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생각 없이 하루하루,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 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굉장히 공고하고 안정적으로 보인다. 특히 나처럼 직장에서 은퇴해서 별로 하는 일 없이 지내는 사람은 매일매일이 똑같은 날들의 연속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끊임없이 변한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에 점점 무감각해질수록, 우리는 그저 그날이 그날 같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심하게 말하자면 죽어 있는 삶을 영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게시판을 보고 '수필 쓰기' 강좌를 신청했다. 혼자 여러 차례 글을 써 보기는 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공통된 소재를 놓고 함께 글을 나눠본다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처음 함께 하는 글쓰기는 '영화 보고 글쓰기'였다. 가까운 영화관을 찾아 글쓰기 대상으로 지정된 영화 '콜 제인'을 관람했다.
50여 년 전, 낙태를 금지하는 미국에서 불가피하게 낙태 시술을 받아야 하는 여성들을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그건 페미니즘 영화로 생각할 수가 있다. 요즘 나는 우리 나라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너무 커지는 기류를 다소 불편하게 여기곤 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여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좀 생각이 달라졌다.
단순히 여성이란 이유로 남성과 비교해 가장 큰 짐을 지고 있는 것이 출산과 육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를 여성인 자기가 결정하지 못하고, 남성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위원회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너무나 잘못된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산모가 갖고 있는 신체적 문제라든가, 원치 않는 임신 등, 아이를 낳는 것이 당사자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경우에도 사회적 법규나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서 낙태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것은 다수의 횡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이런 불합리한 제도에 저항하여 스스로 불법적인 낙태수술을 받고, 더 나아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들어가서 직접 낙태시술을 하는 등, 그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활동에 나선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전 세계가 보고 있다.''고 시위를 하는 젊은 사람들을 슬쩍 피해가던 주인공이 어느덧 문제의 한가운데로 뛰어들고, 드디어 남편의 동조까지 이끌어내는 결말은 허구적 상상력이 빚어낸 것이기에 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여하튼 멋진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통상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또는 행여 귀찮은 일에 말려들까 두려워서, 주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의를 못본척하고 사는 경우가 많다. 불의한 자들은 그러한 우리들의 무관심과 방관하는 심리를 틈타 세력을 키워나가서, 어느 시점부터는 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악의 제국을 이룩하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려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그런데 한 가지 우려가 되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타당한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폭력적인 시위 진압으로 시작되지만, 라스트신으로 모든 잘못된 것들을 태워버리는 모닥불로 후련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하여, 어찌 생각하면 불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또다른 불의가 용인될 수 있다는 논리로 귀결될 소지를 안고 있다. 그런데 차분히 생각해 보면, 주인공이 낙태수술을 받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다. 더구나 의료 면허도 없는 사람이 시술을 한다는 것은 법을 어기는 것보다 훨씬 더 안 좋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위험한 행위로 보인다.
물론 지금 현재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가장 소중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태아도 엄연히 존엄한 인간이다. 양육하기 어렵다고,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생명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말살할 권리가 있는가?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화나는 장면이 낙태수술을 손가락에 난 티눈 떼내듯이, 너무나 간단한 처치로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소중한 생명이 발아되었는데, 영화의 대사지만 호박 속을 파내서 쓰레기처럼 버리듯이 쉽게 긁어내다니. 이런 게 바로 생명 경시 풍조를 조장하는 행위가 아닌가?
그렇다고 해서 기존의 잘못된 제도나 관습을 묵묵히 따르자는 건 아니다. 북한이나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있는 독재 권력의 횡포나, 세계 곳곳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잘못된 제도와 관습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가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우리 개개인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또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를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