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 된다

난생처음 '필사'라는 걸 하면서

by 윤숲


'시'라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게, 한 필사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파스텔 색감의 예쁜 책 한 권.


그 안에서 발견한 한 편의 시를 읽고 난 감상을, 내 첫 글로 정했다.



김승희 시인의 '못 박힌 사람'이라는 시.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몇몇 사람들이 떠올랐다.

그중에서도 유독 부모님의 얼굴이 머릿속을 메웠다.


네가 못 박았지

네가 못 박았다고


언젠가 나는 원망 가득한 말들을 아버지를 향해 절규하듯 내뱉었다.

시인의 말투가 그때의 기억과 절묘하게 맞물려버려서,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침에 떴던 해가 저녁에 지는 것을 바라보면

못 박힌 사람이 못 박은 사람이고

못 박은 사람이 못 박힌 사람이고


눈으로 읽기만 할 때는 몰랐는데, 빈 종이에 천천히 시에 담긴 글자들을 하나하나 옮겨 적으면서 깨달았다.


아, 나도 못 박은 사람이구나.

내게 못 박은 사람에게 어느새 나도 못을 박았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나 또한 누군가에게 못 박은 사람일 수 있겠다.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못 박힌, 못 박은 사람이라는 걸.



시는 그런 사람들이 쓰는 것

아픈데 정녕 낫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쓰는 것

못 박힌 아픈 가슴 움켜쥐고도

못을 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에덴의 동쪽에서 시를 쓴다



나는 시인이 아니지만 이 부분에 마음깊이 공감했다.

못 박힌 아픔이 있기에.

강렬한 분노와 절절한 슬픔 사이, 그 어떤 감정이 마음 깊이 새겨져 있기에.

우리는 그것을 되새기며 '사유'한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진하고 격한 감정이 가슴 가득 차올라 넘친다.

그리고 넘친 마음을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욕망이 조용히 떠오른다.


시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바로 그것 아닐까.

시인들은 못 박힌 자리에 맺힌 아픔을 양분으로 '시'라는 꽃을 피워낸다.

그렇기에 그 아픔을 움켜쥐고서라도 간직하려 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사람들과 부딪히고 살면서 우리가 서로의 가슴에 못 박고 못 박히는 일은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감추고 외면하거나, 누군가를 원망하기보다는 그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내면의 성찰로 승화시키는 것.

직접 펜을 들어 시를 쓰기는 어려울지라도,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옮겨 적으며 사유하는 시간.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그 조용하고 소중한 시간이 우리를 저마다의 마음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 단 한 줄만 내 마음에 새긴다고 해도』(나민애 지음, 포레스트북스)에 수록된 김승희 시인의「못 박힌 사람」을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