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비디바비디부 Feb 07. 2024

캐나다 1년 살기를 위한 짐을 받기까지

사람들은 기다렸다. 이 추운 날, 이 더운 날 고생하는 누군가를.

* 이 글은 곧 전자책으로 출간될 예정인 '가족이 사랑한 시간, 캐나다 1년 살기'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책이 출간되고 난 뒤에는 부분적으로 내용이 수정/삭제될 수 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내려놓고 모니터 앞에 앉는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모니터의 엑셀 화면을 노려본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늘 이 상태다. 벌써 2주째 나는 무엇을 챙기고, 무엇을 뺄지와 사투 중이다. 우리가 구한 집은 Full-furnished(풀퍼니쉬드)로 가구와 가전 등이 갖춰진 집이다. 침대와 TV, 세탁기, 건조기, 전자레인지, 식탁과 의자까지 있다. 한국의 집은 세를 주지 않고 비워둔 채로 다녀올 셈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가져가야 할 것들을 리스트업 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갑자기 날짜가 정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준비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 시국이라서 선박운송으로 짐을 보내면 최소 3개월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길 들었다. 선박운송이 비용적인 면에서는 효율적이지만 우리에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도착 한 달 전에 짐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캐나다 1년 살기 중에 2개월은 짐이 없이 살아야 한다. 형평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항공운송이다. 가구와 가전이 없으므로 항공운송을 선택할 수 있기도 했다. 부피가 크고 무거운 것은 보통 항공으로 보내기 힘들다. 그렇게 짐을 보내는 방법을 결정하고 났더니 이제는 무엇을 보낼 것이냐라는 난제에 부딪혔다. 우선 심호흡을 하고 인터넷을 검색했다. 내가 알아볼 당시에는 가족이 모두 해외에서 1년 정도 사는 경우 짐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에 대한 책이나 컨텐츠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흩뿌려진 듯한 다양한 정보들을 취합하고, 편집을 거쳐서 나만의 리스트를 작성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비록 한국에서 살 때보다 비싸지만 한국 마트에 가면 식재료와 식품도 아쉽지 않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친정엄마가 만들어주신 간장과 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아이템이었다. 캐나다는 아이가 캠프와 학교에 가기 시작하면 도시락을 싸야 한다. 점심 식사뿐만 아니라 중간에 먹을 스낵도 챙겨야 한다. 한국에서 미리 정보를 입수하고 도시락을 구입했다. 하지만 막상 밴쿠버에 가니 동네 상점에서도 도시락통은 쉽게 구할 수 있다. 보통 얌박스, 시스테마 같은 서양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형태다. 샌드위치와 파스타, 스낵류를 한 통에 모두 담을 수 있다. 하지만 한식파 우리 아이에게는 별로 맞지 않았다. 다행히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 간 작은 죽통과 보온 도시락통이 있어서 유용하게 사용했다.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구입해 간 오미박스는 좋은 선택이었다. 파스타나 수프를 담을 수 있는 작은 보온 통이 함께 있어서 거기에 주로 따뜻하게 먹어야 할 음식을 담아줬다. 수건은 일부러 많이 가져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코스코나 월마트 등에서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들이 쌓여 있었다. 부피를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필요한 만큼 사서 쓰고, 올 때 버리는 편이 좀 더 경제적이다.


 우리 가족이 밴쿠버에 도착함과 동시에 짐도 도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희망에 가까운 일이기에 진작 준비를 해야 한다. 보통 짐은 사람보다 늦게 도착한다. 현지에서 대신 짐을 받아줄 사람이 있다면 엄청난 행운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20박스 이상의 엄청난 짐을 받아서 대신 보관해 줄 사람은 거의 없다. 짐을 보내면서 남편과 가장 신경 쓴 점은 ‘언제’ 받느냐는 거였다. 막상 도착해서 텅 빈 집 바닥에서 수건을 깔고 식사를 했다거나, 침낭을 사다가 잠을 잤다는 에피소드도 많다. 우리는 가전과 가구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첫날부터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이불과 베개가 없다는 걸 간과했단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 이후지만. 


 그래서 한 달 전에 미리 택배를 택배 회사로 보내놓고, 물류 창고에 보관해 놨다. 항공택배는 보통 며칠 만에 도착한단다. 그렇다고 출발 며칠 전에 택배를 보내기에 우리가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짐에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는 없었다. 물류창고에 보관해 두다가 원하는 배송 일정을 정해두면 그때 밴쿠버의 집 주소로 배송해 주겠단다.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 같았다. 우리 생각보다 잘하는데, 하면서 남편과 약간 우쭐한 마음마저 생겼다.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이 내 생각대로만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내면 3일 만에 도착할 거라던 UPS 항공배송은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생각보다 추운 밴쿠버 날씨에 입을 옷도 마땅치 않았고, 물건 구입을 최소화하면서 버티는 우리도 한계가 찾아왔다. 무엇보다 한식과 엄마 밥만 고집하는 아이가 그동안 제대로 먹질 못했다. 아이는 워낙 아무거나 잘 먹는 타입이 아니다. 캐나다 1년 살이 동안 아이는 감자튀김으로 연명을 했다. 그렇다 보니 요리를 잘하는 편도 아니지만,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에게만큼은 엄마 밥을 먹이려는 고집이 있었다. 간장과 된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세관과 UPS 밴쿠버 지점까지 다녀온 남편은 저마다 non of my business라는 말만 해대는 캐나다인들에게 질릴 대로 질렸다. 심지어 짐은 이미 며칠 전 세관을 통과한 상태였다. 그런데 왜 우리 집까지 오질 않는 것인가. 배송 상황을 볼 수 있는 이메일을 연신 들여다봤다. 짐은 계속 밴쿠버 어딘가의 주소에 조용히 묻힌 듯이 보였다. 짐을 보내준 한국 사무실로부터 별일 없이 도착했을 거란 말만 수도 없이 들었다. 나와 남편은 밴쿠버 생활 1년간 이제야 비로소 진짜 어른이라도 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캐나다에는 없었다. 저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했지만, 막연히 기다렸다면 영겁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한국은 보통 내가 가만히 있어도 누군가가 나를 끝없이 귀찮게 한다. 세금을 되돌려 받는 일조차도 내가 받을 때까지 친절하게 알려준다. 전화 통화가 안 되면 문자라도 보낸다. 어떻게든 ‘고객’에게 닿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한다. 우리는 그것을 ‘친절’이라고 여겨왔다. 

 한국의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는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안내문을 너무 당연하게 여겼다. 쓰레기 분리수거 차가 오는 날도 엄격하게 정해졌고, 지켜졌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태풍이 불어도 쓰레기 차는 언제나 지정된 요일과 시간에 도착했다. 하지만 캐나다는 친절한 안내문이 어디나 붙어있지 않다. 처음 도착하고 쓰레기 분리에 대한 안내 책자 한 권을 받았다. 때로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며칠간 쓰레기를 가져가지 않는다. 쓰레기통이 차고 넘치고, 길고양이들의 습격으로 온 거리가 지저분해져도 쓰레기차는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 항의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이면 당장에 민원이 들어가고도 남을 일이다. 


 사람들은 기다렸다. 이 추운 날, 이 더운 날 고생하는 누군가에게 개인적으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 나는 한국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고객에 대한 친절’이 사실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했다. 캐나다에서는 일방적인 희생과 친절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상대를 기쁘게 하려고 자신을 희생하지 않는다. 그 위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라는 더 커다란 마음이 포진해 있다. ‘kind’라는 영어 형용사의 어원은 중세 영어 ‘kinde’에서 비롯되었다. 중세 영어 kinde는 원래 영어 (ge) cynde에서 유래하였으며, 이는 "서로 친척으로서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을 뜻하는 Proto-Germanic *kundi- 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건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마음 안에서부터 친절과 사랑이 시작된다. 한국보다 느린 것 같은 시스템과 불친절하다고 느낀 자세하지 못한 설명은 어쩌면 나의 편향된 문화적 기대감이었을지도 모른다. 캐나다 사람들 또한 느리고 답답한 시스템에 불편함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해서 다짜고짜 화를 내고 항의를 하지 않는다. 먼저 ‘이해’를 하려고 노력한다.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그 믿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그들의 기다림이 이제 더는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이틀 정도 늦게 온 짐 때문에 주구 장창 전화를 걸고, 사무실에 찾아가 우리의 권리를 찾으려 했던 지난날의 무지함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결국, 짐은 무사히 잘 도착했다. 항공택배는 말 그대로 택배라서 집 안까지 짐을 옮겨주진 않았다. 주차장 안쪽에 산처럼 쌓인 수많은 택배 상자를 보면서 허탈한 웃음부터 나왔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기다린 짐이 오질 않았는가. 신줏단지 모시듯 꽁꽁 싸매온 친정엄마의 간장, 된장, 고춧가루도 내 품에 왔다. 이제 남편과 아이에게 그리운 고향 음식도 해줄 수 있게 됐다. 큼직한 스튜용 고기를 잔뜩 넣고 미역국을 끓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으로 집안도 어느새 푸근하고 촉촉해진다. 익숙한 소리를 내며 보글보글 끓는 국을 보니 마음이 평온하다. 


 유난히 춥고 비가 내리던 어느 날, 직장 일이었던가 인간관계 때문이던가 정확히 생각나질 않는다. 많이 지친 마음을 이끌고 집에 들어섰다. 익숙한 냄새에 이끌려 부엌으로 향했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냄비 안에는 엄마의 배추 된장국과 오징어 볶음이 들어있었다. 잠시 그 냄새를 맡으며 냄비를 두 손으로 살짝 붙잡고 서 있었다. 음식이 주는 위로감. 엄마의 음식은 단순히 건강하고 깨끗한 재료로 만드는 푸짐한 음식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집 밖에서 겪은 수많은 일로 탈진한 심신에 고루고루 영양분을 나눠준다. 지친 마음과 영혼까지 위로해 주는 인생의 친구와도 같다. 비록 엉성하고, 맛도 별로지만 익숙하고 따뜻한 음식들이 남편과 아이에게 선물이 되길 바란다. 이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또다시 밴쿠버의 향수가 될 우리만의 음식이 탄생하겠지. 그것은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공간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위로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 내 가족에게 하는 마음처럼 남에게도 조금 더 이해와 친절을 베풀 수 있는 1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왜 하필 캐나다였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