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내게 건넨 문장.
20대의 상처 많은 나는 내 안의 혼돈을 어찌할 줄 몰라 망아지처럼 날뛰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는 다룰 수 없는 그것을 마음 깊은 곳에 꼭꼭 숨기고,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않기를 택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거세게 나를 괴롭히는 이 혼돈이란 놈의 끈기.
더 이상 감추기를 포기하고 그것을 마주 보기 시작한 그 무렵, 하필 이 시가 내 앞에 나타났다.
혼돈을 사랑하라
유명한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내 안의 이성이 그 말을 비웃었다.
'사랑? 웃기지 마.'
그놈을 사랑했다가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
너의 다름을 사랑하라.
너를 다르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너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사람들이 너에게 바뀌기를 원하는 것
너를 유일한 존재로 만드는
그것을 사랑하라.'
시인이 적어 놓은 마지막 연, 맨 끝단 마침표에 닿은 내 눈동자.
머리가 내뱉는 자조적인 말과는 달리, 마음에서 울컥 무언가 터져 나왔다.
그렇다. 나는 나의 다름을 사랑하지 못했다. 오히려 매몰차게 나무라고 부끄러워했으며, 외면했다.
그건 나를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히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다른 사람 말고,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끊임없이 나에게 자유를 권했다.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가 없어 억누르기 바빴던 나는, 불쑥불쑥 엉뚱한 방향으로 소심하게 솟아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 '그놈'을 무척이나 미워했다.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상을 힘껏 두드려야 한다.
두려움은 단지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에 불과할 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무 생각 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 나는 남들보다 조금 늦게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야 쏟아지기 시작한 내 안의 의문들을 회피하기로 한 이유는 바로 그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앞날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그 삶을 얕게라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들은 혼돈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어, 열심히 그 속을 헤집고 다니며 성공과 실패, 기쁨과 좌절을 맛보고서는 '이것 봐! 실패해도 괜찮잖아.'라고 외치는 듯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이제라도 이 두려움을 마주하지 않으면 얽히고설킨 의문을 풀지 못한 채, 점점 커지는 불안에 짓눌리고 휘둘리는 삶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을 가득 집어삼킨 울림.
그것은 끊임없이 내게 물었다.
'네가 너로서 살 수 있는 길은 뭐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너는 어떻게 살고 싶어?'
시인의 말처럼, 나는 내 안에 그것이 있기에 내가 '나'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미 조금씩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시에 담긴 말들에 그토록 내 마음이 요동쳤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생각한다.
누구나 자신만의 우주를 품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 세계를 가꾼다.
그것들 중에 똑같은 것이 없다. 그래서 특별하다.
그렇기에 나의 혼돈이 너무도 소중하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사람들이 말하는 '정답'을 나만의 시선으로 반박할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함'
시인은 그것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평범함이라는 단어 아래, 자신뿐 아니라 다른 이들을 함께 가두어 놓는다.
그 선을 벗어나면 편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배척하고, 비난하기도 한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인류애란 것이 사라진 줄만 알았는데.
스스로를 다 펼치지 못하고 '보편'이란 틀에 맞춰 자신의 모서리들을 꾸깃꾸깃 접고 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보통의 사람'이라는 가면을 쓰고 버티는 것처럼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나의 것을 사랑하되, 그들의 모서리를 사랑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물씬 들었다.
존중이란 것은 바로 이런 마음에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다.
우리 모두가 쉴 새 없이 흐르는 시간을 달리며 살아내는 지금.
그 긴 여정 속에서 혼돈이라는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파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바닷물에 몸 적시지 않고 그저 관망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생을 헤매는 우리는 모두 불안하다.
우리는 모두 정답을 모른다.
그래서 동병상련이다.
당신이 어떤 고민과 고통 속에 있더라도, 그 옆에 또 다른 혼돈을 지고 살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나처럼 말이다.
나는 시집 여백, 맨 아래에 이렇게 적었다.
나의 혼돈을 사랑하자.
그리고 우리의 혼돈을 사랑하자.
공감이라는 위로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자.
『마음 챙김의 시』(류시화 엮음)에 수록된 시,「혼돈을 사랑하라」(알베르트 에스피노사의 소설 '푸른 세계' 중에서)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