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상처가 가진 힘을 믿어볼 것

25년 6월 넷째 주

by 박놀

그래서 한 번 더 인정했어요.


아, 나는 죽을 수 없구나. 자살은 하면 안 되는구나. 삶을 마주해야 하는구나.


저도 제가 무슨 말을 적는지 모르겠어요. 무서워요. 무서워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요. 저는 정말 죽으려고 했는걸요. 근데 이제 자살하면 안 돼요. 그걸 깨달아버렸어요. 마음의 안식처, 수필을 통해서 저는 몸의 안식처, 자살을 잃어버렸어요.


후회가 되죠. 그런데요. 아마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예요. 모든 걸 놓고 홀가분했던 미소가 사라질 거예요. 저는 이제 삶을 짊어질 거니까요.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요. 자고 일어나면 초연했던 얼굴이 아니라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 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독자님들을 위로해 줄 수 있으니까요.


저는 여전히 정신질환자예요. 영원히요. 그래도 괜찮아요. 독자님들을 만났으니까요.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네요. 오늘은 그만 글을 써야 할 것 같아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 23년 6월 18일 일기에서 -




시험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죽음을 향했던 집착도 어느 정도 내려놓았습니다. 이제 저는 삶도, 죽음도 미화하거나 추천하지 않고 삶 속에 죽음, 죽음 속에 삶이 있는 순간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달라지는 걸까요?


사실 생각보다 그렇게 변하는 건 없습니다. 저는 더 이상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23년 6월의 어느 날에 그랬던 것처럼 두려움을 느끼지도 않고, 여전히 일해야 할 때는 쉼을 하고 싶어 하고 쉬어야 할 때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도약하고 싶은 곳에 다다르기 위해 잠시 몸을 웅크리는 개구리처럼

마주하고 싶은 것을 해내기 위해 잠시 그것들을 뒤로 미루되 그 회피를 인정하는 방식으로 살아갔던 저는

분명 제가 고수했던 그 생존 방식, 진정한 회피를 잠시 거둠으로써 삶과 죽음의 공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제가 정의했던 저의 개구리 같은 모습은 제가 설정한 제 한계였던 것입니다. 물론 그 한계 안에서 저는 안락함을 느꼈지만, 동시에 혼란을 느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삶을 추천하면서도 나에게만큼은 죽음을 추천하는 모순에 놓여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마침내 그 한계를 벗어나는 용기가 생겼을 때, 저는 비로소 모순된 정답이 아니라 공존하는 가능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여전히 마주하고 싶은 것을 해내기 위해 잠시 그것들을 뒤로 미루되 그 회피를 인정해야 하는 순간을 그리고 제 개구리 같은 모습을 부정하진 않습니다. 실제로 여전히 일해야 할 때는 쉼을 하고 싶어 하고 쉬어야 할 때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개구리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죽음을 위해 자살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믿었던, 그리고 삶을 마주해야만 한다고 스스로를 내몰았던 23년 6월 18일의 '작은' 비극을 더 이상 반복하지는 않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날은 지금의 제 기준에서는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약 세 달 뒤, 저는 "현재에는 충실하되, 미래에는 자살하겠다."라고 선언을 하게 되며 또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두 번째 자살 시도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날, 저는 파스타를 먹었습니다. 채소는 어떤 것이든 딱히 좋아하지 않지만, 고기와 함께 조금씩 먹으니 무난하게 먹을 만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싫어하는 것도 가끔은 괜찮구나. 그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이후,

'음, 제가 아이의 자해 흔적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외면하지 않았다면 뭔가 바뀌지 않았을까요?'

'다 의미 없는 가정이죠. 지금 이 글의 주제도 아니고요.'

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다 먹고 난 다음에는 카페에 갔습니다. 그런데 카페에서 음료를 받고 대화를 나누던 중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주변 사람이 하늘나라로 떠난다면 어떨 것 같아?”


고민했습니다. 가볍지 않은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이라면 ‘내가 대신 갔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죽음에 대해 성찰했기 때문에 그것보단 안타까울 것 같아. 죽음은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고민 끝에 얘기를 꺼냈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죽음과 친해지려고 하지만 여전히 죽음을 고통이라고 여기고 무서워하는구나.

죽음은 자의든 타의든 그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지 않는 한 고통일 뿐이구나.

그러니까 자살이든 사고이든 성찰이란 시간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죽음은 고통일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뭔가 이상함을 감지한 건 바로 그때였을 겁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저는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학생회 때 네 직속 후배 있잖아. 그 친구가 사실 2년 전에 죽었어.”


면접을 유독 잘 봤던 아이.

모든 열심히 했던 아이.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어느 날, 손목에 붕대를 감고 나타났다는 것일 겁니다.


그때 “친구가 자해하고 있을지도 몰라. 한 번 얘기해 보는 게 어때?”라고 누군가 말해줬을 때,

저는 당시 자해를 하는 아픔을 너무 몰라서 “응. 알겠어.”라고만 답하고 바쁜 일정 속에서 그 아이와 얘기를 나누는 걸 깜빡해 버렸습니다.


과거를 떠올리며 울진 않았습니다. 다만 너무 안타깝고 미안했습니다.


'저는 금방 그 아이를 잊겠죠. 붕대를 감고 나타났던 순간을 깜빡했던 그때처럼요.'


가슴이 쿵 떨어지는 느낌은 기묘하게도 스스로를 해치고 싶다는 충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스스로를 해쳤던 그때의 전 또 다른 개구리였습니다. "자살은 죽음을 버리는 행위"라고 말하며 죽음이라는 경지에서 잠시 뒤로 물러날 수 있었지만, 결국 그때의 저에게 여전히 "자살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행위"로써 감히 그러지 말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나 다를 바가 없었고, 결국 약간의 후퇴를 가장한 기다림 후에 그것을 향해 도약해 버렸으니까요.


그때 저는 말했습니다.


"저에게 죽음은 성찰이 이뤄지지 않는 한 고통일 뿐인가 봐요."


삶도, 죽음도 쓴 맛만 가득한 어려움이지만, 그래도 성찰을 가장한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면 죽음에는 분명 달콤함이 조금은 생길 거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그때의 저에게 죽음은 이 순간을 끝낼 수 있는 '단순한' 생명활동의 중단 그 이상을 의미하지 않았으니까요.


결국 지금도 달라진 건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삶과 죽음 모두에게 달고 쓴 맛이 함께 존재한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금 당장 변하는 건 딱히 없어요. 그게 위안이 될 때도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던 그때처럼 하지만 동시에 그때와는 다르게 살아남아 볼 것이니 마음의 상처가 가진 힘을 믿어봐도 괜찮지 않을까요.


어느 날, 제가 저 자신에게 말했던 것처럼 저는 마음의 상처 때문에 '잘' 살진 못했지만, 그 상처 덕분에 '못' 살아남지도 않은 자칭 죽음 성찰가이자 타칭 자살시도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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