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하되, 기죽지 말 것

25년 7월 셋째 주

by 박놀

이후, 타고난 것 같다는 표현까지 써주셨는데 벅차서 눈물이 나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무너지고 난 다음의 제 약 5년이라는 시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생략)


사실 저는 감히 제 캠페인 제안서를 누군가 읽고 협업을 제안하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이지만, 조금이나마 변명하자면, 그만큼 너무 간절했습니다. 뭐가 간절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의 제가 한때의 저처럼 죽음만을 갈망하는 아픔에 처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달려 나가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인정받고 싶다는 갈망에 충실하며 뜀박질하고 있는 건지 제 몸이고 마음이고 영혼이지만 잘 모르겠습니다.


- 25년 7월 14일 안병은 수원시자살예방센터장님과 연락 중 -




삶도, 죽음도 미화하거나 추천하지 않고, 정답 대신 질문을 던지는 순간을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지 거의 한 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깨달음을 또다시 부정할지도 모르겠다는 려와는 달리 저는 아직까진 삶도, 죽음도 조금씩 마주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지난 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제게 삶은 두려운 것 투성이라서 죽음이라는 방패를 통해 간접적으로 마주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혹은 죽을지) 명확한 답을 정해놓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장 힘든 건 그 간접적인 마주함마저도 버겁게 느껴질 때인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작고 약한 존재구나 실감이 나서 기가 팍 죽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제가 기가 죽었다는 것도 잘 몰랐습니다. 그냥 이 두려움은 현실이고 나는 못났으니 이것은 마땅히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느꼈던 겁니다.


하지만 오늘의 핵심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삶과 죽음을 균형적으로 함께 마주하기 위해서는 내가 못났든 아니든 나 자신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일 겁니다.




기죽지 말아라.


그 말을 들은 것은, 천천히 조금씩 다가오다가도 갑자기 사람을 덮쳐버리는 현실을 실감했을 때였습니다.


원래는 기분이 그다지 나쁘진 않았습니다. 저를 사랑하는 주변은 항상 제 생각과 아이디어, 계획들을 좋게 봐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주제는 삶을 주로 미화하는 세상의 입장에서는 다소 난해하고 어려운 말들이었기 때문일까. 저는 몇 년째 밖에서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항상 오뚝이 인형처럼 일어날 수 있고, 이 주제는 세상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실패를 반복하며 삶 속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입니다.


실패 속에서 성찰의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괜찮아질 거라고 아무리 저 자신에게 말해도

실패로 대변되는 삶의 현실은 결코 따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저는

죽음만을 위하려는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을 모두 마주해 보겠다는

좀 더 세상에게 친숙해 보이는 임시적 결론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친숙하지 못한 주제 외에는 그래도 다른 점들은 나쁘지 않을 거라고 믿었는데 기가 팍 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또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남의 아픔보단 나의 기쁨을 중요시하는, 철저히 윗세계 위주로 판단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니 이성이 마비되는 듯한 감각이 들고, 아무나 붙잡고 신세한탄이라도 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한분께 연락을 드렸습니다.




사실 전 지금까지도 충동을 이겨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상당히 즉흥적이고 이상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에 또 기가 죽진 않으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장문의 신세한탄 글을 읽고도 당황하지 않고 오랜만의 만남을 제안해 주신 분의 말씀처럼

지금 당장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의 못남 여부와 관계없이 나의 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조금 자만이고 억지처럼 느껴지더라도 기죽지 않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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