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과 흙내음이 주는 행복
떠올려보면, 내 어린 시절은 푸른색으로 가득하다.
눈을 들면 탁 트인 높고 맑은 하늘이 있었고,
집 앞으로 한 발짝만 나서도 초록의 산과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온 시야에 가득 들어찬 싱그러운 풍경들 속에서 나는 자랐다.
어릴 적 시내로 떠난 것을 시작으로 성인이 될 즘엔 회색도심 한복판으로 이사와 살았다.
대학 때 비교적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지냈지만 어린 시절의 그 한적한 시골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농사짓던 부모님 따라 밭에 가 놀다가 풀 매는 할머니들께 국수와 막걸리를 지고 새참 배달을 하던 어린 시절.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그리운 때를 뜻밖에도 시집의 한 페이지 위에서 만날 줄은 몰랐다.
'날이 맑고 하늘이 높아 빨래를 해 널었다
바쁠 일이 없어 찔레꽃 냄새를 맡으며 걸었다'
시에 담긴 풍경은 내 머릿속에다 추억을 한껏 불어넣었다.
심심할 때면 작은 손으로 양 옆 가득 살랑이는 흰 들꽃을 스치며 흙길을 걷곤 했다.
그러다 멀리서 '밥 먹어!'하고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곧장 뒤돌아 내달렸다.
잔뜩 흙 묻은 손을 대충 털고 아빠가 사 온 짜장면을 후루룩 입 안 가득 우물거리면 그런 행복이 없었다.
'구절초밭 풀을 매다가 오동나무 아래 들어 쉬었다
종연이양반이 염소에게 먹일 풀을 베어 가고 있었다
사람은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시 안에 담긴 소박한 장면들은 정말 한때 나의 삶이었다.
시골 사람들은 참 힘들게 일을 했다.
땡볕 한가운데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면서도 항상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그런데도 그 검게 그을린 얼굴들에는 항상 웃음기가 담겨 있었다.
잠깐 더위를 피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나무 그늘아래서 깔깔 웃음꽃이 피었다.
깊숙이 패인 주름 사이사이 장난기가 가득했다.
에어컨 없이 못 사는 도시생활을 하면서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는 걸 잊고 살았다.
떠올려보면 흙냄새 섞인 땀내를 풍기던 그들은 참 아름다웠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은 게 아닐까.
길을 걷다 작게 솟은 풀을 만나면,
그 녀석이 얼마나 귀여운지 잠시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으로.
내 마음은 빽빽한 도시보다는 한적한 시골에서 편안하다는 걸 새삼 느낀다.
시가 내게 남긴 건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내 삶의 행복에 대한 작은 단서였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몰아세우는 삶이 아닌,
조금 천천히 흘러가도, 살짝 모자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소박한 시골의 삶.
글을 적는 이 순간, 당장이라도 그때 그 흙길을 내달리고 싶다.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나민애 지음)에 수록된 박성우 시인의 작품,「또 하루 」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