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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지은 Oct 15. 2019

궁전아파트 사람

속이 안좋아 병원에 다녀오는 길. 퇴근을 한 엄마와 시내에서 만나서 밥을 먹으러 갔다. 3층 창가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나는 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제 저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대.”

엄마가 창밖의 아파트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단다. 최근에 지어진 그 아파트는 우리 지역에서 가장 크고 높은 건물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 아파트 집 값 떨어지겠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 실린 소설이 있었다. <옥상의 민들레 꽃>.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궁전아파트에서 할머니 두 명이 자살한다. 입주민들은 그 일로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한다. 주민들은 자살방지 대책 회의를 연다. 자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닌, 그로 인한 집값이 떨어질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현시대를 비판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내가 소설을 읽고 배운 건 달랐다.

‘아, 아파트에서 사람이 자살을 하면 집값이 떨어지는구나. 집값이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구나.’     


 십년 전, 우리 아파트에서 한 사람이 떨어져 죽었다.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다. 이곳에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왜 우리 아파트에 와서 죽었을까. 화단에 떨어진 사람을 발견한 주민이 비명을 질렀다. 주말 아침이었다. 놀란 사람들이 뛰쳐나갔고, 떨어진 사람을 봤다. 엄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괴로워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모른 척할 걸 싶었단다. 나는 못마땅했던 것 같다.

‘왜 우리 아파트에 와서 죽은 거지. 우리 집이 비싼 곳도 아닌데 집값이 더 떨어지는 건 아닐까.’     


 그즈음 비슷한 일이 학교에서도 있었다. 나는 비평준화 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녔다. 내가 다니는 학교 이름을 말하면 어른들은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우리 학교에서도 한 사람이 자살을 했다.

 미션스쿨인 우리 학교는 매주 금요일 강당에서 예배를 했다. 그 사람은 오지 않고 교실에 있었단다. 예배가 끝나고 교실에 가는 길이었다. 본관 앞에 구급차가 와 있었고, 선생님들이 들어가라며 소리쳤다. 바닥에는 사람이 떨어진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선생님들은 밖에 가서 그 일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했다. 학교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이어서다. 나는 별 생각 없었다. ‘그렇구나.’했다. 아무도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궁전 아파트 사람 (digital art, 2019)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그 사람들이 왜 죽었을지 마음을 헤아려보아야 할까. 아님,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을 원망해야 하는 걸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어떤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그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게 맞는 걸까.      


 “그 사람이 떨어진 곳이 25층이었대.”

엄마는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얘기를 회사에서 듣고 왔다. 회사 사람 중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난간 높이가 일 미터가 넘는데 어떻게 죽었대?"

높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죽고자 마음먹었는데 그깟 난간이 문제 될까. 또 한 사람이 말했단다.

"다행이다. 내가 아는 사람은 20층 이하에 살아. 그 사람은 아닌가 보다."

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찝찝함을 느꼈다. 미간이 구겨졌다.

     

 25층이라는 얘기를 듣고 상상했다. 그 사람이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과 떨어지는 것을. 무섭지 않았을까. 그래, 어쩌면 살아가는 게 제일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나는 가끔 베란다 밖을 보며 생각했다. 떨어지면 죽을까. 그게 정말 끝일까. 내 인생의 마지막이 자살이 아닐까 생각해본 적 있다. 죽음은 무섭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무딘 느낌일까.

  우울증의 가장 큰 증상은 무력감이라고 했다. 힘이 날 때, 죽음을 생각한단다. 그 사람은 힘이 났던 걸까. 차라리 의욕 없이, 무력하게 있는 게 나은 걸까. 그 사람이 떨어질 때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다. 떨어진 뒤가 아니라, 떨어지는 순간 모든 걸 놓았으면 좋겠다.      


“어제 저 아파트에서 사람이 죽었대.”

엄마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되게 어이없는데, 나 집값 생각했어. 이 일로 아파트 값 떨어지겠다고.”

엄마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미간을 구겼던 이유와 같은 것일까.      


 나는 소설 속에 나온 궁전아파트 사람들과 같았다. 내가 배운 건 잘못된 세상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되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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