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을 본 미운오리새끼.

난생처음 '좋아하는 일'에 도전했지만

by 윤숲







노트북을 켠다.

타자기에 손을 올린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으로 여백을 채운다.

글쓰기, 참 쉽다.

그러나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글을 쓰는 건 쉽지만 '읽히는 글'을 쓰는 건 어렵다는 것.

지난 글에서 얘기했던 대로 나는 한 달간 끼니를 챙기는 것도 잊을 만큼 열정을 다해 글을 썼다.

'웹소설'이라는 장르였다.

예를 들면 불우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지고, 특수한 능력을 얻어서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이야기 같은 것이다. 내가 쓴 글도 그런 흔한 장르의 성장기였다.


하지만 그런 흔한 소설을 쓰면서 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언젠가 읽었던 몰입(황농문 저)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그 '몰입'이 내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세상 속의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의 고난이 곧 나의 고난이었고, 내가 살면서 느낀 것들이 곧 주인공의 생각과 행동에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자기 전에도 다음에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상상하며 잠들었고, 꿈을 꾸면서도 나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무의식 중에 글로 적고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혼자만 바쁜 그 생활이 정말 순수하게 재미있었다.

플롯이 뭔지도 모르는 내가 주인공에게 벌어질 일들을 설계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재미있고 감동적인 말과 행동, 감정으로 풀어냈다. 소설 속의 상황에 너무 이입한 나머지 어느 장면에서는 내 감정이 휘청할 정도였다.

내가 여태껏 어떤 일에 말 그대로 '혼'을 갈아 넣은 적이 있던가.

단언컨대 내가 썼던 그 소설은 나의 형편없던 글쓰기 실력을 한 단계 뛰어넘은 수준이었다.

내 머리에서 그런 스토리와 디테일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나는 쓰고 갈아엎고 다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지쳐갔다.

누군가는 완벽주의 성향이라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지만 나에겐 가끔 그것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발현된다. 그 덕분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다시 1화로 돌아가 무한 수정하기 바빴다.

오로지 열정 하나만으로 지친 마음을 무리하게 끌고 갔다.

나의 정신력이 전에 없이 고갈된 상태였지만 나는 기대와 희망에 기대어 계속 글을 써 내려갔다.

혹시 독자들이 내 작품을 재미있어해 준다면. 그래서 유료연재에 성공한다면?

정말 이렇게 재밌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갈 수도 있을까? 정말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행복회로를 잔뜩 돌렸다.


한 달 넘게 매일 오천자에서 일만 자를 써서 모아놓은 웹소설 40화. 책으로는 약 두 권 분량.

그것을 또 하루하루 플랫폼에 올릴 때마다 퇴고에 퇴고를 거쳐 정성스레 15화까지 연재했을 무렵 나는 깨달았다.

내 글을 꾸준히 읽는 사람이 열 명 남짓이라는 것을.

(물론 꾸준히 내 소설을 읽어준 이 이름 모를 열 명은 내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마음먹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이다.)


진심으로 즐겁게 소설을 썼다고 해서 내 글이 잘 쓴 글, 또는 읽히는 글이 되는 건 아니다.

그 바닥에는 이미 숱한 고수들이 있었고, 나는 이제 막 그 세계로 뛰어든 햇병아리 지망생일 뿐이었다.

읽히는 글에는 기획이 필요하고, 또 독자를 끌어당기는 기술적인 스킬과 웹소설만의 공식이 필요하다는 걸 처절하게 깨달았다.

상위권 순위에 오른 글들을 몇 개 읽어보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내 글이 뭉뚱 한 연필로 쓴 글이라면 그들의 글은 단 1화만 봐도 얼마나 갈고닦았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제대로 날이 서 있었다.

초조하고 답답한 마음에 웹소설 작가 커뮤니티에 이런저런 질문을 했다.(얼굴도 모르는 지망생의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주는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그게 부질없는 짓임을 알았기에 나는 질문을 멈췄다.

그리고 연재를 중단했다.



그 후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좌절했고, 막막했다.

웹소설에서 인기 있는 특정 문체나 장르, 통하는 코드 등 그 독특한 시장의 벽은 내가 넘어서기엔 너무 높게만 느껴졌다.



특정 형식에 국한된 웹소설보다는 그냥 판타지소설은 어떨까?

혹시 나랑 잘 맞는 분야가 따로 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런 분야를 찾는다 해도 그 시장이 글을 써 생계를 유지하겠다는 내 꿈을 이루어 줄런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내 글을 즐겨찾기 해준 독자들을 저버리는 것 같아 찝찝하고 미안했던 마음이 계속 걸렸다.

하, 그냥 끝까지 써볼걸 그랬나?

이런저런 생각, 별별 생각 위에 또 뭔가를 포기했다는 무거운 자책까지 더해졌다.

한편 머릿속에서는 쉴 수 있는 동안 다시 써내야 한다고 끊임없이 재촉했다.

그러나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하는 일없이 뒤숭숭하고 무기력한 마음으로 누워있길 며칠.

푹 쉬고 나니 문제가 뭔지 조금 감이 왔다.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하루 온종일 몰두하면서 단 하루의 휴식도 없었으니 번아웃이 오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나의 열정과 노력은 나도 모르는 새 첫술에 배부르려는 욕심이 되었고 너무 과도한 기대로 부풀어 한순간에 펑 터져 버렸다.


결국 나는 난생처음 마냥 좋아하는 일에 별 계산도 없이 도전했다가 좌절하고 다시 회복했다.

짧은 동안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한껏 신나고, 끝없이 우울했던 그 시간.

돌이켜보면 소중한 것들을 배운 너무도 값진 시간이었다.


1. 기대와 실망 그리고 도전과 실패 덕분에 마음앓이했고, 그로 인해 나는 성장했다.

2. 나는 하루 종일 틀어박혀 글을 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3. 미련 때문에 부여잡지 말고 시원하게 놓자. 휴식은 회복을 불러오고 회복하면 다시 도전할 여력이 생긴다.

4. 나는 왕도가 없음을 알고 한 계단씩 다시 쌓아 올려 볼 것이다. 이제 겨우 1회 차의 포기니까.

5. 경험하기 전에는 도전하기까지 10의 각오를 필요로 했다면, 이제는 그 일을 단 1의 각오만으로 다시 도전할 수 있다.


현재도 나는 이런저런 소설을 읽고, 스토리텔링과 웹소설에 대해 공부한다.

하지만 이제는 지칠 만큼 나를 그곳으로 거세게 몰아넣지 않는다.

하루를 달리면 하루, 이틀은 쉰다.

배우고 쓰고 고치고 다지고.


지금의 나는 이야기라는 호수의 가장자리를 배회하는 미운 오리새끼다.

그러나 언젠가 그 호수를 우아하고 아름답게 누비는 백조가 되고 싶다.

중요한 것은 즐거운 마음을 잃지 않는 것.

이런 마음으로 보낸 시간들이 흐르고 쌓이면 분명 멋진 선물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즐겁게 글을 쓰며 인생을 채워간 그 기억과 과정 자체가 내겐 선물일 테니까.




마지막으로 나와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고 일어나 결국 좋은 글을 남기는 모든 작가님들께 진심을 다해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작가님들, 정말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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