리저리 치이는 자기 자신의 슬픔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힘들어도 꾹 참고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보다' 한다.

작고 불쌍한 짐승을 보면서는 충만하게 느끼는 연민을 자신에게는 품을 줄 모른다.

내가 그랬다.

어떤 보편적이고 당연한 그 선택이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인지 아닌지,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고민과 자각이 없었다.


어쨌든 여기까지 읽었을 때 나도 쉽게 공감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자려고 누우면 괄호 쳐버린 많은 일이 떠오릅니다. 일찍 자기. 아침에 일어나기. 적당히 먹기. 적당히 근육과 관절을 움직이고 적당히 울기. 매일 머리를 감고 하루에 30분 이상은 햇볕을 쬐기.


도대체 이 사람이 말하는 괄호가 무엇인가.

화자는 진정 괄호 쳐야 하는 것은 '세계의 의미나 인생의 허무에 대한 과도한 망상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짧은 생각으로, 시인이 말하는 '괄호를 친다'는 행위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시인의 괄호 친 것들은 곧 '미뤄야 할, 혹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선택'일 것이다.

시인은 그날 머리를 감는 일에 괄호를 쳤고, 그래서 구멍을 만들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시인은 말한다.

세계의 의미나 인생의 허무에 대한 과도한 망상 같은 것들은 머릿속의 구멍을 점점 크게 만들고,

그것은 마치 쥐약을 잘못 주워 먹고 죽어가는 고양잇과 생물처럼,

너무 배가 고파서, 뭐든 입에 넣고 보는 선택이 우리를 슬퍼지게 만든다고 말이다.

여기에서 구멍이란 인생의 상처나 슬픔일 것이다.


우리는 삶의 현실에 쫓겨 뭐든 입에 넣고 보는 선택을 하고, 이런 잘못된 선택들이 모여 우리의 머릿속에 점점 커다란 구멍을 만든다. 그리고 스스로 슬픈 줄도 모른다.


참 아픈 이야기다.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말이다.

그 말을 깊이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 나는 시인과는 조금 다른 인생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잘못된 선택이 모이면 그 인생은 대체로 슬퍼집니다.'


나는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더라도, 시인이 말하는 '대체로'의 바깥으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잘못된 선택은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한 개의 패를 빼앗아가지만,

동시에 그 선택을 하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라는 '히든카드'를 쥐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인생에서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매 선택에 너무 큰 의미를 걸곤 한다.

선택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그에 따른 죄책감에 매몰되거나 겁을 먹은 채 선택을 회피하게 된다.

하지만 잘못 선택함으로써 얻는 것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못난 실수 때문에 내 힘으론 걷잡을 수 없는 커다란 불행이 찾아왔지만, 그로 인해 새로운 시선으로 삶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슬퍼할 수도 있지만, 그 슬픔을 딛고 서면 깨닫고 배우는 삶을 살 수도 있다.

그런 과정은 오히려 몰랐던 나를 깨우는 각성제가 될 수도, 극복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작은 기쁨이 되어 줄 수도 있다.

항상 옳은 선택만을 했던 사람에게 한 번의 실수는 세상이 끝날 것만 같은 청천벽력일 것이다.

하지만 몸소 실패를 겪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을 볼 줄 안다고.

나는 그렇게 믿어보고 싶다. 인생사를 너무 겁내고 일희일비하지 않기 위해서.


정답이 있는 것들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대부분의 시는, 여러 번 읽어봐도 내게 참 어렵다.

시험이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써놓은 글이나 해석을 찾아 읽어 보았겠지만, 나는 이번에 내가 느낀 감정과 해석을 그냥 아리송한 상태 그대로 간직하기로 했다.

시간이 흘러 시를 다시 읽고, 내가 써놓은 글들을 읽을 때면 어딘가 달라진 나를 알아차리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시에 담긴 익숙한 단어들은 나를 한참 낯선 생각에 빠지게 했다.

이 잠깐의 시간은 나에게 한 사람에 대한 공감과 인생관의 자각을 동시에 안겨준 고마운 기회였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그릇에 담길 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새삼 그게 궁금해지는 오후다.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보십시오』(유선혜 시집)에 수록된 시,「괄호가 사랑하는 구멍」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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