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6월 셋째 주
물론 저는 여전히 지금 당장은 죽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앞으로도 죽음을 꿈꾸려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수 없는 ‘위험한’ 청년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자살이 삶으로부터 저 자신을 보호하려는 방패에 가깝기도 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지금 당장의 ‘자발적’ 죽음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순간을 분명히 느끼고 있습니다. 입시 후유증으로 인생을 부정당했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그러니 인생 따위 살고 싶지 않다고 절망했을 때에도 쓰고 싶은 글을 다 쓰면 죽을 거라고 다짐하자 몸과 마음을 잡아먹는 우울, 불안, 무기력으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그것이 제 결말을 자살로 정의하는 근거로 작용했다면, 이제 그것은 제가 꿈꾸'려'는 죽음이 미룸과 함께 완성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생략)
결국 죽음을 꿈꾸는 것 혹은 죽음을 꿈꾸 ‘려’는 것은 타인에게만 죽음을 미화하거나 추천하지 않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도 계속해서 그에 대한 질문을 던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삶을 미화하거나 추천하는 것도 아닙니다. 실제로 찬성이나 반대라는 정답보다는 질문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는 일이 제가 지금까지 의식하지 않고 걸어왔던 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길을 의식적으로 걸을 수 있도록 죽음을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기인한 ‘자존심’을 어느 정도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님과의 작업 중에서 -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마도 저는 꽤 오랫동안 학교라는 작은 사회가 추구하는 정답의 본보기로써 많은 기대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1학년, 운 좋게 전교 1등을 한 후 이뤄진 첫 번째 진로 상담에서 담임선생님께서는 D대학교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는 제게 너는 당연히 S1대학교를 가야 한다며 '꿈'을 좀 더 크게 가지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 친구들 역시 모두 제가 당연히 S1대학교를 갈 수 있는 아이라도 되는 것처럼 '대단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성적이 잘 나올 때는 그 칭찬이 좋았습니다. 제가 꼭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적이 내려가자 그 말들은 모두 부담이 되었습니다. 나를 당연히 S1대학교를 갈 수 있는 아이로 멋대로 정한 것은 저들이면서 좋았던 만큼 그 길에서 감당해야만 하는 고통도 당연히 감수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황이 너무 억울하고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정답을 추구해야만 했습니다. 당장의 성과를 요구하는 학교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학년, 떨어지는 성적에 담임선생님의 눈빛이 바뀌었습니다. 학교가 던지는 '작은' 피드백은 무심코 봤을 때는 얕볼 수도 있을 만큼 사소했지만, 그 크기와는 반비례되게 저에게는 그 무게가 너무 무거웠습니다. 어느 날부터 사람의 눈을 못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눈을 맞추면 지금 내가 불안해하고 있다는 게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같은 반 아이들도, 개인적으로 조금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눈도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쌍둥이 동생을 제외한 가족들의 눈도 맞추기 어려워졌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못 맞추니 바닥을 보게 되고, 점점 더 위축됐습니다. 학교는 더 이상 즐거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단 한순간도 머무르기 힘들 만큼 끔찍한 공간이었습니다.
3학년, 형편없는 3월 모의고사 성적에 대해 담임선생님께서는 교실 밖 복도에서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저에게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그때 저는 거의 아무 말도 못 했지만, 사실은 이렇게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라고, 나는 너무 아프다고, 애초에 S1대학교를 가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한 적도 없다고, 그러니 애초에 낼 힘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래도 마찬가지로 형편없었던 중간고사 성적을 기말고사에서 겨우 만회한 후 S1 대학교 면접까지 준비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저는 이제 괜찮을 거라고 조금 안심해 버렸습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과 함께한 모의면접은 학교보다 더 끔찍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책상에 놓인 제 생활기록부를 대충 들며 “너의 인생은 재미가 없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뒤이어 말씀하신 “너 일탈은 해봤니?”라는 말에 저는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눈앞이 뿌옇게 변하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코가 매워지면서 콧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그 더러운 콧물을 훌쩍이는 순간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자진납세하는 것 같아서 얼굴을 타고 턱까지 흘러내리는 그것을 억지로 삼키고 남은 것은 코로나 덕분에 끼고 있던 마스크를 꼭 붙잡으며 밑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버둥거리는 것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너 친구도 없지?"라는 말이 그때의 제가 겨우 기억할 수 있었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렇게 거의 30분을 콧물만 먹고, 마스크만 붙잡으며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을까라는 회의감이 안 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자존심'으로 어떻게든 그걸 감추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았는데 마지막에 대답하면서 결국 콧물을 훌쩍였고, 선생님께선 그제야 “너 우니?”라고 말씀하시고는 도망치듯이 밖으로 나가버리셨습니다. 그때 전 그렇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썼는데 상대방이 알아버렸다는 현실과 결국 선생님은 이를 그냥 외면하고 나갔다는 오해 속 허무함에 더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휴지를 가지러 교무실로 가셨던 선생님을 다시는 마주치지 않기 위해 다른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야 화장실로 가서 코를 풀고 얼굴을 닦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견딘 결과는 불합격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S1대학교가 아니라 S2대학교에 입학했으며 이후 약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집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괴로웠습니다. 그때 저를 사로잡은 감정은 회의감이었습니다.
"그렇게 달렸는데, 어떻게든 선생님께서 그때 하신 말들은 S1대학교에 가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양분이라고 생각하며 달렸는데 이게 뭐죠. 가끔 살펴보는 다른 친구들의 일상은 S1대학교에 가지 않아도 모두 행복해 보여요. 하지만 난 뭔가요. 난 결국 S1대학교도 못 갔고, 이렇게 과거에 매여 있잖아요.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이에요. 더 허무한 건 이렇게 과거에 매여 있는데도 S1대학교는 생각도 안 난다는 거예요. 정말 하나도 아쉽지 않아요. 그냥 선생님과 학교를 만났다는 것이 너무 후회될 뿐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 자신마저 불태워버릴 만큼 강렬한 원망에 사로잡혔습니다.
"선생님은 면접 답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인생을 갑작스럽게 폄하하는 그 발언이 정말 면접이 이틀 남은 학생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던 건가. 오히려 이제는 어떻게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데 도대체 왜 학생의 자존감을 오히려 깎으려고 했던 걸까. 선생님을 이해해야 해. 반복되는 이 회상에서 벗어나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러면 "그래, 내 인생은 재미없어.", "나는 인생을 헛살았지.", "선생님은 그런 소리를 할만했던 것 같아."라고 생각해야 하나. 나는 나 자신을 폄하하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이 이상 나를 폄하하면 정말 나는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그냥 선생님을 잊으려고도 했어. 근데 그게 될 리가 있어?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그래서 그냥 선생님을 탓했어. 그런데 누군가를 진심으로 원망하면 가장 힘든 건 결국 나야. 담임선생님, 고등학교,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까지 원망하고 나면 그 뒤에는 초라한 나만 남고 풀 수 없는 분노가 가슴에 쌓이니까."
"그런데 도대체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그딴 말을 지껄인 걸까. 아무리 선생이라도 학생의 인생을 함부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지금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또 아무리 자극을 준다고 해도 너의 인생은 재미가 없다, 넌 친구도 없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결국 은연중에 나를 보며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이 흘렀을 때, 저는 선생님을 향한 원망이나 분노보다도 저 자신을 혐오하게 됐습니다. 아, 결국 나는 그딴 사람이구나. 그런 재미없다, 친구 없다, 특색 없다는 말로 정의되어 버릴 만큼이나 형편없는 삶을 살았구나.
그때 저는 저에게조차 역겨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정답을 차지하지 못한, 인생을 잘못 살아버린 패배자였으니까요.
정답 추구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하기 위해 오랜만에 짚어본 고등학교 시절은, 이미 선생님과 학교를 어느 정도 제 나름의 방식으로 '용서'한 지금의 제가 봐도 참 처절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21년이었습니다. 그래도 '자발적'으로 죽지 않기 위해 처절한 이해라도 시도했던 저는 1년 뒤인 22년, '자발적' 죽음을 장렬히 '실패'하며 그 다짐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죽기 위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정도 더 지난 23년에 이뤄졌으며, 그 뒤 '아름답게' 죽기 위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기까지는 또 약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올해 초 목표로 3월부터 지금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1시간 정도 일기를 쓰는 시간을 가지며 저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게 이 세상에서 저 자신에게 위안이 될 만큼 따스한 것은 죽음뿐이었고, '자발적' 죽음은 삶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라 삶을 '잘' 마무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삶도 죽음 못지않게 따스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느꼈는데 그제야 저는 정말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표현을 일기에 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복 곁에는 항상 불행이 함께합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만큼 그 공간에서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저는 무력감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래도 그것을 바로 며칠 전 어느 정도 모두 마무리했을 때, 저는 정말 오랜만에 죽음을 직접적으로 성찰하는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바로 정답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정답은 앞서 길게 서술했던 제 고등학교 시절처럼 그것을 무작정 추구하면, 오답으로 탈바꿈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꿈꾸고 이야기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일 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저는 매주 작게나마 일주일의 삶을 되돌아봤는데 그때마다 제 고통과 두려움과 허무함과 무기력을 솔직하게 인정하려고 했습니다. 그건 힘이 거의 없을 때 주로 고수해 왔던 생존방식인 ‘진정한 회피’를 잠시 포기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밀고 나가는 제 상징동물은 사실 개구리입니다. 개구리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잠시 몸을 움츠리며 후퇴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픔이라는 물러섬도 더 큰 의미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해 잠시 몸을 움츠리는 개구리처럼 마주하기를 잠시 미루되 그 미룸을 인정하는 방식‘만’을 밀고 나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 원하는 곳에 도약할 수 있는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그동안 크고 작은 죽음을 얘기하며 삶에서 상실이 더 큰 순간을 마주하는 방법을 느낀 덕분일 것입니다.
결국 죽음을 꿈꾸는 것 혹은 죽음을 꿈꾸 ‘려’는 것은 자살 찬성이나 반대라는 하나'만'의 정답보다는 질문을 계속해서 찾아나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마치 제가 끔찍했던 고등학교 시절 속에서 그래도 주요 관심사와 주요 전공을 연관시키는 연습을 하며, 스스로가 조금은 괜찮은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었던 며칠 전의 경험과 비슷한 일 속에서, 나에게도 큰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던 것처럼
여전히 정답'만'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것에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지금 당장 살아남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기도 합니다.
이 깨달음은 시험 전날 새벽에 갑작스럽게 이뤄졌습니다. 실제로 "잠을 자고 난 후 혹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난 후의 제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건 잘 모르겠다."라고 저는 이어서 서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하나 확실시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이 혼란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사실은 그렇게 겁낼 필요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니 정답은, 조금 과장하면 외면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