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취재] 열심히, 잘할수록 더 많이 일한다.

능력이 '짐'이 되는 모순.

by 윤숲






"천천히 쉬어가면서 해요. 각자 업무 패턴이 있는 거라 편하게 일해요. 출근했는데 컨디션이 안 좋다 하면 들어가서 쉬어도 되고. 오래 함께 일하려면 지쳐선 안되니까.^^"


그 말이 어찌나 고마웠던지.

물론 컨디션이 안 좋다고 정말로 퇴근하겠냐만은, 9 to 6의 비효율성에 깊이 회의를 느끼던 나였기에 이런 마인드의 대표님을 만난 것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일을 열심히 해서 회사에 꼭 기여해야겠다는 의지가 불끈 솟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이유는 없어.'

라고 마음을 다잡은 나는 다소 체계적이지 않은, 그리고 난해한 방식의 업무지시에도 초긍정 알잘딱깔센의 마인드로 임했다.

'크고 작은 문제들도 앞으로 잡아가면 된다. 대화로 풀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표님은 나의 업무처리방식과 그 결과를 매우 마음에 들어 하셨다.

내가 입사하고 덕분에 일할 맛이 난다고까지 하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대표님의 칭찬으로 회사 내에서 나의 평판은 '빠릿빠릿한 사람'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분명 괜찮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얼마 후, 회의시간의 일이었다.


"아니, 이걸 여태 이해를 못 하면 어떡하냐? 여태까지 뭐 한 거야?"

"죄송합니다. 대표님."


A과장을 향한 대표님의 울그락불그락한 얼굴.

대표님은 한숨을 푹 쉬고 그에게 말했다.


"이거 나대리(나-예명)한테 부탁해서 같이해. B과장도 잘 안되는 거 있으면 나대리한테 도움요청해서 진행해요. 서로서로 협업하면 좋잖아."


또 한 번의 맙소사였다.

사무실로 돌아온 과장님들은 뻘쭘해하면서도 내게 이것저것 부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료해석 방향성을 잡는 것부터 간단한 서류작성, 블로그 글 스크랩하는 방법까지 내게 물었다.


'하, 진짜 너무한 거 아닌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내가 챙겨야 하는 상황이 되자, 설마 일부러 이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게다가 이것저것 더욱 과중한 임무를 부여하는 대표님까지.

나는 또 한 번 혼란에 휩싸였다.


진심인 줄 믿었던 대표님의 쉬어가면서 하라는 말이 '쉬엄쉬엄 빨리하라는 말이었구나'라는 걸 깨닫고 나서, 그가 지시한 업무에 차질이 생기면 난감하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동료들에게 방어책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과장님, 죄송하지만 그 정보는 검색창이나 챗지피티를 이용하시면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대표님께서 급하게 지시하신 업무가 있어서요."


생존을 위한 나의 방어전략에 벽을 느꼈는지 처음엔 살갑던 그들은 나와 조금씩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왜 이런 상황을 겪어야 하지?라는 억울한 감정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차 싶었다.

언젠가 무작정 열심히만 하다가 피를 보고 울적해하는 나를 걱정하던 한 직장선배의 조언이 떠올랐다.


"윤숲아, 네가 잘못한 건 전혀 없어. 그렇지만 우리는 뭘 하든 적당히가 중요해. 너무 넘치게 잘해도 안되고 모자라도 안되거든."


그렇다. 어느새 중요한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적당히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 가장 오래간다'는 진리.

회사에 기여했다는 성취감과 '성과만 좋으면 재택근무도 가능'이라는 달콤한 목표가 과거의 부조리를 잊게끔 내 두 눈을 가렸던 것이다.


왜 더 잘하고 열심히 하면 더 많은 업무를 맡아야 하지?

내가 저 사람보다 직급도 낮고 돈도 적게 받는데 왜 그의 업무까지 내가 떠안아야 하는 걸까?

예전엔 그냥 짧은 경력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합리화하기엔, 너무 비합리적이지 않은가.

열심히 달려 업무를 끝내고 나서 허리를 펴고 보면, 회사는 내 어깨에 더욱 커다란 짐을 얹는다.

그게 당연하고, 누구도 쉬쉬하며 문제 삼지 않는다.

나의 열정이 '당연한 것'이 되는 순간, 모든 것에 의미를 잃고 나는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진다.


연차가 낮으면 적게 받고, 연차가 높으면 많이 받는, 성과와 무관하게 연차로 급여가 결정되는 체계.

나는 대부분 그런 회사에서 일을 했다.


한 사람에게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의 업무를 지워주는 것이 회사의 입장에서는 효율적이고 경제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기계가 아니지 않은가.

구성원에게는 마음이란 것이 있다.

열심히 한 만큼의 존중, 감사 그리고 휴식을 얻는다면 그 또한 열정을 더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직원의 열정을 이용해 최대한 뽕을 뽑으려고 든다면 그 누가 열심히 일하려 할까?




열심히 일하고 싶어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좋소기업의 현실.

오늘의 취재는 여기까지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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