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샬롯 무어라는 작가가 두 자폐 아들들의 일상을 그린 에세이를 읽었다. 읽다 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부분이 있다. 이들 가족의 불과 몇 시간을 들여다보는 것으로도 글쓴이의 애환이 깊이 와닿았다.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고 임신과 출산으로 아기를 만나는 과정은 인생 전체를 보더라도 가장 신비로운 부분이다. 어느 날 불쑥 등장한 새 구성원은 아직은 허약한 가정이라는 성을 굳건하게 만드는 보루다. 혹시 그 반대도 있을까. 기대와 희망으로 만난 아기가 치명적인 장애아라면? 샬롯 무어의 글을 읽으며 이 분야의 고전일 듯한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 한 편을 떠올려 보았다. 삶의 전환점에서 회피하고 도망치지만 결국 운명을 받아들이는 젊은 아버지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오에 겐자부로(1935~2023)는 ‘인류 고유의 비극’을 다룬 현실 참여 작가로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1950년대 후반 ‘사육’(1958)이나 ‘죽은 자의 사치’(1958)등으로 전후 일본 사회의 폭력과 그 치유되지 못할 상흔을 경고하여 깊은 인상을 주었다. 발표작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던 젊은 작가가 급커브를 한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개인적 체험’(1964)이다.
이 작품 이전의 오에는 일본 사회의 문제를 자신과 연관 짓지 않았다. 자신과 무관한 행위로 집단 처벌을 받게 만든 기성 질서야말로 분노의 대상이자 제거해야 할 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회를 향해서만 책임 소재를 묻던 오에에게 기묘한 불행이 닥친다. 아들이 뇌기능 이상을 짊어진 채 태어난 것이다. 그는 이 작품에 ‘개인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이 급작스레 피투자로 던져진 상황이다. 사회성 짙은 작품을 쓰던 작가가 내면으로 침잠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깊은 통찰력을 얻는 계기이기도 하다. 오에는 이전 작품에서 보이던 절망감이나 무기력을 벗어나 비극에 맞서는 항의자로서 세계적인 거목이 된다.
'개인적 체험'의 주인공 버드는 27살, 결혼은 했지만 얽매이고 싶지 않은 자유인이다. 어려서부터 반항아, 거친 거리의 남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아내는 출산이 임박해 있지만 본인은 미칠 듯이 아프리카행을 꿈꾼다. 버드라는 별명처럼 어딘가 먼 곳, 미지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고만 싶다. 아내나 태어날 아기, 직장에도 큰 관심이 없다. 세상은 알아서 돌아갈 테고 자기는 머물든 떠나든 편한 대로 살면 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뇌돌출 기형아가 태어났으니까. 의사는 아기를 겐부츠(現物)라 부르고 버드는 샴쌍둥이, 쌍두의 독수리 그리고 가이부츠(怪物)를 연상한다. 어린 생명은 수술을 받아도 식물인간을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한다. 고뇌라고는 해본 적 없이 제멋대로 살아온 인물이 최대 난제에 부딪힌다. 그는 '존재 그 자체에 관련된 정말 무서운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만난다. 버드는 아기를 죽게 둘지 말지 선택을 강요하는 목소리를 애써 무시한다. 대신 노상 술에 취해 있거나 대낮부터 여자 친구와 질탕하게 뒹굴기로 한다. 이 무서운 실존의 세계로부터 가능하면 멀리멀리 도망친다. 여자 친구도 아기가 죽으면 이혼하고 아프리카로 떠나자고 졸라댄다. 의사와 공모한다면 그깟 ‘무의미한 존재’ 하나쯤 지우는 건 식은 죽 먹기다.
버드는 ‘뭔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게 완전히 굴복’ 해야 할지 기로에 선다. ‘굴복’이란 물론 영아 살해를 뜻한다. 질곡에서 몸부림치던 버드가 이른 결론이 눈물겹다. ‘아기 괴물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속임 없는 방법은 자기 손으로 직접 목을 조르거나 아니면 그를 받아들여 기르는 것, 두 가지뿐’ 임을 인정한다. 그리고 속임의 덫에서 벗어나 스스로 신뢰를 회복하는 단계로 접어든다. ‘기만에서 기만으로 개구리 뜀 뛰듯이 죽을 때까지 가는 인간’이기를 그만둔다. 버드라는 별명도 자연스럽게 희미해진다.
소설은 20대 후반의 오에 겐자부로가 맞이한 현실이다. 최연소 아쿠타가와상 수상자로 명성을 얻었으며 동시에 데카당스의 절정을 살던 그가 진퇴양난에 처한다. 오에도 버드와 같은 정신편력을 거쳤을 것이다. 그는 아들 히카리 관련 장단편을 여럿 남겼다. 생전 아들과 핵무기만이 자신의 관심사라고 밝혔을 정도다. 히카리는 지체 장애, 자폐, 간질에 시달렸으나 절대음감을 가진 작곡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단편 ‘공중 괴물 아구이’(1972)는 뇌기형 아기를 포기하는 이야기다. ‘아구이 아구이’ 하고 울던 아기가 죽고 난 후, 공중 괴물에 씌운 남자는 교통사고로 삶을 마감한다. 이와 반대로 ‘개인적 체험’은 어두운 터널을 거쳐 ‘인내’와 ‘희망’으로 나아가는 스토리다. 실제로 오에의 아들 히카리는 ‘빛’을 뜻한다. '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2007)에서도 70대의 오에가 중년의 히카리에게 보행 연습을 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말년까지도 아들과의 동행을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샬롯 무어의 두 아들은 어느덧 30대 중반이다. 후일담을 읽어보니 조지는 사교적인 반면 샘은 자기 방에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내성적이라 한다. 보통 사람들이 그렇듯이 자폐인들도 서로 다른 성향을 보이는 것 같다. 일부의 오해처럼 모두가 히카리처럼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샬롯은 밤에는 자야 한다는 걸 가르치는 데에 10년, 음식을 제대로 먹는 걸 가르치는 데에 20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인내’와 ‘희망’으로 긴 세월을 버텨왔다. 정상을 잣대로 치료에 힘쓰는 것보다는 증상을 완화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와닿았다.
오에가 말했듯 선천적 장애인들은 갖은 폭력에 노출된 '인류 고유의 비극'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이들에의 연민은 단지 개인적이지만은 않은 인류애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온갖 절망을 감당하는 연약한 이들을 지그시 껴안는 큰 품을 상상해 본다. 오에 겐자부로가 아들 이야기를 계속 쓴 까닭일 것이다.