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목표보다 목적을 고민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잘못된 건 없을지도 몰라요

by 박놀

“나는 글을 쓰며 많이 변화했어.


정신질환자인 내가 글을 썼던 최초의 이유는 죽기(정확히는 자살하기) 위해서였잖아. 그러나 글을 쓰고 경험을 쌓으며 나는 죽음과 자살을 분리하게 되고, 언젠가 자살하겠다는 감각을 내려놓지.


현재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 명확함, 정답이 때론 더 혼란스럽게 함을 알고 있거든. 그냥 죽음을 성찰해보고 싶어.


죽음은 삶과 비슷한 모습일 때가 꽤 많고, 나는 그 가능성을 탐구해보고 싶어서 지금도 개인성찰과 집단프로젝트성찰을 이어나가고 있지.


그러나 솔직히 두려워. 최초의 성찰을 시작한 그때만큼. 아니, 그때보다 더 잘할 수 있을까 싶어 지는 거야. 더 잘해야 한다고... 나는 말해. 그래서 두려워하고, 아주아주 천천히 가려고 하지.


최근 화에서 그런 걸 적었어. 나는 목표보다는 목적을 고민하는 사람인 것 같다고.


그래서 장기적인 꿈을 (주로) 보고, 그걸 위한 구체적 계획이나 행동에(는) 약하다고.

그래서 내가 하려는 죽음 연구라는 독특한 일에 대한 침묵과 시선을 두려워한다고...


그러나 요즘 느끼는 건 이 둘은 내가 밀면 그냥 밀릴 내가 설정한 한계라는 거야.”


-26년 2월 4일쯤 성찰 도중-




안녕하세요. 어떤 것에 이끌려 여기까지 오신 건지 그건 ‘함부로’ 알 수 없겠지만, 만나서 반가워요.


그냥 감히 짐작해 볼 뿐이에요. 지금도 많이 혼란스러우시겠구나. 그리고 이 마음은 연민이나 동정보다는 당신으로부터 시작되어 결국 저 자신으로 귀결될 ‘안타까움’에 가깝겠죠.


예전에는, 안타까움은 ‘무례한’ 감정이라고만 생각했어요. 저에게 그것은 상대의 약함을 전제로 관용과 아량을 베풀려고 하는, 우월감 젖은 감각에 가까웠거든요.


그런데 어쩌면 관용도, 아량도, 안타까움도 다 가끔 혹은 종종 서로를 잠깐 숨 쉬게끔 해주는 ‘작은’ 인생의 더 ‘작은’ 단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요즘은 조금 들어요.


그리고 그것은 이 글 그리고 이 편지의 첫 시작이었던, 목표보다 목적을 고민하는 경향이 있는 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시작되었겠죠.


지금도 저는 또 하나의 작은 인생을 끝마치고, 크기는 비슷하지만 좀 더 무거워진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것 같아요.


인생이 작다니. 그런데 그것은 또 무겁고, 그것보다 좀 더 무거운 ‘새로운’ 인생이 있다니.


사람이 좀비도 아니고.... 어떻게 하나의 인생을 끝마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거지?


맞아요. 사람은 본질적으로 좀비가 아닐 거예요. 그러나 심장이 뚫리고 멈추기라도 하는 것처럼 괴로운 상실을 경험하기에 ‘큰’ 죽음은 아닐지언정 작지만 무거운 죽음을 끝없이 겪어야 하죠.


그것을 극복하거나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저 걷고 있는 길의 끝을 때로는 대비하지 않아도 괜찮을지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것이 가끔이든 아니면 종종이든 그것도 아니면 매번이든 너무 염려하거나 ‘그때’보다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안아라도 주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것이 구체적인데 해야 할 것이 막연한 사람들을,

누구보다도 복잡해서 단순해지고 또 단순해져야만 숨이 트이는 사람들을,

사실은 그런 저 자신을 외면하고 싶지 않았어요.


글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며 느끼는 점은, 역시 저는 거창하면 못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종종 찾아오겠다는 다짐은 어려울 것 같아요.

글을 쉬며 해온 것과 깨달은 것이 있다는 내용 깊은 글도 어려울 것 같아요.


당장 지금만 해도 막연히 오늘의 저를 사로잡은 문장과 쓰고 싶은 형식(편지글)을 짧게 성찰하며 “아, 나는 오늘 나 자신을 안아주고 싶었구나.”를 느꼈을 뿐이니까요.


그저 이 글들을 통해 예전보다 좀 더 저 자신에게 솔직해지고 싶다는 목적만 겨우 말씀드려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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